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이자 연인, 자동차

소중한 물건의 의미 및 미군 이사

by Kawaii Hawaii

다들 그런 물건 몇 개씩은 있을 것이다.

그냥 소중한 물건.

추억이 덕지덕지 묻어서 그냥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겨운 그런 물건.

아 그래 내가 너고 네가 나지? 하는 순간들이 있잖아?

누군가의 손때 뭍은 기타가 마냥 고물이 아닌 이유도

너무 헤져서 솜이 튀어나오기 직전인 저 이불이 더욱 포근한 이유도

꾀죄죄하고 한없이 볼품없어 보이는 그 인형에 잠이 솔솔 오는 이유도

우린 다 그런 물건이 있기 때문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법이다.


내가 오늘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물건은?

자동차.

한국처럼 교통이 발달된 나라가 드문 만큼, 타지에 있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처음 당신의 품에 안겼을 때, 아니 그의 품에 당신이 안겨졌을 때가 기억이 나는가?

같이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었던 듬직한 친구이자 연인.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같이 갔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도 같이 갔다.

필요할 때 발이 되어주고, 또 정말 열심히 달려 주었다.

하루하루 출퇴근과 등하교는 물론, 친구를 볼 때나 연인을 볼 때나 언제나 함께였다.


가끔은 나만의 1인 카페가 되어주었고,

노트북만 가져가면 세상 최고로 빵빵한 사운드의 영화관이 되었다.

발라드부터 힙합까지 아우르는 소규모 콘서트도 열어주고

나 자신을 관리 못해 술에 졌을 때는, 나만의 포근한 여관도 되어 주었다.

아. 가끔 추워 죽을 뻔 한적도 몇 번 있었지만 말이다.


미군에 입대를 하면서 잠깐 이별을 했다.

기초 훈련소, 그리고 직업훈련소에서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정말 과장이 아니라, 가족과 연인, 그리고 친구가 그리운 것과 거의 동급으로 그리웠던 것이 내 자동차였다.

모든 트레이닝을 끝내고 하와이로 주둔되었을 때 바로 생각했다.
데리고 갈 수 있을까?


몇 달간은 욕심을 낼 수 없었다.

대학을 다니고 있는 동생의 발이 되어주고 있었기 때문에.

동생이 졸업하고 한국에 가기 전에 보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문제가 많았다.

면허증 문제, 타이틀 문제, 차량 등록 문제 등등..

미군은 타지로 발령을 받게 되면, 군대가 이삿짐을 옮기는 것을 거의 전면 지원해준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차량이 아버지 소유로 되어있기에 안된다나 뭐라나..

지금도 차량을 보내려는 노력은 현재 진행 중이다.

아마 수개월 내로는 받아볼 수 있겠지.


사실 나도 알고 있다.

그렇게 추억을 자극했던 게임을 직접 해보면 시들시들한 것처럼.

너무나 먹고 싶은 예전 그 음식을 오랜만에 접해봤는데 별로 였던 것처럼.

우리는 생각보다 단순해서,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시켜서 저장하려는 경향이 있나 보다.


사실 그 당시 문자음이 그리운 것이 아니고,

중학생 때 문자를 키득키득 주고받던 그 파릇파릇하던 시절이 그리운 것을 알고 있다.

예전에 자주 먹던 그 음식이 그리운 것이 아니고,

너무 사랑하는 우리 가족과 함께하던 따뜻한 그 식탁이 그리운 것을 알고 있다.

그때 목숨 걸고 하던 그 컴퓨터 게임이 그리운 것이 아니고,

엄마 몰래 피시방 가서 친구와 즐기던 그 소소한 일탈이 그리운 것을 알고 있다.


자동차 사실 너도 그래.

너와 함께 만나던 그 사람들

너와 함께 했었던 그 시간들

너와 함께 갔었던 그 장소들

너와 함께 누렸던 그 자유들

그게 그리워서 그렇다는 거 나도 잘 알아.


그래도 말이야

그래도 너는 좀 특별한 것 같아.

막상 네가 오면 정말 반가울 것 같아.

바로 깨끗이 씻겨주고 매일 앉던 그 자리에 앉아서,

몸을 뒤로 쫙 뉘이고 한숨만 잘게.


예전 그 날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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