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꿈은 어떤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나 : 수능 감독을 마치고.
나는 11년 차 중학교 교사다.
그리고 4살짜리 아들의 엄마다.
교사는 내 오랜 꿈이었고, 그 꿈을 이룬 날 뛸듯이 기뻤다.
콤플렉스가 많은 난, 그래도 교사라는 꿈을 이룬 것이 몹시 자랑스러웠다.
교사가 되고 나면 어떤 걱정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교사는 다른 직업군에 비해 육아가 쉽다고들 한다.
퇴근 시간이 빠르고, 방학도 있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 대해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육아맘의 고충은 누구나 있다.
어제 치른 수능날 난 감독관으로 착출 되었다.
여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시험장이었다.
출산과 육아휴직으로 꽤 오랜 시간 감독관을 하지 않은 터라
시험 전날 있었던 감독관 연수를 참 열심히 들었다.
2시간을 빼곡히 채운 연수를 겨우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가 열이 난다고.
병원에 데려가셔야 할 것 같다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나도 모르게
“왜 하필….”이란 말이 나왔다.
어린이집에 적응하고, 1년간 열은 한 번도 나지 않아 감사했건만
왜 하필 내일 감독을 가야 하는 이때에 아이가 아픈 걸까.
지금이라도 본부로 전화를 해서 감독을 못 간다고 할까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이때에 빠지는 게 얼마나 민폐인지 알고 있는 상황이라
용기 내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아이를 핑계로 감독관에서 빠지려는게 아닌가
생각할 사람들의 시선들이 싫었다.
그래서, ‘하루가 지나면, 열이 가라앉겠지. 오늘 하루만 잘 버텨줘.‘라고 생각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역시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병원에서도 아직은 초기라 병명을 알진 못하니 내일 다시 데려오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해열제를 먹이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되길 바랐다.
시험감독 때문인지, 아이 걱정 때문인지 잠을 못 잤다.
새벽 2시부터 정신이 맑아지면서 완전히 잠에서 깨어 버렸다.
새벽시간 아이의 몸이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내리지 않았고
아이는 뒤척이다 엄마가 없는 것을 발견하곤 울며 깨버렸다.
가지 말고 자기 옆에 누워서 안아 달라고 했다.
아이를 안는데 몸이 뜨겁다.
‘이 아픈 아이를 두고, 나는 갈 수 있을까?’
“엄마, 제발 안아주세요. 가지 마세요.”라고 울부짖는 아이의 목소리가
귀가 아닌 심장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남편의 회사에서도 때마침 빠질 수 없는 프로젝트를 하는 바람에
연차 사용이 불가했다. 부모님은 차로 4시간 거리에 살고 계셔서 맡기지도 못했다.
믿을 곳은 어린이집이라, 열이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엄마랑 떨어지지 않겠다고 우는 아이를 겨우 남편에게 맡겨 놓고는
이른 시간 감독에 늦지 않으려고 뛰쳐나왔다.
운전을 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미안해서, 내 상황이 안타까워서.
시험장에 도착하자, 하나 둘 수험생들이 보였다.
아이를 응원하는 부모님도, 시험장으로 들어오는 여학생들도
긴장되어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들의 꿈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꿈을 이루고 나면, 그 꿈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저 노력을 하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까?
결국 종착지가 육아라면, 우린 모두 왜 이 노력을 하고 있는 걸까?‘
그날 내 상황 때문인지, 그저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였다.
휴대폰까지 본부에 제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이가 괜찮기를 바랄 뿐이었다.
긴 감독이 끝나고 끊어지는 허리의 고통보다 아이의 상황이 궁금했다.
휴대폰을 처음 켜서 확인한 건
아이는 어린이집 사과밭 체험이 있어 함께 길을 나섰고
가는 길에 잠이 들었다고.
아이를 깨웠더니 “선생님, 나 힘들어.”라고 말했다고.
그리고 낮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의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어린이집 알림장에 선생님께서 글을 써 놓으셨다.
남편이 일을 겨우 마치고 반차를 내어 아이를 부랴부랴 데리러 갔다는 것까지 확인하고는
참으로 멍청한 나 때문에 아이가 고생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
한번 싫은 소리 하는 게 어려워서, 아이가 괜찮아질 거라 생각한 것이 미안했다.
나로 인해 누군가 피해보는 게 싫어서, 아이를 힘들게 했다.
아이를 보러 집으러 돌아가는 길 내내 스스로에게 한 말이었다.
‘멍청해서 미안해. 엄마가, 멍청해서 참 미안해.’
아이가 아프니 수능 감독에서 빠지겠다는 말을 못 한 내가 참 멍청해 보였다.
그런데, 내 책임을 다 하는 일이 멍청한 일일까.
꿈을 이루는 일이, 그 꿈에서 내 책임을 다 하는 일이 멍청한 걸까.
그런데, 나는 왜 그날 내가 그토록 멍청해 보였을까.
일을 하는 엄마는 당연히 겪어야 하는 숙명인 걸까.
그러다, 수능 시험장에서 본 여학생들이 떠올랐다.
파리한 얼굴로 연신 시계를 체크하며 그 오랜 시간 시험을 치던 아이들.
그 얼굴들 위에 수능 시험장에서 긴장하던 고3의 내 얼굴이 겹쳐 보였다.
나도 그랬지, 저 아이들처럼.
시험을 치른 아이들의 꿈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긴장한 만큼,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 결과가 그들의 꿈에 한발 더 다가가는 발판이기를.
하지만 그 꿈보다 그 꿈을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혹은 꿈을 이뤘음에도 스스로를 멍청이로 여기는 일이 없길 더 바란다.
아이를 기르는 것과 일을 하는 것에 그 어떤 것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오늘 하루는 그런 날을 꿈꿔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