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에 허덕이다가 만난 ‘옛날 팥칼국수“

by 병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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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에 허덕이다가 만난 ‘옛날 팥칼국수“


아침밥도 거른 채 제주터미널에서 221번 버스를 타고 과거 읍성의 하나로 제주의 가장 큰 마을 성읍마을로 향했다. 버스에서 발을 내리자 제주의 돌담과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제주어는 나를 걸쭉한 흥분의 물을 끼얹어 샤워를 씻겼다. 눈알이 뱅글뱅글 돌아갔다. 이경규의 눈알 운동이다. “킁킁킁~” 누군가의 집에서 흘러나온 고소한 전의 냄새가 코를 후볐다.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파 죽겠는데. 에라~ 모르겠다. 풍경도 식후경, 고픈 배부터 채워보자. 빛보다 빠르게 손을 움직여 먹을 만한 음식을 뒤졌다. 내키진 않지만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옛날 팥죽을 골랐다. 성읍 민속마을에서 500m 거리로 멀지도 않다. 제주의 전통가옥을 본떠 현무암과 흙으로 뼈대를 세우고 초가지붕은 ⁂새라는 풀로 역어 놓아 건물도 그럴싸하다. 보기 좋은 떡이 맛있다고 건물 모양새부터 기분을 좋게 만든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내부는 5개의 테이블과 각종 물건이 심심치 않게 배치되어 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눈이 심심하지 않을 듯하다. 요리조리 구경하는 사이 주문했던 팥 칼국수가 나왔다. 시골집에서 동짓달이 되면 먹던 새알 팥죽을 먹고 싶었지만 기본이 2인분부터다. 혼자 온 나에겐 선택권도 없고 배고픔에 무엇을 따질 상황도 아니다. 팥 칼국수를 시켰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들었다. 과거 선조들도 팥죽을 먹었다면 새알이 들어간 팥죽이 아닌 팥 칼국수가 먹었을까? 팥죽은 있었겠지? 팥죽에는 새알이 들어 있기나 했을까? 괜히 골치 아픈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냥 주문한 팥 칼국수가 맛만 있기를 바란다.

쫄깃쫄깃한 칼국수는 그냥 심심하지 않게 적당히 나의 입맛을 거스르지 않는다. 밉지 않을 정도로 맛이 괜찮다. 씹을수록 입안은 팥의 부드러움과 감미로운 향 그리고 쫀득함이 맴돈다. 그렇다고 팥을 맷돌에 슬근슬근 간 것도 아니다. 현대식 믹서기를 사용한다. 한입, 두입 심취해 먹다 보니 뜬금없이 포항에서 먹었던 잔치국수와 멀건 팥죽이 생각난다. 그때도 포항을 돌고 돌다 배고픔에 지쳐서 간신히 발걸음을 떼고 찾은 분식집. 고단한 하루를 녹여 줄 달달한 맛을 찾았고 바로 팥죽이었다. 새알도 들어있지 않고 맛도 너무 달았다. 팥 칼국수가 양반이 먹던 음식이었다면 포항의 팥죽은 가난한 백성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끼니 정도이다. 애절한 애환이 녹아있는 맛이다. 그럼 팥 칼국수는 어떤 조화를 내 입안에 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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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비뚤한 그릇에 나온 팥 칼국수와 같이 나온 깍두기와 고추장아찌는 어떤 맛의 조합을 보여줄지 먹어보았다. 모든 음식과 잘 어울리는 깍두기는 이해가 같다. 저기 작은 고추는 보는 것만으로도 땀이 삐질삐질 매울 맛이 입안을 침에 증폭시켰다. 그러나 내가 알 수 없는 궁합이 있을 게 분명했다. 평범하게 깍두기와 한입, 평상시에 먹던 맛이다. 다음 차례는 알 수 없는 조합을 보여 줄 작은 고추다. 꼭지를 딴 후 숟가락 위해 팥 칼국수와 가지런히 얹혀 입안으로 넣었다. 오~ 뭔가 입안을 강타한다. 오묘하게 무심한 팥과 찰떡궁합 불꽃놀이가 터졌다. 심심할 것 같은 혓바닥을 요리조리 찔렀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청양 고추도 잘 먹지 않는 나이지만 자꾸만 손이 가는 매콤한 맛보다 오묘한 팥과의 결합이다. 아무래도 팥 칼국수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입에서는 “희한하네”라는 말만 나온다. 그것 참 희한한 맛일세! 난 포항의 팥죽보다 팥 칼국수가 입맛에 딱 좋다. 팥은 국내산, 밀가루는 Made in USA를 사용한다. 이게 옛날 팥의 위력일까? 나의 고급진 혀, 아마 양반의 자제였던가 보다.

옛날 팥 칼국수엔 달달함도 생활의 고달픔도 담겨 있지 않다. 심심한 맛 위에 깍두기와 고추장아찌가 팀답게 열심히 달려주는 맛이다. 배고픔에 허덕였던 나의 위장을 달래줄 정도는 되었다. 나와 다르게 한편에선 그러지 않은 테이블도 보였다. 여행을 온 둘 부부였다. 둘이라서 팥 칼국수와 새알 팥죽을 시켰다. 음식 앞에선 혼자보다 둘이란 입지가 더 위대하는 것을 느꼈다. 아~ 새알 팥죽 맛보고 싶다. 부부는 팥이 입에 맞지 않았나 보다. 슬쩍 눈알을 돌려 그릇을 보니 반쯤 남아있다. 음식을 남기면 죽은 후에 지옥 가서 다 먹는다고 하던데 어쩌려고 저랬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때마침 계산대에 같이 서게 되었고 둘 부부를 바라보니 나이가 30대 후반, 40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나만큼 빼빼 마른 아저씨는 희끗희끗한 머리 색깔과 달리 피부에 주름이 없다. 순간 나보단 어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달하진 않지만 심심한 묘한 매력을 가진 팥죽을 너무 많이 시켰던 걸까. 남겨진 게 반이다. 나도 새알 팥죽을 맛을 느껴보고 싶다. 눈이 새알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문을 열고 실내를 빠져나오며 남편에게 맛이 없다며 소근 되는 아내의 말소리가 본의 아니게 들렸다. 남편은 나를 보며 급하게 아내의 입을 막는다. 배부름에 남긴 것도 아니고 맛이 없다니, 심심하지만 나름대로 맛있게 먹었던 나로선 맛이 없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본인들의 입맛이니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 그릇에 남겨진 팥죽의 새알이 떠오른다. 자동차에 오른 둘은 렌터카를 타고 떠났고 차 안에서 어떤 말을 주고받았을지 뒤담화가 내심 궁금해졌다. 배는 부른 난 만사가 귀찮아졌다. 다시 발길을 돌려 성읍민속촌으로 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