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죽다 살아난 사람들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실제로 내 주위에도 그런 분들이 있다.
이 책은 작가 허지웅이 혈액암으로
4년간 투병 후에 발표한 에세이다.
전에 읽은 <버티는 삶에 관하여>라는 에세이에서
그는 굉장히 날이 서있고,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좀 변했을까 그게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이제 좀 포기하고
삶을 그냥 인정하고, 긍정하려는 것처럼
아니 균형을 추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암과 같은 병이 나에게 주는 고통은,
모난 나를 둥글게 만들까?
아니면 한 발자국 더 성장하게 할까?
관계에서 오는 고통은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오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기도 한다.
그는 이 에세이에서
관계에서 오는 고통은
적정한 거리와
선의를 가진 사람끼리 도우며 사는 연대와
자기 삶에 대한 긍정과
마음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균형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여러분의 고통에 관해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건 기만이다.
고통이란 계량화되지 않고 비교할 수 없으며..."
그는 남의 고통을 완벽하게 알거나
이해할 수는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공감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고통은 참고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완전한 고통의 극복을
불교에서는 해탈이라고 부르지만
보통사람들은 다다르기 힘든 경지다.
고통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인정할 때
약간의 평화가 온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정한 거리감이라는 게 필요하다.
인간관계란 그 거리감을 셈하는 일이다"
관계가 너무 지치고 피곤하게 느껴진다는 건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거리보다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적정거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알 수 없고,
당겨도 보고, 밀어도 보아야 알 수 있다.
그것도 나의 기준일 뿐이고,
상대방 기준도 고려해야 하니 어렵다.
다 알 수 없으니 일단 믿고 기대하고 가는 수밖에
상처받지 않으려고만 하면 가까워질 수도 없다.
“끝까지 버티고 싸우되
피폐하고 곤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선의를 가지고 선한 행동을 하며 서로를 도울 것"
혼자서는 못해도 함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적정한 거리에
이런 마음 맞는 사람들이 옆에 있어야
버티고 나아갈 수 있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란
자기 삶을 향한 주체적인 긍정으로부터 나온다"
“가면을 쓰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더 오래 버티기 위해 그러는 거다.”
“나는 힘들 때마다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긍정은 낙관보다는 인정에 가까운 것 같다.
낙관은 제자리에 머물게 하지만
인정은 나아가게 한다.
“제다이가 말하는 포스의 정수란
다름 아닌 균형이다.
마음에 평정심을 회복하고 객관성을 유지하자.
그것이 포스가 말하는 균형이다.”
현실과 고통을 인정할 때
행복할 순 없어도 평화로울 수 있다.
내가 볼 때 마음이 평화로운 상태가 균형이다.
그의 통찰이 새로울 건 없지만
위로가 되는 것은
항상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내 모습이
괴로울 때
삶은 살아내고 버텨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버티기 위해 가면을 쓰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