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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진 Feb 22. 2023

수십 번 넘게 찾은 단골집, 명동돈가스

정말 바쁜 2022년을 보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잠에 들면 다시 다음날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쳇바퀴 굴레 같은 나날들을 보낸 것 같다. 덕분에 시간은 잘 갔다. 가끔은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한 달이 훌쩍 지나간 것을 알아차릴 때가 몇 번 있었다.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았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퇴근하면서도 당장 내일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머릿속에서 수십 번씩 떠올랐고, 심지어 작년 하반기에는 학교 준비까지 한다고 하루에 2~3시간씩 자면서 카페인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야만 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시간을 쥐어짜서라도 이동하는 자투리 시간을 내겠는데, 당장 내 우선순위는 한동안 돈가스가 아니었다. 새로운 돈가스 집을 찾아 떠났다가 혹시라도 모를 헛걸음이 불안하기도 했다. 돈가스 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즐거움이었는데, 그게 마치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했다. 그래서 잘 아는 곳만 다녔다. 굳이 검증해야 하고, 헛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내가 좋아하는 단골집으로 돈가스를 먹으러 다녔다.




명동돈가스는 어릴 때부터 자주 다녔던 돈가스집이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동생이 유모차 탈 때부터 왔다고 하니 20년 가까이 된 단골집이나 마찬가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 우리 가족은 명동돈가스를 찾아 의미 있는 하루를 가지곤 했다. 그래서 명동돈가스는 나에게 있어 특별한 공간이다. 돈가스를 먹을 때면 좋았던 기억들로 가득하다. 중간에 리모델링 기간을 거친다고 몇 년 쉬어가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 그곳에서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명동돈가스 외관

명동돈가스에 가면 항상 코돈부루를 먹는다. 얇게 썬 돼지고기가 치즈, 양송이, 피망, 양파를 감싸고 있는 돈가스다. 쉽게 말하면 치즈돈가스다. 주로 혼자 가면 1층 다찌석에 앉는데, 메뉴판을 건네받기도 전에 코돈부루, 기린 생맥주 한잔을 시킨다. 주문을 하면 생맥주를 먼저 내어주신다. 잊지 않고 양배추 샐러드도 함께 내어주신다. 기다리는 동안 맥주 마시며 안주 삼으라고.

미리 내어주는 양배추 샐러드

명동돈가스는 3층이지만 모든 돈가스는 1층 주방에서 튀겨주기 때문에 다찌석에 앉으면 돈가스 튀기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 기다리는 게 심심하지 않다. 주문과 동시에 준비된 고기에 밀가루, 계란물, 빵가루를 차례대로 묻히고 튀김기에 풍덩 집어넣는다. 굉장히 단순한 과정이지만 이 또한 꽤나 단련된 주방장이 다루고 있다.

차례대로 놓여있는 밀가루, 계란물, 빵가루

코돈부루가 나온다. 바삭하게 튀겨 노란 튀김옷에 고소한 풍미가 코끝을 자극한다. 이미 반쯤 먹은 맥주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 첫 입은 그냥 먹는다. 고소한 치즈와 바삭한 튀김옷, 안에 씹히는 야채의 식감이며, 아 그래 이맛이지 하는 묘한 전율이 흐른다.

코돈부루와 반쯤 먹은 기린생맥주

사진을 한 장 찍고 나서 돈가스 소스를 돈가스 위로 지그재그로 뿌리는데, 특별한 의미는 없고 그냥 늘 해왔던 루틴 같은 거랄까. 좀 더 먹음직스럽달까. 그다음은 알싸한 겨자를 콕 찍어 같이 먹는데 이게 은근 중독적인 매력이 있다. 절반쯤 먹었을 땐 타바스코 핫소스를 달라고 한다. 사실 보통 코돈부루를 시키면 같이 내어주는데 요즘은 따로 말씀을 드려야 주신다. 그냥 먹어도 맛있긴 한데 약간 피자 토핑 같은 맛이 핫소스를 뿌리면 은근 잘 어울린다. 돈가스를 다 먹으면 남은 꼬치에 끼어진 파인애플 세 조각으로 입가심을 하고 식사를 마친다.

소스를 지그재그 뿌려먹는다.

가격을 따지면 그리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솔직히 요즘 유명한 돈가스 집을 생각하면 그렇게 만족할만한 퀄리티라 장담은 못 하겠다. 가끔은 튀김옷이 심하게 벗겨지기도 하고, 파인애플을 빼먹고 주시기도 한다. 이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명동돈가스는 ‘오늘은 이런 날도 있네’라고 웃어 넘길 정도가 됐다. 그냥 지쳐 힘들고 번아웃이 왔을 때 위로가 되는 ‘소울푸드’가 되어버렸다.




명동돈가스는 올해로 38년이 되었다. 2대째 운영 중인 돈가스 집이며, 우리나라에선 꽤 역사가 오래된 일식 돈가스집이다. 창업주가 도쿄 메구로역 근처 돈키라는 돈가스집에서 기술을 배워 차린게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수십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들이 돈까스와 함께했고, 나 또한 그 역사와 함께 한다는 점에서 스스로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2년 전 명동돈가스에 가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직접 운영해보고 싶다는 메일을 썼다. 명동돈가스에서 유일하게 블로그만 운영하고 있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코로나19로 명동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팬심이 두 번째 이유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인사이트 수치와 인스타 계정 운영 방향성을 간략하게 적어서 메일을 보냈다. 그 당시 연락하고 지냈던 인플루언서 분과 한 시간 만에 얘기 나누고 후다닥 써서 낸 거라 솔직히 몇 십년 간 쌓아온 내 팬심이 너무 가벼워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도 많았다. 이런 방식보다는 좀 더 진지하게 제안을 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당시에 그런 추진력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머릿속에만 담아두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론적으로는 거절당했다. 내가 오너였어도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이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겠다니, 당치도 않은 소리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답장 온 것만으로도 감사했던 터라 좀 더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코로나19 확산세도 완화되고, 명동 거리도 다시 조금씩 활기를 찾고 있다. 지난 연말에 가족들이랑 방문했을 때도 웨이팅을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아진 걸 보며 안도가 되었다.

당시 작성했던 기획안 (2021.03.)

수십 번도 찾은 단골집이라지만 직원분들과 스몰토크? 그런 건 없다. 스스로 자처하는 오래된 팬이고, 앞으로도 오래 남길 바라며 멀리서 응원하는 손님 중 하나일 뿐이다.


누가 가장 좋아하는 돈가스 집을 알려달라 하면 내 대답은 지금도, 앞으로도 '명동돈가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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