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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Aug 27. 2022

디어 이탈리안 젠틀맨

Dear Italian Gentleman

따져 보면 살면서 우리는 과거엔 친밀했으나 현재엔 연(緣)이 끊어져 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그중엔 이런저런 이유로 안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이야기하라면 대개는 먼저 첫사랑, 두 번째 사랑, 그리고 또 사랑 등 이런 과거의 연인들을 줄줄이 떠올리겠지만 이 글에서 연인 그룹은 제외입니다. 물론 그것도 있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현재 사는 모습이 궁금한 과거의 그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헤어진 이산가족처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엔 "거기까지는 좀.."이란 마음이 들어 그런 시도까지는 하지 않는 그룹입니다. 그래도 요즘은 sns가 발달해있으니 그런 곳에 들어가 혹시 있나 없나 확인까지 하는 정도가 맥시멈 시도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없으면 바로 끝이지만 있어도 그가 사는 모습을 훔쳐보고 나오는 정도에서 이 일은 마감이 되곤 합니다. 그래서 이런 그룹의 사람을 정의하면 "과거의 끊어진 연으로 현재 그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는 하나 직접 찾아 나서기는 그렇고 혹시나 자연스레 연이 닿으면 볼 수도 있는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 그 sns에 찾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곳 메신저 기능을 통해 연락을 취하기도 할 것입니다.     


제가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어떤 사람은 그런 sns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저의 과거 친구입니다. Sns라고 해봤자 제가 들어가 추적해 본 것은 페이스북이 전부였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동명의 어떤 사람을 보고 긴가민가 헷갈린 것은 그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고 외국인인데 20여 년 전에 만나 그의 20대 후반 모습만 기억하고 있는 저로서는 그의 현재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어서입니다. 통상 백인들은 우리보다 노화가 빨리 진행되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수염이라도 얼굴을 덮고 있으면 그 모습은 더욱 유추하기 힘들어지는데 하필 그나마 비슷하다고 느낀 어떤 후보자가 수염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어서 저를 더 힘들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 그는 민머리 스타일이었는데 프로필 사진에 올라온 그의 모습엔 적당한 머리카락도 있습니다. 뭐 그것도 요즘은 가능해졌으니까요. 하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라네요.


제가 찾는 사람의 이름은 로베르토 포데라(Roberto Fodera)입니다. 미들 네임도 있긴 합니다. 퍼스트 네임이 로베르토인 것을 보면 그는 이탈리아계 남자일 것입니다. 이탈리아 남자는 주로 오(o)로 끝나고 여자는 아(a)로 끝나니까요. 마리오는 남자이고 마리아는 여자입니다. 물론 페이스북 속 동명의 그가 수염이 있다 했으니 남자라는 사실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현재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멋진 그는 확정된 그가 아니니 확실한 정보라 할 수 없겠습니다.


이탈리안 젠틀맨의 친필 서신


그러함에도 제가 페이스북의 멋진 그가 제가 찾는 로베르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그가 과거에 꽤나 핸썸한 외모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광고를 한다는 제게 그는 그의 고국 이탈리아에서 아르마니 브랜드의 인쇄 광고 서브 모델로 출연한 적이 있다고까지 했으니까요. 요즘 활동하고 있는 할리우드 배우들 중에선 제이슨 스타뎀의 젊은 시절 모습을 닮은 그였습니다. 그런데 로베르토는 그보다는 깨끗하고 부드럽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페이스북에서 본 로베르토의 현재 직업이 예술가라는 것은 제가 찾는 로베르토와의 연결성을 흐리게는 합니다. 그는 공대 출신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공대 출신이라고 예술가가 되지 말란 법도 없고 제가 기억하는 한 그는 예술성도 갖춘 친구였기에 동명의 그가 긴가민가 후보 수준까지 오른 것입니다.


1990년대 후반 저는 광고회사 오리콤에 재직하며 미국 플로리다주 중동부 올랜도 근처 해안가에 있는 멜버른이라는 소도시로 영어 연수를 갔습니다. 회사에서 그곳에 있는 플로리다공대 산하 ELS(English Language Services)로 2개월 여간 영어 연수를 보내준 것입니다. 세계화를 화두로 띄운 당시 문민정부의 정책으로 기업 해외 연수가 급 활성화되어 추진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제가 전에 이곳에 쓴 글인 <미국의 주인이 된 사람들>과 <공항의 미아> 등에서도 언급했던 그 연수입니다. 자평이지만 그 연수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제가 과거 그 넓어진 세계의 경험을 자산으로 20여 년 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들어갈 것입니다. 당시 회사의 사장님은 연수 출발 전 인사 자리에서 2개월 간 영어를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보다는 가서 미국이라는 넓은 나라를 보고, 배우고 오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장님의 지시에 따라 영어 수업은 뒷전에 두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곳저곳을 열심히 보며 다녔습니다. 당시 저는 연수 전후, 그리고 중간 휴일을 이용하여 미국 오른쪽의 맨 아래 플로리다의 끝에서부터 남부의 조지아, 테네시, 그리고 동북부의 뉴욕과 나이아가라 폭포를 넘어 캐나다의 몬트리올, 토론토, 퀘벡 등까지 보고 왔으니까요.


그때 ELS에서 만난 친구가 이 글의 주인공인 로베르토입니다. 일단 제가 그와 친하게 지낸 것은 교실 안 다른 친구들은 대개 전 세계 이곳저곳에서 온 10대의 어린 학생들이었는데 반해 그만이 저와 비슷한 연배라 말이 통했기 때문입니다. 아, 아니 말은 안 통해도 이렇게 저렇게 다른 방법으로 서로 통하고 지냈습니다. 그는 태어나고 자란 곳은 시칠리아였지만 사는 곳은 루체른이라 이탈리아와 스위스 여권 두 개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첫 대화에서 그가 시칠리아 태생이라 했을 때 제가 영화 <대부>를 이야기하며 무서운 친구라 했더니 환하게 웃으며 조심하라고 했던 그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는 개인 자격으로 영어 연수를 겸한 리프레쉬 휴가로 따뜻한 미국 플로리다에 왔다고 했습니다.  


이탈리안 젠틀맨의 고향인 시칠리아의 한 정경 (출처, pixabay)


그는 독특한 정신세계의 소유자였습니다. 언급했듯 예술성도 강했지만 일본 불교에 심취한 그는 후에 저와 동반한 여행 시 조석으로 하루에 두 번씩 조그만 불상을 앞에 놓고 뭔가 그만의 짧은 종교의식을 치르곤 하였습니다. 마치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 장군이 큰일 전 그의 가족이 섬기는 신상들을 앞에 놓고 기도를 올리듯이 말입니다. 그때 저는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뒤에서 기도하는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만 보았습니다. 민머리인 그였던지라 저의 눈엔 그런 그의 모습이 마치 불자 승려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서양인이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독일인은 아닌 그였지만 헤르만 헷세의 소설인 <데미안>과 <지와 사랑>에서 영성 세계가 강한 인물인 데미안과 나르치스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저는 그 순간 그 소설들에서 지극히 세속적인 인물인 루이 싱클레어와 골드문트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매일 그렇게 엄숙하고 경건한 시간이 있는 그였지만 그래도 평소엔 매우 낙천적이고 유쾌한 그였습니다.  


4주 ELS 교육이 끝난 후 3일 간 짧은 방학이 주어졌습니다. 저와 로베르토는 남쪽 마이애미를 거쳐 세븐마일브릿지를 건너 미국 최남단 섬인 키웨스트를 찍고 돌아오는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을 하였습니다. 여행 중 생각나는 것들 중 하나는 마이애미와 키웨스트 숙소 도착 시 가는 곳마다 프런트 점원이 우리 보고 더블 침대 방과 트윈 침대 방 중 어떤 방을 원하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질문은 보편적으로 들리지 않는데 20여 년 전 그 질문은 저를 매우 당황하게 하였습니다. 처음엔 둘 다 못 알아들어 갸우뚱했지만 웃지 못할 그 질문에 우린 이내 웃고 대답하며 트윈 룸 키를 받았습니다. 같은 미국의 플로리다지만 남쪽으로 갈수록, 태양 빛이 더 강해지는 카리브해가 가까워질수록 이국적인 정경만큼이나 이국적인 느낌까지 받은 에피소드였습니다. 특히 자유 영혼을 대표하는 작가 헤밍웨이의 집이 있던 키웨스트는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성소수자 게이들의 집합처로 매우 유명했습니다.    


긴 거리에 비해 짧은 여행이었지만 로베르토와 저는 그 시간을 통해 더 가까워졌습니다. 여행을 같이 하고 서로 밥상을 나누면 니체가 이야기했듯 사람 간 사이는 가까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그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에서 남자가 여자와 가까워지는 법으로 그렇게 겸상을 추천했지만 그것은 비단 남녀 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탈리안 젠틀맨과 함께 간 키웨스트 헤밍웨이의 집 그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4주 간 수업을 마치고 수료식 후 로베르토와 저는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가는 길에 미국에 온 김에 서부 캘리포니아 여행을 하고 귀국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길지는 않은 시간을 말도 덜 통하며 지냈지만 그와 저는 이별을 아쉬워하며 헤어졌습니다. 일본 불교 신자인 그였던지라 일본에 익숙한 그는 다음번 일본 방문 시엔 한국을 꼭 오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의 말을 들었을 때 그 약속이 100프로 이행될 거라는 생각은 안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도 스위스 루체른이나 이탈리아를 가면 연락을 취하겠다고 했지만 이후 훗날 제가 갔을 때엔 이미 서로 연락이 끊긴 상태였습니다. 로베르토도 그다음 그의 일본 여행이 저와의 연락이 끊어진 후라 그랬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귀국 후 몇 년 간 서로 연락은 이어졌는데 말입니다. 그는 지금 그의 고향 이탈리아의 시칠리아로 돌아가서 살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제게 이야기 했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페이스북에서 본 시칠리아 팔레르모에 사는 그 예술가 로베르토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남자는 크게 두 부류로 보입니다. 나쁜 사기꾼과 멋진 젠틀맨으로 말입니다. 사실 어느 나라 남자도 그것은 다 마찬가지이지만 이탈리아 남자에겐 이 구분법이 참으로 적합해 보입니다. 로베르토가 제가 만나서 경험한 이탈리안 중 최상의 멋남이듯 제겐 나쁜 사기남의 경험도 있습니다. 그 미국 연수 전 해 갔던 유럽 배낭여행 시 로마에 저녁 무렵 기차로 도착한 저는 테르미니 중앙역에서 그 유명한 로마의 삐끼를 따라 어떤 호텔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돈 없는 배낭여행객인지라 민박집 수준의 숙소였습니다. 당시엔 요즘처럼 예약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대라 어떤 도시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바로 숙소를 정하곤 했습니다. 삐끼 중에서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저씨를 따라간 것인데 그는 갖은 몸짓으로 그 숙소를 예찬하였습니다. 특히 아침 식사로 산해진미의 뷔페가 좌악 깔린다는 그의 현란한 프레젠테이션에 배고픈 여행자는 귀가 솔깃해 따라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더 허름한 숙소는 그렇다 쳐도 아침은 콘티넨탈식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볼품없는 빵과 주스만이 제공되었습니다. 물론 이 정도는 로마 여행에서 사기라고 하기엔 매우 소프트한 축에 들어갈 것입니다. 배낭여행 중 삐끼를 따라 술집에 갔다가 거덜이 났다는 사례가 속출하던 시대였으니까요.


이탈리아를 동경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아예 거주지를 이탈리아로 옮겨 피렌체에 살며 독학으로 그 나라를 마스터한 일본인 여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그녀의 에세이집 <남자들에게>에서 남자들의 멋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말이 이야기지 사실은 그녀가 남자에게 주입식 교육을 합니다. "남자들이여, 내 말대로 제발 멋있는 남자가 돼라"라고 말입니다. 그녀가 가장 멋있다고 평가한 남자는 역사 속 인물인 로마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였습니다. 그녀의 저서 중 가장 대중적인 <로마인 이야기>에서 그녀는 그에 대해 거의 우상화 작업을 했을 정도로 그의 팬이었습니다. 카이사르는 생전에도 로마의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는 그 인기에 힘입어 돈 많은 여성들에게 많은 돈을 빌려 빚을 지고 살았습니다. 권력 유지에 필요한 돈이었을 것입니다. 브루투스에게 암살을 당하면서 그가 그녀들에게 진 그 많던 빚은 다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탈리안 젠틀맨을 떠오르게 하는 <남자들에게> / 시오노 나나미 지음 / 이현진 옮김 / 한길사 출판


그만큼 콧대 높고 남자에게 인색한 시오노 나나미가 그녀의 <남자들에게>에서 그녀가 직접 만난 한 이탈리아 남자를 찬미합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탈리아 전 수상인데 그 수상이 그녀와 오피스에서 만나는 시간엔 비서에게 일체 전화를 연결하지 말라고 지시한다며 그 점에 후한 점수를 준 것입니다. 그가 그녀를 접견하며 딱 한 번 전화를 받았는데 그 전화 선이 쿠데타나 혁명, 대 재해 등에 준하는 사건에만 연결되는 전화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 그녀는 추남임에 틀림없다는 그 이탈리아 남자에게 매력을 느껴 섹시하다고까지 격찬을 합니다. 여자에게 단 10분이지만 온전하게 그 시간을 다 주는 그는 여자를 관능적으로 다룰 줄 아는 남자라며 이것은 성공한 남자의 능력을 넘어선 무시할 수 없는 효용이라고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녀는 그에게서 그 순간 카이사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봤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만난 이탈리아 남자 로베르토에겐 그는 모르는 저만의 후회스러움이 있습니다. 그와 여행 시 전 그에게 선글라스를 빌려주었습니다. 햇살의 주(Sunshine State)인 플로리다로 연수를 간다 하니 서울에서 출발 전부터 두 개를 준비해 갔는데 그중 제게 안 어울리는 하나를 그에게 빌려준 것입니다. 그런데 저와는 달리 잘 생긴 데다가 코도 오뚝한 그에겐 참으로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그도 그 선글라스를 만족해하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바로 그에게 선물할까 말까를 고민하였는데 끝내 주지를 못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광고주였던 레이번 선글라스를 사내 특판으로 사서 가격도 싼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아까운 마음이 들었는지 행동까지는 옮기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 그와 헤어질 때라도 줬어야 속이 편했을 텐데 그땐 또 타이밍을 놓쳤다고 생각해서 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확실히 선물은 타이밍입니다. 타이밍이 어긋나서 주는 비싼 선물보다 값이 싸도 절묘한 타이밍에 주는 선물이 훨씬 가치 있다는 것입니다. 전 아직도 그 선글라스를 가지고는 있지만 그것은 나이가 들고 들어도 계속해서 역시 또 어울리지 않아 여전히 쓰지 않고 있는 애물 글라스가 되었습니다. 그는 귀국 후 제게 귀한 엽서라며 그가 당시 살았던 루체른 도시의 역사가 담긴 엽서 꾸러미를 선물로 보내주어 전 지금까지 그것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에게 당시 한국적인 선물을 보내줬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타이밍을 놓쳐 주지 못한 선물은 이렇게 잘 기억하면서 정작 보내준 선물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탈리안 젠틀맨에게 갔어야 할 문제의 그 선글라스
이탈리안 젠틀맨이 보내준 루체른 도시의 역사가 담긴 엽서


플로리다 연수에서 귀국한 그 달에 첫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내의 산달이 거의 다 되어서 갔던 연수였으니까요. 아, 아직까지 둘째가 없으니 그 아인 처음이자 마지막 아이가 되었네요. 그때는 그 아이가 끝 아이가 될지 몰랐습니다. 당시 로베르토가 보내준 축하 편지의 인사가 생각납니다. " 미스터 하, 리틀 하가 태어났군. 축하해! 넌 이제 패밀리에서 그레이트 패밀리가 된 거야."


제 생애 언젠가 그 멋진 이탈리안 젠틀맨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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