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을 상실한 미군

그럼에도 우린 한국인이다.

by Kawaii Hawaii

당신은 어떠한가?
정든 곳 을 떠나본 사람인가?

일평생을 한 나라에서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의든 타의든 고국의 품을 떠나서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타지에서 태어나 적응할 때쯤, 생소한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잠시 낯선 곳에 발을 들였다 가거 삶 자체가 여행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두 번째 케이스다.
당신은 어떠한가?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라면 냄새를 맡으면 넘어가기 힘들고,
느린 인터넷 속도를 감당할 수 없으며,
삼겹살에는 소주가 생각나고,
할 말 없으면 나중에 밥 한 끼 하자고 얘기하는.

나는 한국인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벌써 거의 10년 전, 미국에 발을 들였다.

낯선 문화 속에서도 꿀벌이 꽃을 찾듯 자연스레 알게 된 한국인 친구들.

철없는 시간이지만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 얼마나 달콤한 어린 시절이었었나.

한국인들과 어울리지 않았더라면 보다 쉽게 적응하고 바뀌어 갔을 것이다.
미국이란 팔레트 위에 떨어지는 여러 재질의 조각들.
그 많은 조각들 중에 나는 유리 조각, 깨질까 봐 조마조마.
주위를 둘러보면 형형색색 잘 흡수하는 헝겊 조각들도 많았지만,
나는 비가 내리면 씻겨 내려갔다.
비는 참.. 자주 왔다.

이런 경험 저런 경험 다 해보며 재미지게 살았다.
눈물도 많이 흘리고 웃기도 많이 웃었다.
하지만 그저 영어와 낯선 문화들에 대한 대처와 인식만 익숙해져 갈 뿐
여전히 낯설다.

10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 내외하는 사이다.
아직 서로 표현하는 방식도, 공감하는 부분도, 심지어 사소한 웃음 포인트도 다르다.
부담스럽다. 불편하다.
정말이지, 당신은 어떠한가?

아직 낯선 이 친구가 미국 시민권을 쥐어주며 말했다.
미안한데 네가 가지고 있던 건 이제 놓아줘야 한다고.
아쉬움에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는데,
다른 손에 쥐어져 있던 한국 시민권을 누가 확 채간다.

놀라서 뒤돌아보니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고국이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가?
당신은 어떠했나?

인간이 만들어낸 규칙들과 여러 선들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편의성과 공의를 위한 잣대이지만,

가끔 잔혹할 때가 있다.
비가 오면 씻겨 내려갈 줄 알았는데,
자세히 만져보니 기스가 났다.
아무렴 어떠한가, 나란 사람은 그대로인데.

하와이에는 지금 또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시도 때도 없이 분수 옆에 물 튀기듯 간지럽게 촉촉하게 내린다.
도무지 익숙해질 것 같지 않다.
차라리 시원하게 쏟아지는 장마가 그립다.

지금 아주 오랜만에 하와이 공항에서 내린 저 사람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떠한가?"

나한테는 반갑지 않은 이 애매한 빗줄기 밑에서
이 사람은 한참을 서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