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 그는 운문과 산문을 자유자재로 넘나든 다작의 작가이지만 그의 모국인 영국(잉글랜드)을 배경으로 한 허구성 희곡은 단 한 편밖에 쓰지 않았습니다. <윈저의 유쾌한 아낙들>이란 작품입니다. 존, 리처드, 헨리 이름을 단 잉글랜드 왕들을 소재로 한 10편의 작품들은 모두 역사적 인물이니 순수한 허구라고 볼 수 없습니다. <리어왕>은 고대 브리튼 왕국, <멕베스>는 스코틀랜드가 배경이니 엄밀히 말해 그의 모국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희곡은 무려 10편이나 썼습니다. 그가 쓴 전체 희곡의 1/3을 넘는 수준입니다. 이것은 꽤나 놀라운 일입니다. 작가들은 대개 그가 태어난 나라나, 그가 살던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주로 쓰기에 그렇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설령 허구라 할지라도 정확도 면에서, 그리고 작가의 경험이 작동하기에 덜 불편해서 그럴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와 동시대를 살다가 신기하게도 같은 해 비슷한 날에 죽은 세르반테스나 괴테, 톨스토이, 빅토르 위고 등 유럽의 각 나라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들의 예에서 보듯이 말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셰익스피어는 평생 이탈리아를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비롯한 문헌정보가 크게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그는 제한된 정보에 상상을 더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10편의 대작을, 그것도 모두 각기 다른 도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쓴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희곡이나 소설이 등장인물과 줄거리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그것엔 작품을 구성하는 시대 배경과 수많은 장치와 도구, 미장센까지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세에 검증해 본 결과 그의 작품들에 나오는 당시 이탈리아 각 도시의 상황이나 지명, 풍습, 방언, 음식, 의복, 법령 등이 역사적 사실과 비교해 볼 때 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정도로 정밀하니까 혹자는 셰익스피어가 생전에 이탈리아를 갔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상상만으로는 도저히 그렇게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17세기 전후 우리 조선의 어떤 작가가 중국이나 일본의 다른 도시들을 배경으로, 다른 왕조의 현지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을 무려 10편이나 썼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더구나 셰익스피어가 즐겨 쓴 운문인 소네트도 이탈리아에서 기원했습니다. 과연 진정한 이탈리아바라기인 그였습니다. 그런데 과거 유럽의 문예인들에게 이탈리아는 그런 나라이긴 했습니다. 고대 로마 제국과 근대를 연 르네상스의 유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나라였으니까요. 그래서 독일의 괴테도 가고픈 이탈리아를 여행한 후 1817년 <이탈리아 기행>을 썼고, 음악의 화가라 불린 멘델스존도 버킷 리스트였던 그곳을 여행하고1833년 그의 4번 교향곡인 <이탈리아>를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이탈리아를 한 번도 안 갔음에도 그 이전인 1600년대 전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자유자재로 쓴 셰익스피어는 그저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과연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 영국의 최고 보물인 셰익스피어답습니다. 그가 역사상 세계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는 1564년에 태어나 1616년에 죽었습니다.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 있는 셰익스피어 동상. 뒤편에 생가 보임.
아래는 그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쓴 10편의 희곡입니다. 작품 옆엔 배경이 된 도시입니다.
물론 이 모든 작품들은 영어로 쓰였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안이 아니고 잉글리시맨이니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가 이탈리안이고 위의 작품들을 비롯한 그의 모든 작품들을 이탈리아어로 썼어도 역사적으로, 그리고 오늘날만큼 유명해져 있을까요? 네버,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더 멀리 가서 위에서 얘기한 우리 조선의 어떤 작가가 한글로 셰익스피어처럼 많은 훌륭한 작품을 썼어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와 비슷한 해에 태어나고 죽은 허균(1569~1618)이 <홍길동전> 말고도 많은 작품을 썼어도 그가 세계적인 작가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언어 천재인 셰익스피어의 유명세엔 그의 문력과는 별개로 그의 모국이 영국이고 그가 쓴 언어가 영어라는 것도 한몫을 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1564년, 길어서 읽기도 쓰기도 힘든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태어나 1616년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생사지인 그곳은 말 그대로 에이번 강가에 있는 스트랫퍼드(Stratford-upon-Avon)입니다. 잉글랜드의 수도 런던에서 서북쪽으로 150km 정도 떨어진 소도시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곳과 죽은 곳이 같은 사람은 위인이 아닌 우리와 같은 범인이라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셰익스피어는 수도인 런던으로 진출해 생전에 큰 출세를 했음에도 다시 시골인 고향으로 돌아와 말년을 보냈습니다. 그가 태어난 생가(현 셰익스피어 센터)에서 불과 500m밖에 안 되는 곳에 런던에서 번 돈으로 마련한 근사한 새집(현 뉴 플레이스)에서 살다가 죽은 것입니다. 그는 스트랫퍼드의 생가에서 태어나자마자 동네에 있는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 가서 세례를 받았고, 새집에서 죽자마자 똑같이 그 교회에 가서 묻혔습니다. 그 교회엔 당시 발급한 그의 출생증명서와 사망증명서가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이렇듯 스트랫퍼드엔 셰익스피어의 요람과 무덤이 다 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말년을 보낸 뉴 플레이스 저택. 지금은 터만 남은 채로 관광객을 맞고 있음. 위의 노란 방패는 그의 문장
셰익스피어는 학교도 13세에 자퇴할 때까지 그 동네에 있는 문법학교를 다녔습니다. 역시 집에서 가깝습니다. 이 학교 교육은 그가 받은 정규 교육의 전부입니다. 그의 부모도 모두 스트랫퍼드에서 자라서 결혼했고, 그의 아내인 앤 해서웨이도 그곳 사람이며, 그의 자녀들도 모두 그 동네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죽었습니다. 생가도, 처가도, 분가한 집도, 자녀들 집도, 학교도, 교회도 모두 한 동네에 가까이 있었고 다행히 400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의 세 자녀까지는 후사를 남기고 결혼까지 한 손녀도 있었으나 더 이상 대를 잇지는 못했습니다. 이렇듯 셰익스피어와 스트랫퍼드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마치 그의 작품 제목으로 착각될 정도로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입니다.
셰익스피어가 13세까지 다녔던 동네 학교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였고,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는 로마 제국의 영웅이었으며,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의 여왕이었습니다. 이렇듯 셰익스피어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10편의 희곡 이외에도 그 시대에 잉글랜드를 벗어난 작품들을 거침없이 쓴 글로벌한 작가였습니다. 하지만 보듯이 그가 실제로 움직인 공간은 예상보다 작았고, 이동한 거리는 짧았습니다. 스트랫퍼드와 런던이 전부였으니까요. 오늘날 스트랫퍼드는 인구 십만의 도시이지만 그의 생존 당시는 250세대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아마도 셰익스피어가 그 도시를 키우는 데에 크게 일조하였을 것입니다. 살아서도 유명했고 죽어서는 더 유명해진 그였으니 말입니다. 스트랫퍼드는 현재 연간 600만 명 정도의 관광객이 찾는 핫플레이스입니다. 전 세계 셰익스피어주의자들이 찾는 성지가 된 것입니다. 아마도 역사상 작가는 물론 다른 분야의 위인들까지 포함하여 그들의 생가들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셰익스피어의 생가일 것입니다. 공산주의 국가의 독재자 생가는 빼고 말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그를 잇는 자손이 없던 그였기에, 그리고 과거에 유명했다곤 하지만 현재만큼은 아니었기에 스트랫퍼드에 있는 그의 생가를 비롯한 그의 유산들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매각을 거치며 주인이 바뀌면서 돈으로 환산되는 일반 부동산이 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그가 말년을 보냈던 저택인 뉴 플레이스는 터만 남아있습니다. 본채는 헐리고 높은 담으로 둘러친 정원만 남아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뉴 플레이스의 본채처럼 사라질 뻔한 셰익스피어의 생가 등이 오늘날처럼 남아있게 된 것은 그가 죽고 200여 년 후인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서 그 가치의 중요성을 인지한 한 후배 작가의 열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올리버 트위스트>와 <크리스마스 캐럴>로 유명한 찰스 디킨스가 바로 그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생가도 한때 경매에 부쳐지는 등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그가 기금 모금에 앞장서며 그의 생가를 1847년 국가기념관으로 영구 보존케 한 것입니다. 마치 독일에서 자국의 음악 후배인 멘델스존이 바흐의 사라질 뻔한 작품을 발굴하여 그의 가치를 더 높인 것처럼 찰스 디킨스도 그렇게 했습니다. 이런 그의 노력은 그가 죽은지 6년 후인 1876년 셰익스피어 재단을 발족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까지 스트랫퍼드에서 셰익스피어 지키기와 띄우기에 앞장서는 단체입니다. 현재 스트랫퍼드의 시민들은 셰익스피어가 남긴 자산과 각종 이벤트로 온 도시가 먹고살고 있을 것입니다. 고리짝 동네 어르신을 잘 둔 덕입니다.
찰스 디킨스의 노력이 더해 남아있는 셰익스피어의 생가. 그는 1564년 이 집에서 태어남.
언급했듯이 셰익스피어가 영국인(Englishman)이고 영어(English)로 작품을 썼기 때문에도 더 유명해질 수 있었고, 그 덕에 스트랫퍼드를 찾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을 것입니다. 물론 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매력적인 나라 영국의 잉글랜드 중부 에이번 강가의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중세 마을이라서도 그의 고향을 찾고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셰익스피어는 튜더 왕조의 끝인 엘리자베스 1세와 스튜어트 왕조의 시작인 제임스 1세가 통치했던 시대에 살았습니다.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치고 유럽의 헤게모니를 잡고 세계로 뻗어나가던 시기였습니다.이런 국력 신장 시기에 그것에 걸맞은 문예도 부흥했기에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들은 더 큰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이름과 그의 작품들이 유럽은 물론 전 세계로 전파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는 52년을 살면서 산문인 희곡은 36편, 소네트로 대표되는 운문은 154편을 썼습니다. 그리고 로맨스와 일반 시도 썼습니다. 좌뇌와 우뇌를 모두 작동시킨 그였습니다. 그의 산문들은 허구라고 하지만 공부를 안 하곤 도저히 쓸 수 없는 작품들입니다. 위에서 언급된 존, 리처드, 헨리란 이름을 가진 영국의 왕들은 물론 고대 로마와 이집트, 덴마크 등의 역사를 모르고선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정규 교육은 13세에서 끝났다고 했습니다.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만 나온 것입니다. 런던에 가서도 글만 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극단에서 배우로도 활동했고 극장 운영도 했으니까요. 실제 그의 작품 활동 기간도 그가 런던에 진출한 1590년 경부터 25년 정도입니다. 작품 내용을 떠나 이런 사실로만 봐도 몇 번을 언급해도 대단한 셰익스피어라 할 것입니다. 이런 초인성 때문에 그가 살던 동네 교회에 엄연한 출생과 사망 신고서가 있음에도 그가 실재한 인물인지에 대한 논란까지 제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1585년부터 7년간 셰익스피어에 대한기록은 이상할 정도로 전무합니다. 21세에서 28세까지 그의 한창 젊은 시절은 비어있습니다. 가족과 호적, 학적, 가산에 관련된 스트랫퍼드에서의 전후 기록은 위에서처럼 매우 선명한데 말입니다. 그가 18세에 결혼을 하고 자녀들을 낳은 후의 기간으로 고향 스트랫퍼드에서 런던으로 무빙한사이가 비어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라진 그는 20대 후반 어느 날 짠~하고 런던에 나타났고 타고난 그의 탤런트로 유명 인사가 된 것입니다. 혹시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을 쓴 리처드 폴 로의 주장대로 그 7년 사이 고전의 나라인 이탈리아로 유학을 다녀온 것은 아닐는지요?
RSC(Royal Shakespeare Company)가 소유한 스트랫퍼드의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 그의 작품을 전문으로 공연.
영국엔 셰익스피어처럼 유명한 생가를 가진 작가들이 유독 많습니다. 세상에 생가가 없는 사람은 없으니 세계 각국의 모든 유명 작가들도 당연히 생가가 있겠지만 유독 영국 작가들의 집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여행사들의 패키지 해외여행 상품 광고를 보아도 영국 여행의 방문지엔 여러 작가의 생가나 머문 집이 주요 코스로 들어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생가는 필수 코스이고 지역별로는 윌리엄 워즈워드,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 토마스 하디, 찰스 디킨스 등의 집들도 상품에 보이곤 합니다. 프랑스나 독일 여행 등에선 찾아보기 힘든 상품입니다. 영어의 종주국이니 많은 영문학 작가들이 있어서도 그렇겠지만 그들 역시 셰익스피어처럼 영어 어드밴티지를 갖고 있어서도 그럴 것입니다.
잉글랜드 북부 그래스미어 호숫가엔 도브 코티지라 불리는 낭만주의의 대가 윌리엄 워즈워스의 생가가 있습니다. 그 남쪽으로 요크셔주 하워스엔 브론테 세 자매가 살던 집이 있습니다. 그녀들이 태어난 생가는 그 근처 손턴에 있습니다. 히스꽃이 만발한 하워스는 둘째 에밀리 브론테에게 영감을 주어 <폭풍의 언덕>을 쓰게 한 곳입니다. 현재 그녀들의 손턴 생가는 그곳을 살리려는 시민과 재단의 리뉴얼 노력으로 내년인 2025년 오픈을 앞두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를 살린 찰스 디킨스의 생가는 런던 남부 바닷가의 항구 도시 포츠머스에 있습니다. 생전에 부귀영화를 누린 그였기에 그의 집은 런던에도 있습니다. 포츠머스에서 서쪽으로 멀지 않은 도체스터엔 <테스>로 유명한 토마스 하디의 생가가 있습니다. 그 두 도시 사이의 햄프셔주와 윈체스터에는 제인 오스틴의 생가와 무덤이 있습니다. 그녀의 발자취는 그녀가 1801년부터 6년간 살았던 고대 로마의 온천 도시인 바스의 집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국에 산재한 이 모든 작가들의 집이 유명한 관광 코스로 문학 기행을 하는 많은 방문객들이 연간 내내 북적이는 곳입니다.
하워스에 있는 브론테 세 자매가 살던 집. 생가는 근처 손턴으로 현재 개관 준비 중.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이라 불리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현재 지구상에 56개 국가들이 영국을 중심으로 이 그룹에 속해있습니다. 대영 제국 시절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 위주로 결성된 국제기구입니다. 대표적으로 1858년부터 1947년까지 89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같은 나라들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특히 그들 중 15개 국가들은 영연방왕국(Commonwealth Realm)으로 여전히 영국의 찰스 3세를 자국의 군주로 섬기고 있습니다. 핍박을 받던 국가들이었는데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로선 이해가 잘 안 가지만 영연방 국가이든, 왕국이든 가입을 강제한 것이 아님에도 그들은 영국을 중심으로 여전히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 중엔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 같이 영국 국민들이 나가서 세운 나라들도 있습니다. 18세기 말 죄수들이 넘쳐 감옥이 모자라 새로 발견한 식민지를 활용했던 것입니다. 이랬든 저랬든 영연방의 가입국들은 영국에서 벗어나 탈퇴하는 것보다는 가입국으로 남아 있는 것이 더 이익이 된다고 생각해 그렇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영국의 힘입니다. 대영 제국은 사라졌어도 한때 세계 최고의 부잣집이었던 그들의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동남아이지만 영국 식민지였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영연방에 속하나 그들에 인접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둔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영국 같은 연방 협의체를 구성하지 못했습니다.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들을 식민지로 두었던 스페인의 경우도 스페인연방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존재감은 제로입니다. 제국주의 국가들 중 영국만이 오늘날까지 그들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들은 영국에 우호적일 것입니다. 영국이 국제적으로 올림픽이나 엑스포 같은 어떤 이벤트를 추진한다고 하면 적어도 지구상 200여 국가들 중 영연방에 속한 1/4 국가들은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영국을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친척을 가진 국가라고도 합니다.
영연방 국가들 중 대부분은 영어를 자국의 공용어로 삼고 있습니다. 제2 공용어든, 제3 공용어로도 그 나라에선 영어가 통용될 것입니다.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오늘날 세계 최강 미국은 현재 영연방에 속해있지 않습니다. 그런 미국도 영국의 언어인 영어를 사용하고 있기에 영어는 세계 공용어로서 막강한 언어력을 과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공용어가 아님에도 영어에 투입되는 돈은 국가든, 기업이든, 가정이든 가늠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이렇게 많은 국가의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하니 영문학 작품은 어드밴티지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상 활자와 인쇄술이 발달한 이후로 영국의 작가들이 더 많은 국가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될 기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 생가에서 구입한 셔츠. 입고 쓰고 있는 지금 그의 힘이 전해지기를..
그런 배경을 가진 영국에 셰익스피어와 같은 출중한 작가가 탄생했으니 그는 영어라는 날개를 달고 최고의 작가로 비상했습니다. 작가들의 작가, 베스오트 오브 베스트가 된 것입니다. 잉글랜드 중부 에이번 강가의 조그만 마을 스트랫퍼드에서 태어나서 죽었고, 외지는 런던만 나갔으며, 해외는 한 나라도 가본 적이 없던 그였지만 경계선이 없는 문학계에선 전 세계의 독보적인 왕으로 올라섰습니다. 과연 윌 파워(Will Power)라 불리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힘입니다.
* 글에서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관련 내용은 미국인 리처드 폴 로가 쓴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과 그 책을 읽고 제가 일전에 이곳에 쓴 <잉글리시맨 인 이태리>를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