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왈종 미술관
정방폭포에서 실컷 놀고 출구로 나와 마주한 건, 넓은 주차장과 어느 건물 앞에서 만난 벌거벗은 나체를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한 남성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생각하는 로댕”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과 뭔가 얼추 비슷하다. 가슴도 얼굴도 불알을 눈을 뜨겁게 만든 모습이 대단할 뿐이다. 벌거벗은 나체의 동상은 건물을 지을 때 만든 동상으로 이왈종 작가의 모습이다.
입구를 지나자 미술관 앞의 공터에는 풀이 무성했지만, 그저 그런 공터가 아니었다. 텃밭 겸 꽃이 자랐고 간혹 내가 꽃구경을 온 건 아닌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풀과 꽃 사이를 차지하고 있는 조각품. 닭과 물고기 등의 조각은 예술작가의 집이란 것을 말하듯 자신만만한 자태를 뽐냈다. 각목 위에 우뚝 선 닭의 울부짖음은 “꼬기요~” 대신 '와알종~ 왈종왈종~' 우는 작가의 모습 같기도 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쳐 우연히 들린 곳, 이왈종 미술관은 그렇게 나에게 성큼성큼 한걸음에 다가왔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건물로 들어가 안내데스크를 지나 빙글빙글 계단을 걸어 2층으로 올랐다. 벽마다 독특한 색채의 강한 인상을 그림은 눈을 사로잡기 좋았다. 이왈종 작가의 남다른 제주 사랑을 엿 볼 수 있는 작품으로 가득했다. 한결같은 제주 이야기다. 원근감을 무시한 듯 아기자기한 그림 한 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림은 곧 나를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었다.
제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질문을 던진다면 단연코 한라산이 첫 번째일 테고 그다음이 성산 일출봉이다.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다른 이는 바다가 먼저 생각 날 수도 있다. 환상적이지만 웃긴 문제가 있는 그림, 성산 일출봉 앞에 섰다. 그저 그렇게 바라본다면 스쳐 지나갈 수도 있지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뭔가 불쑥 휘황한 장면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심상치 않은 조화에 틀린 그림 찾기일까? 꼭 찾아야만 할까? 그렇지 않다. 가만히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니 답이 튀어나왔다. 근데 성산 일출봉 앞이 언제부터 골프장이었나? 누가 저렇게 공사를 해놓았을까? 이왈종 작가가 앞으로 닥칠 미래의 성산 일출봉을 모습을 그렸을 거란 추측을 조심스레 해본다. 성산 일출봉 앞이 골프장이라면 와~ 그냥 머릿속 그림만으로도 찬란하다. 그곳에 있는 나를 그려본다. 생각만큼 썩 좋지 않다. 그림에선 골프장 주변에 동백꽃이 피고 새콤달콤한 감귤이 열려 있다. 계절의 소재가 겨울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늘 푸른 제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별반 다름이 없다. 어찌 보면 그래서 천혜의 제주를 하나에 모두 담았을 것이다. 어쩌면 저런 기발한 생각을 그림으로 옮길 수 있을지 감탐만 자아 낼 수 없다. 나도 이제부터 머리속은 창작이란 글을 집어 넣는다.
색다른 상상과 색감을 가지고 노는 이왈종 작가의 작품은 신기할 나름이다. 처음에는 색감에 우와 감탄사를 뱉을지 모르지만, 더 깊숙이 그림에 빠져든다면, 제주의 평범한 판타지가 펼쳐진다. 그림 속 판타지를 즐기다 보면 모퉁이에 마련된 19금 미성년자 관람 불가의 작품도 눈에 띈다. 요즘 같아선 19금이라기엔 부족할 것 같지만 나름의 야함이 꿈틀된다. 여하튼 상상은 금물이다.
계단을 한층 더 올라 3층으로 갔다. 이왈종 작가의 작업실인 듯한 공간이 있다. 유리창에 머리를 대고 눈알을 굴러보지만, 어떤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조용히 해주세요. 작가님의 공간입니다.” 유리창 위에 스티커가 붙어 있다. 작업실이라고 그럼 이왈종 작가를 한 번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부풀었다. 마음은 뻥튀기처럼 부풀고 먼지 하나 날리지 않는 방구석을 쳐다만 봐야 했다. 아쉽게도 이왈종 작가는 외출중이기 때문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쉬움이 남는 날이다. 다시 한 칸 더 올라 옥상으로 행군을 했다. 눈 깜짝할 새 끝날 공간이지만, 하얀 벽면과 하얀 계단은 스페인의 산토리노를 눈곱만큼 생각나게끔 만들었다. 가보지 못한 곳이라 그런지 스페인이 궁금해져왔다. 아무도 없는 때 묻지 않은 하얀 계단에 앉아 모든 걸 잊고 잠시 멍의 시간을 가졌다. “난 왜 여기에 있는가?”하며 생각하는 로댕이 되어봤다.
10분쯤 지나 계단을 빠져나온 곳은 마지막 공간인 옥상이다. 물고기, 닭, 등 갖가지 조각물이 나를 환영했다. 이제 공상은 그만. 현실을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독특한 시점과 풍부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작품에 빠져들었다. 공상은 금물이라지만 어쩔 수 없다. 그냥 머릿속엔 있을 수 없는 상상이 막 그려진다. 이왈종 작가의 정신세계를 옮았는지 주체할 수조차 없다. 물고기가 되었다가 아침을 여는 닭이 되어 ‘꼬끼오~’ 외쳐본다. 누가 듣지는 않았겠지. 재미난 조각이 나를 요리하고 있을 때 탁 트인 풍경은 답답한 가슴을 떨쳐낼 수 있게 시원하고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아름다운 눈물에 젖은 난 시라도 읊을 수 있을 것 같다. 입구의 아드레날린이 1이었다면 옥상은 100쯤 되어 난 미지의 세계로 이끌었다.
입장료 5천 원. 입장권으로 이왈종 미술관 앞 카페에서 사용 가능 (10% 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