용머리 해안
1653년 8월 16일 일본 나가사끼로 향하던 네덜란드 동인도 화사의 무역선 스페르웨르호가 태풍으로 제주에 표류한지 420년. 오랜 세월을 거쳐 집으로 발길을 돌리려 한다. 하멜 선장의 우렁천 목소리가 뱃머리에서 울러퍼졌다. “출항이다 닻을 올리고 키를 우현으로 돌려라” 산방산을 등지고 사계 앞바다로 뱃머리를 돌린다. 그들의 영혼이 떠나기 일보직전이다.
스페르웨르호 뒤쪽으론 설문대할망이 한라산 봉우리를 집어 던져 생긴 400m 높이의 산방산이 있고, 앞으로는 용이 용궁으로 돌아가기 위해 머리가 바다로 향하는 용머리 해안의 파도가 춤을 춘다. 산방산의 둘레와 백록담의 둘레는 엇비슷하다. 일란성 쌍둥이는 아니더라도 마음 잘 맞는 이란성 쌍둥이 쯤 된다. 용암의 점성이 높아 멀리 흘러가지 못하여 봉긋 솟게 된 산방산 돔으로 그만큼 제주에 있어서 백록담과 이어진 이바구도 많다. 또한 용머리 해안도 산방산과 땔 수 없는 관계이다.
하멜 선장의 함성이 울러퍼지는 산방산을 등지고 용머리 해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지만 시작부터 눈이 휘둥그레진다. 대한민국 8도를 돌아다녀도 이런 풍경을 만나기란 99% 쉽지 않다. 동쪽 울릉도라면 비슷한 외모를 찾을지도 모르겠다. 산방산의 단단한 조면암 보호막을 걸쳐 더욱 탄탄해진 응회암 용머리 해안은, 많은 지층이 쌓여 이뤄진 퇴적 병기다.
그만큼 전설도 갖가지다. “탐라에서 먼 미래 왕이 태어날 것을 안 중국의 진시황제는 호종단을 보내 탐라의 혈을 끊으라 명한다. 명령에 따른 호종단은 이곳에서 왕의 명당인 혈맥을 찾아내 용의 꼬리와 등을 칼로 내리쳐 끊는다. 그러자 시뻘건 피가 솟아 주변을 물들여 지금의 용머리의 모습이 되었다. 임무를 마친 호종단은 차귀섬으로 배를 타고 나가려다 한라산 신의 노여움을 받아 태풍에 목숨을 잃었다.”
신기함을 가진 용머리 해안은 80만년 전 제주 곳곳의 화산체인 한라산, 산방산 보다 먼저 생성된 우두머리. 땅속에서 올라오던 마그마가 지하수를 만나 격렬한 혈투 끝에 만들어졌다. 여러 조건을 마춰보아 진시뢍제만 아니었다면, 왕이 태어날 자리인 것은 확실했다. 용을 품을 걷듯 700m의 길이의 용머리 해안 산책로는 멋과 지식을 쌓기에 딱이다.
철썩이는 파도를 들으며 걷다보면 해안로는 이미 벌써 아우성으로 가득하다. 대자연보단 사람에게 치이기 일수다. 그때 고개를 들면 고요한 용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다. 20여m로 퇴적된 용머리 해안은 구불구불한 형체로 용의 비늘을 닮았고, 꿈틀꿈틀 태동이 발끝으로 전해진다. 80만년 이후 탐라의 화산활동이 잠들기 시작하고 깊은 잠에 빠진 용의 잠꼬대다. 시간이 흐른 세월은 용머리 위로 갖은 꽃과 식물이 싹트고 사람들은 용머리에 담긴 세월의 퇴적을 느꼈다. 다시 용이 깨어날 시기가 되었다.
올레 10코스가 산방산과 용머리의 중간을 가로지르고, 주변으로 송악산, 단산, 화순금모래 해변이 놓여 있다. 마치 잘려진 용의 꼬리를 이을려는 듯 꼬부작 여행길을 이어준다.
“하멜 선장님 도대체 언제 출항할 건가요. 출항하긴 하는 게 맞는 것이죠. 내가 바다로 확밀어 뿔까요?” “선장님 사실은 쫓겨난 건 아닌가요..”
그럴지도 모른다. 하멜은 네덜란드에서 천덕꾸러기 살았고 난봉에 빠진 네덜란드의 왕은 하멜을 먼 타국으로 쫓아내 편안함을 추구했을 것이다. 그만큼 하멜이 끼치는 영향력은 위대하다.
산방산을 빠져나가기 앞서 마주친 산방연대. 외적을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봉수대로 과거엔 연락망이었지만, 21세기에 들어 전망대의 역할로 승격일까. 후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