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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Dec 23. 2023

과하거나 모자라지만.. 영화 '나폴레옹'

제가 중학교 재학 시절 참고서의 왕은 <완전정복> 시리즈였습니다. 파란색 표지에 교과서 중 사이즈가 컸던 지리부도나 미술책만한 그 참고서는 학년별 과목별로 모두 나와 학교 앞 서점 매대를 파랗게 도배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참고서 표지엔 외국의 역사적인 한 인물이 당시 모든 대한민국 중학생들에게 무언가 명령하는 듯한 격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나를 따르라"는 동작처럼 보였습니다. 그때 그는 책 표지 위에서 말을 타고 알프스를 정복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가 그를 따르라고 한 말의 근거는 "내 사전엔 불가능이 없다"라는 유명한 그의 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를 따라 그 참고서를 집어서 공부를 하면 그가 알프스를 정복했듯이 그 과목을 정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던 것입니다.


마상에서 트레이드 마크인 모자를 쓰고 망토를 휘날리며 전진 앞으로 하는 그는 바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1769~1821)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중학생들은 1학년이 되면서부터 이렇게 3년 동안 그를 만났습니다. 그의 일대기나 그의 조국인 프랑스의 역사에 대해선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배우지 않으면서도 그가 외쳤다고 하는 위의 두 말은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는 그의 말은 잘 들리지 않습니다. 뭐든지 하면 된다라는 힘으로 밀어붙이던 사회에서 유연하고 합리적인 사회로 우리나라가 선진화되면서 학교의 새 학기 조회나 기업의 새해 신년사 등에서 그 격언이 덜 인용되면서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는 그의 명령도 어느 날부터인가 그 산의 완전정복이 아닌 "이 산이 아닌가벼" 등의 유머 소재로 전락하며 그것을 외친 나폴레옹이 희화화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중학교 참고서 표지에 등장하면서 아이돌이나 예체능 스타가 부재했던 그 시절 우리나라 10대 초중반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데 일조한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위인전이 잘 나가던 시절이기에 그 책들을 통해 국내는 물론 많은 세계적인 위인들을 만나고 그가 좋아하는 위인을 롤모델로 삼아 성장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다양한 미디어가 출현하기 전 종이책이 홍수를 이루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완전정복> 시리즈를 펴낸 곳은 동아출판사로 해방이 되던 1945년 문을 연 유서 깊은 출판사였습니다. 그 출판사는 1985년 두산그룹에 인수되어 두산동아가 되었고, 이후 2014년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는 한세그룹의 예스24에 인수되어 지금은 사라진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완정정복> 참고서 표지에 등장했던 알프스의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보나파르트>, 다비드, 1801


나폴레옹이 요즘 시끄럽습니다. 국내에선 조용하지만 해외에선 시끄럽습니다. 인물 나폴레옹이 아니라 영화 <나폴레옹>입니다. 영화로는 국내에선 <서울의 봄>이 시끄럽습니다. 해외에서 시끄러운 <나폴레옹>은 사실 그의 조국인 프랑스에서만 그렇게 시끄러운 것 같습니다. 이 두 영화가 국내외에서 시끄러운 것은 모두 역사적인 사실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그 역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창작물이고 두 영화 모두 영화 시작 전에 사실에 기초한 허구라는 사실을 자막으로 알려도 그 허구를 받아들이기 힘든 관객이나 비평가들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물론 연출자가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그 사실이나 허구에 그것들을 주입시키기도 해서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럴 때 연출자는 예술은 자유이고 판단은 오로지 관객 몫이라며 그 비난을 묵인하거나 피해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아무 문제 없이 성립하려면 그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이 그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실상은 그러기가 힘들기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영화는 역사책보다 쉽고 직접적이며 자극성이 강하기에 어떤 관객은 그것을 곧바로 그대로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해 버리니까요.


사실 영화 <나폴레옹>도 그런 논쟁이 이미 여러 미디어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어 굳이 글을 쓸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오늘(12/19) 아침 페이스북에서 미국에 사는 어떤 페친이 쓴 글이 동기가 되어 이렇게 감상문을 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미 거의 다 써놓은 어떤 원고는 한 주 밀리게 되었으니 저로선 다음주가 편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쓴 글은 영화 <나폴레옹>에 열받은 어느 프랑스 유튜버가 올린 영화 속 역사왜곡과 심증이 강한 연출자의 고의성에 대한 비난과 함께 그것을 교정한 내용의 동영상을 번역해서 올린 글이었습니다. 아, 불어까지 아는 것으로 심증이 가는 그는, 아니 그녀는 한국인입니다. 최근 국내에 소설 <도림천 연가>를 낸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 글의 제목에서 보이듯 영화 <나폴레옹>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제 기준엔 어떤 것은 과하고 어떤 것은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먼저 과한 것은 논란이 되고 있는 조세핀과의 관계 부분입니다. 연출자인 리들리 스콧 감독은 러닝타임 158분의 긴 영화 중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관계를 과하게 많이 다루었습니다. 좋게 이야기하면 아름다운 연정 영화일 정도로 할애했고, 안 좋게 얘기하면 불편한 치정 영화로 보일 정로로 그 둘의 관계는 많이 나옵니다. 불편한 치정이라고 하는 것은 나폴레옹은 조세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바보 같은 남자로 나오고, 조세핀은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창녀 수준의 팜므파탈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창녀와 팜므파탈은 실제 영화에서 그녀를 가리키는 대사입니다.


남녀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 <나폴레옹>의 포스터


과연 프랑스를 벗어나 유럽의 최고 권력까지 가진 통령이나 황제를 대상으로 그 시대 그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조세핀은 나폴레옹과 상관없이 자유롭습니다. 프랑스혁명기인 그때 진보적인 여성 운동가인 올랭프 드 구즈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등은 여권 쟁취를 위해 그녀들의 목숨까지 걸고 기득권 남자들과 투쟁하던 시절이었는데요. 하긴 베갯머리 송사라고 남녀의 문제는 아무도 모르지만 대중적인 장르인 영화에선 현실감이 떨어져 보이는 부분입니다. 감독이 프로이트를 지나치게 탐독한 듯합니다.


물론 나폴레옹이 과하게 조세핀을 사랑하는 것은 현실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다 취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황제라도 한 여자에게 그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영화에서 그것이 그 남자의 순정으로 느껴지려면 그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동화가 되어야 하는데 영화 속 나폴레옹에겐 그것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그 커플의 사랑 행태도 그렇지만 나폴레옹으로 출연하는 명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외모와 행동도 그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혹시 저만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현실에서 나폴레옹은 처음엔 조세핀을 매우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대개의 권력자들이 그러하듯 그녀에게서 마음이 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애인을 거느리고 있어서 영화에서 조세핀과의 어쩔 수 없는 이혼 이슈가 되는 아들도 두 번째 황후인 마리 루이즈에게서 얻은 나폴레옹 2세를 포함하여 사생아까지 총 3명을 두었습니다.


외모도 나폴레옹은 35세의 황제로 즉위하기 전엔 키는 작아도 매우 잘생긴 남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의 <완전정복> 참고서의 표지 모습처럼 날렵한 외모였습니다. 화가들이 그린 다른 초상화들을 찾아봐도 그렇게 그의 핸섬한 외모는 강압성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일관성 있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실제 170cm에 못 미치는 키도 당시 유럽인들의 평균을 고려하면 그렇게 작은 키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펭귄과도 같은 작고 뚱뚱한 나폴레옹의 이미지는 당시 나폴레옹에게 피해를 당한 국가들과 라이벌인 영국이 만들어낸 이미지로 보입니다.


통상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아르콜레 다리에서의 보나파르트>, 장 그로, 1796. 27세인 그 해 나폴레옹은 조세핀과 결혼함


영화에서 나폴레옹은 20대 청년 시절부터 전혀 그런 멋진 청년의 모습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역사 왜곡 논란이 있는 1793년 마리 앙투와네트의 단두대 처형식부터 그의 모습이 나오는데 당시 그는 24세의 청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나이 들고 뚱뚱한 모습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CG 등을 통해 요즘은 젊게 보이는 연출이 가능한데 <나폴레옹>에서 나폴레옹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영화 끝 그가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는 52세까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나옵니다. 연정이든 치정이든 남녀 관계를 강조한 영화라면 6세 연상의 조세핀과 27세에 결혼하는 젊고 패기에 찬 아름다운 새신랑인 나폴레옹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처음부터 몰입감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역사적인 근거 없이 조세핀이 바람피운다고 그 먼 이집트 원정에서 급거 귀국하는 등 정세 판단력도 흐리게 나오니 과연 영웅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그렇게 나폴레옹을 코믹하게 처리한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합니다.


반면에 조세핀은 매우 매력적인 영국 배우 바네사 커비가 출연합니다. 의도가 그렇다면 팜므파탈로는 손색이 없는 캐스팅입니다. 그녀는 톰 크루즈와 출연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어느 순간부터 등장해 악당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배우입니다. 영화에서 그녀 주변엔 나폴레옹만 빼곤 매력은 모르겠지만 호리호리하고 잘생긴 남자들이 출연합니다. 그녀가 바람을 피우는 백작이나 그에게 추근대는 러시아의 황제 등은 매우 젊고 핸섬한 배우들에게 배역을 맡겼습니다. 실제로 그렇다 하더라도 통상 영화에선 남자든 여자든 주인공이라면 미남미녀가 출연해 몰입감을 높이는데 이 영화는 한편으로만 기운 것입니다. 실제로 젊고 멋지게 생기까지 한 주연인 영웅은 한 여자에게 지질하고 그녀 주변남들은 멋있게 처리했으니까요. 이런 면도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프랑스인들을 분노케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영화 속 나폴레옹에게서 그 이전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차지한 영화 <조커>의 조커가 떠올랐을지도 모릅니다. 실제 영화를 보면서 저는 조커가 나폴레옹 곁으로 몇 번이나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은 기시감을 받았습니다. 강하게 고정화된 배역 이미지가 주는 부작용일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화에서 남녀 관계만 팩트로 떼어내서 보면 영국 출신의 감독이 영국 출신의 조세핀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나폴레옹을 연출했다는 것이 부각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금세기 최고의 배우인 현실의 호아킨 피닉스와 그의 연기력과는 별개이고 외모지상주의와도 상관없는 문제입니다. 인물 연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황제 대관식에서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나폴레옹, 위는 다비드의 그림, 아래는 영화 속 그 장면 (1804)


두 번째로 모자란다는 것은 영화적인 맥락입니다. 영화는 158분 내내 전쟁-조세핀-전쟁-조세핀-전쟁.. 순으로 진행됩니다. 전쟁은 정확히는 나폴레옹이 평생 치른 수많은 전투를 가리킵니다. 툴롱 전투, 왕당파 시위(방데미에르 반란) 진압, 이집트 원정, 아우스터리츠 전투, 모스크바 원정, 워털루 전투 등 영화에선 이렇게 군인들이 다수 출연하는 전투 신이 등장합니다. 저는 전투만 떼어놓고 보면 <나폴레옹>은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과연 전작인 <글래디에이터> 초반부에서 보여준 명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그 화려하고 생생했던 전투 장면이 부럽지 않은 대단한 전투 신들이 등장합니다. 물론 그 전투를 지휘하는 나폴레옹도 매우 멋지게 등장합니다. 조세핀 앞의 그와는 전혀 다른 위엄과 결기에 찬 군인으로서 진정한 나폴레옹의 모습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특히 육군 포병학교 출신 장교답게 지축을 흔들며 대포를 쏘아대는 장면들은 역대 영화들 중 가히 최고라 할 정도로 현실감 있게 나옵니다. 한마디로 압권입니다. 역시 전투 신은 리들리 스콧 감독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오스트리아, 러시아 동맹군과 12월 눈밭에서 벌인 아우스터리츠 전투 장면을 보며 속으로 탄성을 질렀지만 전 그 뒤에 나올 나폴레옹을 완전히 몰락시킨 마지막 전투인 1815년 워털루 전투를 더 궁금해했습니다. 역시나 감독은 이 장면에 꽤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제대로 된 전투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직전의 전투 장면들에서도 그러했듯이 대개의 영화에서 적장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덜 보여주거나 안 보여주기도 하는데 워털루 전투만큼은 상대편 지휘관으로 나오는 영국의 웰링턴 공작의 모습과 그의 작전과 심리상태 등도 나폴레옹과 거의 동등하게 보여주어 그 점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벨기에의 그 평원의 전투에서 영국의 동맹국인 프로이센이 오지 않았다면 그 전투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이겼을 것입니다. 영화에서도 나오듯 나폴레옹과 웰링턴 모두 그 전투의 변수인 프로이센 군의 합세에 대한 긴장감과 염려 속에 치러진 전투였으니까요. 이 영화에선 다루지 않았지만 그 이전 벌어진 이베리아 반도 전쟁(스페인 독립전쟁, 1808~1814)에서도 프랑스에 승리한 웰링턴 장군은 그 전쟁 후 나폴레옹에 대한 솔직한 그의 속내를 드러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 때문에 스페인에서 발을 빼 이겼다고 말입니다. 그 정도로 나폴레옹과 그의 육군은 넘사벽으로 당시 유럽 최강이었습니다.


백일천하 시 벌어진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인 워털루 전투의 영화 속 장면 (1805)


전투 신은 충분했지만 모자라는 것은 이런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나폴레옹이 왜 거의 유럽의 모든 국가들을 상대로 그런 전투들을 해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폴레옹의 유럽 전쟁은 후대에 유럽 정복을 꿈꾼 독일의 히틀러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의 조국 프랑스가 당시 국제 정세 속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당하지 않기 위해 전쟁을 벌인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히틀러처럼 가만히 있는 나라들을 침공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히틀러는 나폴레옹을 매우 존경해 나치 독일이 파리를 점령했을 때 그곳을 방문해 나폴레옹의 묘가 있는 앵발리드를 찾아갔습니다. 불과 3시간밖에 머무르지 않은 짧은 파리 일정에 나폴레옹 참배를 넣은 것입니다.


영화에서 모자라는 것은 전투에 대한 설명력도 그렇지만 그를 프랑스의 지도자로 올라서게 한 1799년 브뤼메르 쿠데타나 1804년 황제 즉위 등에 대한 전후사정도 부족하게 나옵니다. 물론 시간이 제한된 영화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곤 하지만 그것을 접고 들어가도 생략이나 점프가 많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조세핀과의 장면은 과할 정도로 많이 할애했으니 균형감이 떨어진다는 평을 듣는 것입니다. 당시 유럽의 정세나 혁명기 프랑스의 상황, 나폴레옹 개인의 일대기를 잘 모르는 관객들은 이 영화를 얼마나 이해하고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세핀과 연애 장면을 보다가 얼떨결에 전투 장면을 보게 되고, 전투 장면을 보는가 싶으면 또 조세핀이 나와 있고.. 이런 반복이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파리를 점령한 독일의 히틀러가 앵발리드에 잠들어 있는 나폴레옹을 참배하는 모습 (1940. 6. 28)


독일의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의 3번 <영웅> 교향곡을 작곡했습니다.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의 실패를 기념하여 그의 서곡 <1812년>을 작곡했습니다. 둘 다 프랑스인이 아닌 다른 나라의 음악가들입니다. 물론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다시 왕정으로 복고하고 황제에 오르자 지지를 철회하긴 했습니다. 대신 그는 스페인에서 프랑스를 물리치고 몰아낸 웰링턴 공작을 찬양하는 곡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단편적으로 그 정도로 나폴레옹이 당시 프랑스를 벗어나 유럽 전체를 뒤흔든 불세출의 인물이란 사실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럽은 영국에서 일어난 기계의 혁명인 산업혁명과 프랑스에서 일어난 인간의 혁명인 프랑스혁명으로 바야흐로 근대 사회로 진입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그레이트브리튼 섬을 벗어나 벨기에의 플랑드르 지방 등을 기점으로 유럽 대륙으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었지만 프랑스의 대혁명은 그것을 전전긍긍하며 결사적으로 막는 다른 왕정 국가들 때문에 전이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이때 그 나라에서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이 혜성같이 등장해 전 유럽을 오가며 유럽을 하나의 땅으로 만들며 그 혁명의 메시지를 전파한 것입니다.


그가 오가면서 프랑스혁명의 사상과 철학, 정치 체제 등이 자연스레 모든 유럽 국가들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단 프랑스의 오지 코르시카 섬의 가난한 하급 귀족 집안 출신인 그가 그 큰 나라의 황제로 즉위한 것만 해도 전 유럽인들은 경천동지할 뉴스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만큼 나폴레옹의 등장은 그의 탁월한 군사적인 이유를 떠나서 전 유럽을 변화시킨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유럽은 각성하여 절대왕정의 시대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진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나폴레옹의 이런 의미와 위대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 기억될 수밖에 없는 영화 엔딩 자막에선 나폴레옹으로 인해 죽은 많은 유럽인들의 숫자를 친절하게 올려주기까지 합니다.


워털루 전투 촬영을 위해 호아킨 피닉스에게 나폴레옹의 연기를 지도하고 있는 리들리 스콧 감독


리들리 스콧 감독은 2000년에 개봉한 명화 <글래디에이터>에서도 영화의 우수한 품질과는 상관없이 이런 역사 왜곡으로 논란이 있었습니다. 일단 러셀 크로가 연기한 주인공인 막시무스 장군부터가 실제 존재한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황제로 등장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북동부 게르마니아 국경 전투지에서 병으로 죽었지 그의 아들에게 살해당하지 않았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영화에서 그 황제의 나쁜 아들인 콤모두스로 나온 연기자는 <나폴레옹>에서 주연인 나폴레옹으로 출연하고 있는 호아킨 피닉스였습니다. 그 영화의 악역 연기로 그는 할리우드에서 스타 배우로 떴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영화에서도 영화 <나폴레옹>과 같은 감독의 의도성이 엿보였는데 그것은 바로 공화주의입니다. <글래디에이터>에서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가상의 인물인 후계자 막시무스를 통해 과거 공화제였던 로마로의 회귀를 꿈꿉니다. 하지만 그 설정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설정이었습니다. 로마는 당시 그럴 상황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현제라 불린 다섯 황제들의 시대를 거치며 최대 영토와 최고 시대를 보내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였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공화주의를 신봉해 그런 설정을 넣은 것 같습니다. 이번 그의 대작 <나폴레옹>에는 공화제에 대해 언급은 없지만 나폴레옹은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간신히 수립한 공화제를 1804년 뒤집어 다시 왕정으로 복고시킨 인물입니다. 그가 영국인이고 나폴레옹은 영국과 역사적인 라이벌인 프랑스인이라서, 아니면 그는 공화주의자인데 나폴레옹이 공화주의를 파괴해서 혹시라도 영화 속 나폴레옹을 다운그레이드 시킨 것이라면 우린 이런 것을 가리켜 음모론이라고 부릅니다.


<나폴레옹>의 제작사는 애플 스튜디오로 이 영화는 곧 애플 TV를 통해서 안방에서도 공개될 예정입니다. 영화는 158분이지만 TV에선 240분 이상으로 편집해서 나온다고 합니다. 부디 위의 모자라는 부분들이 다 채워져서 제대로 완성된 <나폴레옹>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마치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명작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최초 극장 개봉 시 139분으로 나와 망작으로 비난받다가 훗날 251분짜리 디렉터스 컷으로 재개봉되어 환호와 갈채를 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하게 표현된 조세핀과의 치정 부분도 어느 정도는 균형이 맞아 보일 것입니다.


시사회의 레드 카펫 위에 선 영화 <나폴레옹>의 호아킨 피닉스(나폴레옹)와 바네사 커비(조세핀)

 


* 본문에서 사용된 영화 이미지들은 네이버 영화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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