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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Aug 31. 2024

가장 올드한, 그러나 진보적인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Oldest But Advanced St Andrews Oldcourse

10여 년 전 우리나라 남해에 있는 어떤 골프장이 개장할 때 제 귀를 의심한 뉴스가 하나 들렸습니다. 그 골프장 그린피가 30만원대 중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말과 휴일 요금이 36만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수도권 최상위 프리미엄 골프장 그린피가 20만원대 중후반 하던 시절에 그 골프장은 무려 10만원을 더 책정하며 오픈한 것입니다. 더구나 그 골프장은 퍼블릭인데 말입니다. 물론 퍼블릭과 프라이빗은 운영 방식의 차이이지 고급과 저급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나라에선 후자 쪽으로만 인식되던 시절이었습니다. 퍼블릭 골프장 중엔 고급이 없어서도 그랬지만 그 인식은 그 골프장을 비롯하여 프리미엄급 퍼블릭이 몇 개 생겨난 지금도 거의 그렇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당시 저는 그 골프장의 초고가 정책을 후발주자이기에 단숨에 소비자인 골퍼들에게 그 이름을 각인시키려는 의도로 해석하였습니다. 물론 그만한 품질을 보장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상상을 넘어선 가격을 책정한 것엔 마케팅적으로 그 이상의 노림수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골퍼들에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골프장이 어디입니까?"라고 물으면 여러 골프장이 나올 것입니다. 사람마다 보는 눈과 취향이 다르니 한 골프장으로 몰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그린피가 가장 비싼 골프장이 어디입니까?"라고 물으면 대답은 하나로 모아질 것입니다. 위의 골프장이 개장하기 전엔 여러 특급 골프장들이 설왕설래 되었겠지만 위의 골프장이 출현하면서 그 답은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숫자로 입증되는 사실이니까요. 그렇게 그 골프장은 단기간에 그의 이름과 존재를 알리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희소성이 최고라는 경제의 원칙을 희소한 가격을 통해서 실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존 경쟁자이든, 또는 신규 진입자이든 누군가 그 가격보다 비싼 가격을 책정하면 그 기록은 깨지게 됩니다. 1등의 자리가 바뀐다는 것입니다. 가격은 고정불변 할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실제로 그 골프장으로 인해 자존심이 상했는지 이후 동급의 프리미엄 골프장들은 그린피를 그 골프장과 비슷하게 30만원대 중반으로 모두 인상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골프장은 얼마 전부터 그 가격에 또 10만원을 인상해 지금은 40만원대 중반의 그린피를 받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또 역시나 예상대로 다른 특급 골프장들도 지금 그 가격대로 가고 있습니다. 그 골프장들의 영업 상황은 모르겠으나 그로 인해 또 새로운 가격군이 형성된 것입니다. 이 글은 그 골프장에 대한 비난 글이 아닙니다. 가격도 정책이기에 공급자가 제시한 가격을 수요자가 받으면 시장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니까요. 물론 독점의 상품이나 국민의 절대다수가 소비하는 대중적인 상품, 공익적인 상품의 가격이라면 그것엔 감시 기능도 작동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경쟁 대비 우위로 가는 데엔 여러가지 방법이 동원됩니다. 위의 가격을 비롯해 세상을 놀라게 하는, 또는 기존엔 보지 못했던 특별한 제품력을 통해서도 독보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리더는 바뀌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절대 자리바꿈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역사성입니다. 이번엔 골퍼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은 어디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누가 무어라 하든 그 답은 결국 하나로 모아질 것입니다. 아니 처음부터 하나로 모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가장 오래됐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 브랜드의 자산입니다. 희소성으로 치면 고정불변하고 유일무이하니 그보다 더 큰 가치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위의 골프장의 예에서 본 엎치락뒤치락이 가능한 가격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광고의 소재로도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여행 가방의 선구자인 프랑스의 루비통, 시계의 선구자인 스위스의 바쉐론 콘스탄틴, 천연 화장품의 선구자인 이탈리아의 산타마리아노벨라가 바로 그런 브랜드들입니다. 이렇듯 가장 오래됐다는 것은 어떤 분야의 선구자이기에 개척한 그 정신과 투입된 노력까지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브랜드엔 필연적으로 역사성이란 자산이 쌓일 것입니다. 그것은 전통으로 누적되고 유산으로 남는 것이기에 결코 돈으로는 만들 수 없는 것들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인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의 1번 홀 티박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 그 문제의 답은 이 글 제목에 올라와있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입니다. 골프를 치는 골퍼들이라면, 그리고 골퍼가 아니더라도 골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답은 거의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름에서 보듯이 영국의,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에 있는 골프장입니다. 그 도시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동명의 명문 대학으로도 유명합니다. 15세기 경 그곳에서 골프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다와 붙은 그 지역의 사시사철 푸른 초장으로 인해 한가해진 목동들이 심심풀이로 골프를 시작했다는 전설 같은 기원이 유력한 정설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골프는 스코틀랜드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1575년 의회가 군사훈련을 게을리하는 군인들에게 골프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말입니다. 재미있으니 그랬을 것입니다.


지역 스포츠였던 골프는 1707년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 통합되며 그레이트브리튼 전역의 스포츠로 성장을 하였습니다. 목동과 군인뿐만 아니라 귀족까지 재미를 붙이니 영국 전역에서 유행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도권이 잉글랜드로 넘어갔습니다. 이윽고 1754년 22명의 골프를 사랑하는 귀족들이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모여 골프 클럽을 발족시켰습니다. 정식으로 골프장을 오픈한 것입니다. 그 클럽에 1834년 국왕인 윌리엄 4세가 로열이라는 칭호를 내림으로서 그곳은 R&A(Royal and Ancient Golf Club)가 되었습니다. 골프를 정식 스포츠로 만든 영국 골프의 본산이자 세계 골프의 본산이 된 것입니다. 이런 룰 메이커의 등장으로 우리의 고스톱 화투 놀이처럼 지역마다 중구난방으로 치던 골프의 규칙은 하나로 통일되었습니다. 그리고 권위있는 R&A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 생김으로서 그 골프장의 전통과 유산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이 R&A엔 현재 6명의 우리나라 사람들도 정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골프 강국이니 가능해진 일일 것입니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1번 홀 뒤에 있는 세계 골프의 본산 R&A 하우스


그렇게 영국에서 유행한 골프는 신대륙인 미국으로 건너가며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전 세계에 있는 3만 2천여 개의 골프장 중 절반이 있을 정도로 골프 최강국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미국은 영국에서 건너간 다른 스포츠들은 그대로 따라 하면 자존심이 상했는지 변형을 가해 새로운 스포츠로 만들며 종주국이 되었는데 골프는 그대로 가져갔습니다. 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미식축구는 영국의 럭비와 축구를 결합해 변형한 것이고, 야구는 크리켓을 참고했지만 골프는 게임 방식을 바꾸기가 마땅치 않았나 봅니다. 그래도 골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지대해 USGA(United States Golf Association)를 출범시켜 영국의 R&A와 함께 세계 골프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난주(8/22~25) LPGA의 메이저 대회인 AIG 위민스 오픈(AIG Women's Open)이 열렸습니다. 그 경기가 열리는지도 몰랐던 저는 우리나라의 신지애 선수가 3라운드를 선두로 끝냈다는 뉴스를 보고 관심이 급상승하여 마지막인 4라운드는 처음부터 눈에 불을 켜고 TV 중계방송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일요일 밤 TV를 켜자마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대회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리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놀랄 일까지는 아니지만 불과 한 달 전인 7월 말 제가 영국을 방문했고, 그때 그 골프장도 갔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가운데 제 눈에 익숙한 그 코스와 주변의 풍경들이 TV를 통해 보였습니다. 코스를 알고 중계방송을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재미와 감흥은 다릅니다. 하물며 그곳이 골프의 성지라고 하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라면 재미와 감흥은 더욱 다를 것입니다.


그 중계를 보기 전까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의 경기는 2030년이 돼서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남자 대회로 R&A가 주관하는 PGA 투어의 메이저 게임인 디 오픈(The Open)을 통해서 말입니다. 디 오픈은 브리티시 오픈(British Open)의 다른 이름입니다. 골프는 물론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회이기에 정관사 The를 주최 측이 붙인 것에 대해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 큰 대회입니다. 그렇게 가장 오래된 대회이기에 가장 오래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의 경기는 더 공을 들이는지 해마다 열리지 않고 5년마다 그 코스에서 열립니다. 그것도 끝자리 0년과 5년에 열립니다. 전통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이 그런 전통을 만든 것입니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호텔 로비에 전시된 역대 디 오픈 우승자들. 타이거 우즈는 2000, 2005, 2006 우승


그래서 디 오픈은 2025년인 내년에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려야 하지만 예외적으로 내년엔 열리지 않습니다. 디 오픈이 역사적인 150회를 맞이한 2022년에 원칙을 깨고 그곳에서 열렸기 때문입니다. 150주년 이벤트를 다른 골프장에서 할 수 없기에 특별하게 그곳에서 한 것입니다. 전통이 무엇이고 유산이 무엇인지 참으로 까다로운 잉글리시맨입니다. 그래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디 오픈을 보려면 2030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고 해서 저야 안타까울 것이 하나도 없지만 프로 골퍼들은 답답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골프의 성지인 그곳에서 경기하는 것이 꿈이기도 한데 2030년이 되기까지  늙거나 녹슬지 않고 기다려야 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 불과 한 달 만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의 경기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반가운 마음으로 신지애 선수를 밤잠 설치며 열심히 응원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우승을 했다면 그녀도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놀라운 성적을 거둔 그녀에게 축하를 보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대회에서 2등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 그녀 덕에 전 이렇게 지난 7월 영국 방문 후 최근 연재하며 쓰고 있는 영국에 대한 인문교양 에세이 중 계획에 없던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그곳에 가선 더 많이 놀랐기 때문에 쓸까말까 고민 중이긴 했습니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는 TV 화면에서도 보이듯 한마디로 뻥 뚫려 있습니다. 시원하게 한눈에 다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아마 눈이 좋은 몽고 사람은 18홀 전 홀을 한눈에 다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여타 골프장과는 달리 모든 코스를 숨김없이, 가림없이 다 노출하고 있는 골프장입니다. 출발하는 1번 홀만 보더라도 그 홀은 마지막 홀인 18번 홀과 티박스, 페어웨이, 그린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착 붙어있는데 두 홀은 서로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홀과 홀 사이엔 경계선 표식이나 울타리가 없습니다. 그 흔한 나무 한그루도 심어놓지 않아 경계가 불분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골퍼가 친 공은 방향에 따라 옆 홀의 페어웨이로 향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그런 무(無) 경계선은 페어웨이와 깃대가 꽂혀있는 그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부터가 그린의 시작인지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의 18번 홀 그린. 뒤로 1번 홀 티박스 보임. 우 상단은 R&A 하우스


그런데 그런 경계선은 골프장 안과 밖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울타리가 없어 안팎의 구분이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하나 있는 울타리도 성인이라면 충분히 넘을 수 있는 얕은 돌담 정도만이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있는 18번 홀 밖에만 있습니다. 그곳만 지나면 일반인의 보행로와 골프장 사이엔 아무 경계가 없습니다. 걷다가 한 발자국만 옮기면 골프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골프장 안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골퍼들이 게임 중임에도 그런 깜짝 입장이 가능하단 것입니다. 물론 대회 중이 아닌 평상시 일반 골퍼들이 플레이를 즐길 때 그들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입장이 허용됩니다. 그렇게 일반 방문객들은 골프를 치지 않음에도 코스에 들어가서 페어웨이를 걷기도 하고 사진도 찍습니다. 자와 저의 일행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울타리가 없는 골프장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18번 홀엔 스윌컨이라 불리는 작은 아치형 돌다리(Swilcan Bridge)가 있습니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의 상징과도 같은 오래된 다리입니다. 그 다리는 디 오픈 경기가 열릴 때 타이거 우즈도 건넜고, 잭 니클라우스도 건넜으며, 아널드 파머도 건넌 곳입니다. 대개 프로 골퍼들은 그 다리를 건너며 환호하는 갤러리에게 모자를 벗고 인사를 건네곤 합니다. 긴 여정 끝에 마지막 홀인 18번 홀에 도달함을 알리는 인사입니다.


이번 AIG 위민스 오픈 우승자인 뉴질랜드의 리디아 고는 우승컵을 안고 그 다리에서 앉아서 찍은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에 이은 스윌컨의 우승컵은 그녀 골프 인생의 골든 에이지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보입니다. 반면에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미국의 렉시 톰슨은 18번 홀에서 스윌컨 브리지를 건너며 눈물을 짓는 모습이 TV 중계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그녀의 지나간 프로 골프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 다리를 못 건넌다는 아쉬움도 커서 그랬을 것입니다. 아마 TV 화면엔 안 잡혔지만 역시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우리나라 김인경 선수도 다리를 건너면서 눈가를 흐렸을 것입니다.


그렇게 유명 프로 골퍼들이 감회에 젖으며 건넌 스윌컨 브리지는 일반 관광객도 건너갈 수 있습니다. 핫스폿인 그곳에 올라가 기념 촬영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성지의 종착지에 다다른 것을 인증하듯이 말입니다. 과거 그 다리는 목동과 함께 양들도 건너갔습니다. 1754년 그 골프장을 정식으로 오픈하며 목초지에 있던 그 다리가 코스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렇듯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는 홀과 홀 사이, 홀과 그린 사이, 홀과 외부 사이에 아무 경계선이 없습니다. 다 오픈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골프장 안에 들어가 걸어도, 사진을 찍어도 그것을 제지하는 마샬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이고, 코스의 퀄리티로도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 명문임에도 골퍼든 관광객에게 아무 제재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곳 잔디를 밟기 위해 전 세계에서 성지 순례를 온 순례자들에게 아낌없이 성지를 개방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대회는 그토록 까다로운 원칙 하에 개최하면서 말입니다.


일반인도 출입 가능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의 심벌 스윌컨 브리지. 뒤는 올드코스 호텔


또 하나 그 골프장은 특이하게도 일요일엔 쉽니다. 쉰다고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은 아닙니다. 걸어 잠글 문도, 담도 없으니까요. 대신 일요일은 그 골프장을 온전하게 개방하는 날입니다. 골프장이 위치한 세인트앤드루스 시민과 방문객에게 공원의 역할로 쉼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일요일이면 더 많은 골퍼들이 몰려와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을 텐데 그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간 골프장을 다녀본 저로선 아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 일찍 일어나 창밖을 보니 어디선가 까맣게 나타난 코스 관리자들이 전날 망가진 코스를 분주하게 보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플레이를 하는 새로운 골퍼와 그곳을 방문하는 새로운 관광객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입니다.


영국과 골프의 쌍벽인 미국을 대표하는 골프장으로 PGA 투어의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가 열리는 조지아주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이 있습니다. 그곳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와는 반대로 프라이빗 골프장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는 곳입니다. 코스도 자연과 야생 그대로인 영국식 골프장과는 달리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화려하게 펼쳐져 홀마다 경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 골프장은 한마디로 회원을 제외하곤 철벽이 쳐있는 가장 폐쇄적인 골프장입니다. 대회 때 갤러리로 입장하지 않는 한 일반인은 절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갤러리도 돈이 있다고 표를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플레이를 위해 회원의 게스트로 초청을 받아도 회원이 없이는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다고 합니다. 회원과 함께 오거나, 따로 오더라도 회원이 나와서 에스코트를 해야 입장이 허용될 정도로 출입 문턱이 매우 높은 골프장입니다. 그래서 최고 명문을 지향하는 우리나라 프리미엄 골프장들이 너도나도 닮고자 하는 골프장입니다. 물론 프라이빗이니 회원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도 그렇게 폐쇄적으로 운영해야 할 것입니다.


2007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는 기존에 없던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곳에서 여자 대회를 열기로 한 것입니다. 그전까지 남자 대회인 디 오픈은 150회를 오면서 빈번하게 열렸지만 여자 대회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명문 골프장일수록 여자를 멀리하고 출입까지 금지시킨 것에서 기원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골프장은 젠틀맨스 클럽으로 금녀의 공간이었으니까요. 그것의 대표 주자였던 올드코스가 변하여 여자 대회를 열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 결정으로 인해 이번 신지애 선수가 출전한 2024년 AIG 위민스 오픈도 열리게 된 것입니다. 처음엔 대회명이 위민스 브리티시 오픈이었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미국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도 최근인 2018년부터 오거스타 내셔널 여자 아마추어 골프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진정한 기량을 겨루는 여자 프로 대회는 열 계획이 없다고 분명한 선을 긋고 있습니다.


올드코스 호텔에서 바라본 17번, 18번 홀과 세인트앤드루스 시내 전경. 사진 중앙에 스윌컨 브리지도 보임


통상 올드한 것은 본래 있는 것을 유지하려는 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될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것이 익숙하고 그곳엔 기득권이 형성되어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변화가 어렵고 폐쇄적이고 보수화 되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는 가장 올드함에도 시원하게 뚫려있는 그 코스의 전경만큼이나 개방적입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시대에 맞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오픈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장구한 세월 속에 쌓아온 그 전통과 유산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말입니다. 이것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가 퍼블릭이라서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라는 것만으로는 설명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골프의 본산으로서, 골프의 성지로서 진정한 골프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이지만 가장 진보적인 골프장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입니다.



* 세인트앤드루스의 앤드루는 예수 그리스도의 12 제자 중 수제자인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의 영어 이름입니다. 이곳에 그의 유골의 일부가 있다고 해서 도시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는 순교 시 스승인 예수와 똑같이 죽을 수 없다며 X자 형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스코틀랜드가 고대에 전쟁 중 그의 십자가가 파란 하늘에 구름 형태로 나타나 승리를 거두면서 그 문양은 국기가 되었고 그는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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