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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Feb 02. 2022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외국에서 더욱 뚜렷해진 정체성

오랫동안 남북 이슈를 다루며 많은 탈북민들을 인터뷰해왔다. 또한 북한 인권이나 통일 운동 관련 시민단체장, 기관장, 정책자들을 만나왔다. 이런 이들끼리 공통적으로 자주 나누던 말이 있는데, 외국에 나가면 우리 모두는 그저 하나의 코리안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정말 그럴까.


20년 전과 10년 전이 다르고, 10년 전과 오늘이 참 다름을 요즘 체감하는 중이다. 최근 캐나다 청년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다가오는 봄에 한국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던 한 학생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느 날 식당에서 테이크아웃 요리를 하나 주문해놓고 기다리는데, 카운터에 아시안 여성이 있길래 혹시 한국인이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 여성은 마치 '또야?'라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은 베트남 사람이며 왜 자꾸 한국인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상하다. 이 레퍼토리, 원래 우리들 것 아니었나? 외국에만 나가면 중국인이냐고 물어오는 경우가 너무 많았으니... 그런데 이곳 캘거리엔 한국인이 그렇게 많지도 않다. 물론 소도시보다야 많겠지만 밴쿠버, 토론토 등에 비할바는 못된다. 그렇다면 숫자적으로 많은 중국인과는 달리, 인지적으로 많이 알려진 한국인이라서 생긴 현상으로 봐야 할까.


이 이야기를 들려준 학생은 자신이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던 중이어서 한국인을 만나면 말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에 그 종업원에게 다가간 것이라 했다. 물론 한국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었으니 '아시안 = 한국인'으로 더 보였을지 모르나, 그 종업원도 자주 그런 질문을 받았다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에 알려지고 K팝이 유행하면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진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외국인들은 더 명확하게 묻는다. 남, 북 어디에서 왔느냐고.


사실 20년 전 해외에서 KOREA란 나라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는 외국인을 만난 적이 있다. 10년 전에는 북한이 (부정적 기사로 인해)더 유명했던 탓에 김정일이 나오는 뉴스를 틀고 나에게 "너네 나라 소식"이라며 친절하게 알려주던 사람도 있었다. (본인 손에 삼성 폰을 쥐고도 그것이 한국 브랜드인지 모르던 사람이었다.) 전에는 한국을 아예 모르거나, 아니면 알더라도 남북을 헷갈려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확실히 달라졌다. 한국을 알면서 명확하게 남북을 구분할 줄 아는 이들이 정말 많아졌음을 체감한다. 그래서 나는 더 명확하게 나를 소개한다. 상대가 잘 모르면 나도 대충 설명하고 지나가지만, 상대가 많이 알면 허투루 대답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제 말투 때문에 꼭 북한에서 왔느냐고 묻더라구요. 그게 좀 불편해요. 외국 나가면 코리안이라고 하면 더 안 묻잖아요."


이렇게 말하던 탈북 청년 하나가 떠오른다. 그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었는데 혹시 지금 다시 만나게 된다면 다른 대답이 나갈 것 같다. '아니야. 여기 사람들은 북한 말투를 몰라도 다시 꼭 물어봐. 남북한 어디에서 왔느냐고...'


그래서 가슴 한편에 안타까운 마음이 동시에 든다. 한국이 알려져서 좋은데, 나는 더 분명한 '남한인'이 되어간다. 한국인이라 답할 땐 한반도 지도가 연상됐는데, 남한인(South Korean)이라 답할 땐 저절로 지도를 반으로 접어 남쪽만을 떠올리게 된다. 나의 정체성은 더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외국 나가면 애국자 된다는 말과는 다른 개념이다. 애국심은 자부심과 결부되는데, 앞서 말해온 건 정체성과 결부된다. 우리는 대부분 (남북의 구분 없는, 전통적인)'한민족'의 정체성을 담고 살아왔지만 이제 막 한국에 관심이 생긴 외국인들은 현대적인 정체성을 자꾸 캐묻는다. 그래서 한국인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부분을 다시 자각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분단민이란 것을...


어떤 면에서는 좋은 현상일까. 그냥 우리네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세계가 함께 바라볼 문제가 되어버리면 해결책을 찾는 데엔 더 큰 힘이 될 테니까. 


한국어를 가르쳐달라며 또박또박 써내려 간 연습장을 보여주고,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돌 음악에 허밍으로 반응하고, 매워서 피할 줄 알았던 떡볶이를 나보다도 더 잘 먹는 모습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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