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뜬금없이 갑자기 터졌던 그때 그 울음에 대한 가벼운 고찰
미국에 몸을 담은지도 어언 10년이 흘렀지만
한국에 방문한 건 단 한번, 2주뿐이었다.
마트에서 필요한 물건만 딱 집어 계산하고 나오듯,
신분 문제로 비자를 갱신하기에 필요한 시간만큼만 있었다.
친척들 순회공연 돌듯 한 번씩 만나고
그땐 친구들이 다 군대에 있을 시기였기에, 면회를 갔다.
그리고 거의 막바지에 미국 오기 전 1년쯤 다니던,
그 당시 부모님이 몸담고 있는 교회의 수련회를 갔더랬지.
그게 2주의 전부였다.
너무 그리운 친구들과 내가 생활하던 추억의 장소를,
씹고 뜯고 맛보고 싶었지만, 그저 쇼윈도 밖에서 구경만 했던 기억.
오랜만에 가서 군 면회가 웬 말인가?
지금 생각해도 아쉬움에 쓴웃음만 난다.
수많은 교회 수련회를 갔지만 그때 그 수련회의 기억은 생생하다.
그때 고국에서의 내 시간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에.
강해설교 위주인 교수님 스타일의 목사님. 그리고 그에 걸맞은 성도들.
지겹게도 다들 하루 종일 동그랗게 앉아서 토론하고 기도하던 풍경이 아른하다.
나는 거의 하루 종일 한자릿수 나이 꼬맹이들과 놀았다.
브레멘 음악대 뺨치듯 줄줄이 나만 따라왔다.
재밌었고 귀여웠다. 가만 보면 항상 아이들은 유독 나를 잘 따른다.
놀아준다기보다는 나도 재밌게 같이 노는걸 자기들도 아나 보지?
밤에는 청년회 사람들과 함께 마피아 게임을 했었다.
새로운 얼굴도 있었지만 별로 낯가림이 없기에 금방 친해졌었지.
자기 전에는 낮에 잡아서 보관하고 있던 애사슴벌레를 몰래 놓아주었던 기억도 난다.
갖고 놀기 부끄러워서 몰래 놓아줬었지.
수련회가 끝나고, 다시 미국 돌아가기 바로 직전
교회 청년회 사람들 대여섯 명 정도가 만나서 커피 한잔 하며 짧은 시간을 보냈었다.
아직도 그 부끄러운 순간을 기억한다.
뭐가 그렇게 아쉽고 서럽다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었나.
나조차 설명할 수 없었어서 어버버 하며 얼버무렸던 기억.
그 자리 모두가 그저 당황했던 그때 그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나는 한참 막내였고, 다들 결혼하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는 큰 형님 누님들과의 하루가,
뭐가 그리 대단했고 뭘 그렇게 많이 통했기에 그랬었나?
사실 그때 그 사람들 이름조차도 익숙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때 그 울음은 그 사람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워서가 아니다.
예상치 못한 그 순간에 다가온 그때 그 울음은
여러 심정을 대변하는 묵직한 울음이었다.
뒤늦게 날 토닥였던 그 눈빛들은
그때 그 울음의 의미를 희미하게나마 파악해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