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에서의 편지의 의미

참 부끄러운 미군 훈련소 이야기.

by Kawaii Hawaii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당신 남자 친구가 이제 군인인가?

철없이 밥만 축내는 것 같던 아들이 벌써 군인인가?

소주 한잔 기울이던 그 친한 친구가 군인인가?

그리고 혹시 그런 그가 힘들어하는가?

이 글을 천천히 읽어보고 따뜻한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

군인이 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첫 번째 단계, 기초 훈련.

친구들과 웃으며 인사하고 핸드폰으로 글과 소리들을 주고받던 게 언제더라?

어찌 시계 시침은 한 바퀴도 지나지 않았는데, 마냥 그렇게 서러울 수도 없다.

자유라는 녀석이, 짜인 판 안에서는 너무도 쉽게 사라지는 게 그렇게 원망스럽다.


가지고 있던 초라한 소지품들을 모두 수거해 갈 때는,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는 느낌이 들었다.

군대에서 사용하는 물품들을 배급받고, 몇 방의 주사를 맞고, 내 머리를 빡빡 밀었다.

발을 들이기 전이나 후나, 두려움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모른다.

그냥 툭 찔러도 눈물을 펑펑 쏟아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가?

왜 그렇게 미친 듯이 여자 친구가 보고 싶었는가?

나도 모른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땀이 온몸을 적셨는데, 명령 없이는 꼼짝 할 수가 없다.

추워서 도무지 잠들 수가 없는데, 정해진 옷을 입고 자야 한다.
해는 정면에서 날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참 고역이다.


나도 분명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받던 사람이었는데,

나도 꽤나 잘 나가던 사람이었는데,

유치한 생각만 참 많이 한다.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가슴이 싫다고 자꾸 떼를 쓴다.


저기 나랑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 날 그렇게 초라하게 만든다.

병신이라며 나가 뒤지라며 욕지거리를 해 댄다.

그냥 이 악물고 시간을 초연히 보내고 싶은데 감정은 요동친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 빡빡 깎은 머리를 본다.

참 볼품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 빼고 전부 잘 버티는 것 같다.
하필 백인, 흑인 친구들은 두상도 참 예쁘다. 난 왜 스님 같다.
그렇게 자존심에 혼자 씩 웃어본다.


고백하자면 난 전우애를 느껴보지 못했다.

나만의 감정에 너무 잠식되어있었기도 했고,

몸이 계속 아픈 채로 날들을 버텨서 여유가 없었고,

문화와 언어가 다른 친구들과는 그 무엇도 공유할 수 없었다.


조금씩 익숙해지려는 하루들을 보내던 어느 날 아침.

전날과 다를 것 없이 추위와 건조한 밤 사이 꽉 막혀 굳어버린 핏덩이 콧물들을 풀어내고,

병 걸린 똥개 마냥 잔뜩 생겨난 찐득찐득한 눈곱을 하나하나 떼어낸다.

최대한 서둘러서 모인 후 세월아 네월아 부동자세로 기다리는 것은 익숙하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음식을 몸속에 욱여넣고

하라는 거 하다 보니 어느새 잘 시간.


아마 산타 아저씨는 하얀 박스를 썼을 것이다.

하얀 우체국 박스에 가득 담겨있는 편지봉투들.

자기 전에 나눠주는 사회에서 건너온 소중한 소식과 안부들.

'내 것도 있을까?'

생각보다 늦게, 내 이름이 처음으로 불렸다. 환희.

종이를 받아 들고 보는데 가족 이름이 적혀있다.

환희의 크기만큼 준비되는 눈물들.

또 이름이 불렸고, 여자 친구 이름이 쓰여 있다.

준비된 눈물들이 일제히 안구 쪽으로 밀려 나온다. 자리도 없는데 말이다.


추운 내무실 안에서, 보온 안 되는 모포 안에서 읽는 편지는 무척 따뜻하다.

사실 처음에는 눈물이 날까 봐 쉬이 읽어보기도 힘들었다.

백만장자에게 초호화 음식들이 가져다주는 만족감보다,

배를 곪은 이에게 주어지는 작은 빵조각이 주는 행복이 훨씬 큰 것처럼,

내가 바라던 이들에게서 온 한 글자 한 글자는 그렇게 떼쓰던 가슴을 토닥인다.

한 자 한 자 소중하게 읽던 그때 그 마음을 어찌 잊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게 다 비단 내 감수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거든.


그것이 군인에게 편지를 써야 하는 이유다.


사실 이러한 저러한 이유와 연유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편지도 더러 있다.

학교에서 생일날 롤링페이퍼 할 때 마냥.

딱 그 정도 마음가짐과 정성만 느껴지는 편지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얘기를 하듯이 쓴 글들은 그 목소리와 속삭임이 느껴진다.

나를 생각하고 손을 잡고 얘기하듯이 쓴 한 글자 한 글자의 따뜻함은 정말이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많은 이들이 이 당시 받은 부모님, 연인의 편지는 가슴에 묻는다.

진심이 담긴 편지는 달라도 뭐가 다르다.

이건 본능이 정확히 알려준다.

이렇든 저렇든 간에,

그래도 사회에서의 시간을 군인에게 편지를 쓰는 데에 쏟는 정성은 그저 소중하다.


자! 이제 펜 들고 정성껏 편지 한번 써 보자.

분명 목소리나 핸드폰으로 전해지는 안부와는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

진심과 마음만 빼곡히 담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본인만 너무 편안하고 따뜻한 곳에서 편지를 쓴다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가?

저기 구석에서 편지를 읽고 있는 저 이등병의 눈에 담기고 있는 걸 보아라.

저 눈동자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누군가의 편안하고 따뜻한 진심이 보이지 않는가?

작가의 이전글친구이자 연인, 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