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D-15, 양재천에 벼가 익어갑니다. 지난여름 너무 더워 산책을 소홀히 했더니 그새 이렇게나 자랐습니다. 갈수록 더 노래지고, 더 고개를 숙이겠지요. 저는 농사를 모르기에 봐도 봐도 이 벼가 이번 추석 전에 베어지고, 탈곡이 되어 차례상에까지 오를 수 있는 햅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지하철 3호선 도곡역 근방 양재천변엔 이렇게 물을 가두어 매해 벼농사를 짓습니다. 천 양쪽으로 고층 아파트가 병풍처럼 밀집하기에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논이고 벼입니다. 사진 오른쪽이 물이 흐르는 천이고, 왼쪽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입니다.
이 논은 겨울엔 썰매장으로 변신해 동네의 아이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과거 시골의 논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천수답 시절 이듬해 농사를 위해 물을 가두어 저수지 역할을 한 윗 논은 그렇게 빙판이 되어 겨우내 동네 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 역할을 하였습니다. 생명의 논이지만 쉴 때도 유희를 제공한 우리네 논이었습니다.
그런데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양재천에 산보 나온 어린아이들은 이 식물의 이름이 벼란 것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 젊은 부모들도 말입니다. 혹시 벼의 다른 이름이 되어버린 쌀나무라 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벼가 자라는 논이라는 이름도 생경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교육용으로라도 논을 만들고 벼농사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많진 않지만 양재천의 이 논에서 생산되는 쌀은 누구네 밥상으로 올라갈까요? 조금 전 그 옆을 지나가며 불현듯 든 생각이었습니다. 그 논의 지주는 구청으로 보이는데요. 아마도 그 쌀이 필요한 구민들에게 전달될 듯싶습니다. 탄수화물을 섭취 안 하고, 쌀의 소비가 줄어서 남아돌아도 필요한 사람들은 있으니까요.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면 더 힘들어지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주여 때가 됐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녘에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탐스럽게 무르익도록 명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