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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Oct 26. 2024

원스어폰어타임인 텍사스 공화국

댈러스 3일 살기

지난 10월 초 미국에 오기 전까진 계획에 전혀 없던 댈러스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샌디에이고에 와있는 것을 sns를 통해서 알게 된 과거 친했던 직장 선배가 캘리포니아까지 왔으니 시간이 되면 온 김에 텍사스도 들렀다 가라는 명을 따른 것입니다. 진로를 바꾸어 대학으로 옮겨 후학을 양성해오던 그 선배가 지금 사는 곳이 텍사스주의 댈러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한 프로젝트 없이 친구집에서 샌디에이고 2주 살기로 온 미국행이었으니 만날 시간은 되었습니다. 10년 전쯤 귀국했을 때 만났으니 보고도 싶은 선배였습니다. 광고대행사 초년기 시절 제게 엄격하나 정감있게 대해주던 선배였습니다. 그리고 "내 평생에 텍사스를 이때 아니면 언제 가보랴" 하는 마음도 한편에서 들었습니다. 그래서 귀국일에 맞추어 가장 저렴한 비행기표를 끊어 샌디에이고 공항에서 아침 비행기를 탄 것입니다. 샌디에이고 2주 살기에 댈러스 3일 살기가 끼어들었습니다.


아메리칸 에어라인 비행기는 캘리포니아주에서 떠서 어디인지 모를 주 경계선들을 지나 애리조나주, 뉴멕시코주를 거쳐 텍사스주의 댈러스포트워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3시간에 걸쳐 오는 내내 비행기 창 아래로 초록 산림과 파란 바다는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슨무슨 캐년이라 불릴 사막과도 같은 바위산들을 한참 지나더니, 또 사막과도 같은 누런 벌판을 더 한참 지나서 왔습니다. 그 사이사이로 까마득히 아래로 지금은 보기 힘든 성냥갑과도 같은 집과 마을, 농장들이 보이고 어쩌다 가끔 푸른 벌판도 보였습니다. 골프장이었습니다. 미국이니까 사막 지대에도 골프장은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도 10월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청명해 그 공중 아래로 뻥 뚫린 지상의 모습이 실거리보다 내내 가깝게 보였습니다. 3시간 동안 2,100km를 날아서 갔습니다. 서울에서 중국을 지나 몽고의 울란바토르 정도의 거리입니다. 시차는 텍사스라면 기분엔 캘리포니아와 한 시간 정도일 것만 같은데 2시간이라 기록상으로는 5시간이나 앞으로 전진했습니다. 넓은 나라 미국입니다.


왕이 있는 일본에 왕이 없는 공화국이 들어선 적이 있었습니다.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설 자리를 잃은 막부파 잔당들이 홋카이도로 쫓겨가 그곳에 세운 에조 공화국입니다. 그간 도쿠가와 가문의 쇼군을 받들어 온 사무라이들이 나라를 건국해 대통령 급의 총재를 지도자로 선출했습니다. 수도는 야경이 아름다운 하코다테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공화국은 5개월 만에 망했습니다. 천황을 중심으로 새롭게 들어선 유신 정부의 진압군에 맞서 싸웠지만 역부족으로 가볍게 패한 것입니다. 이른바 보신전쟁(戊辰戦争, 1868~1869)입니다. 그렇게 기원전 660년 진무 천황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일본의 군주제에 짧고 좁으나마 공화국의 시대가 있던 것이었습니다.


왕의 목을 자른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된 1789년 대서양 건너 북아메리카에선 왕이 없는 나라 미합중국이 탄생했습니다. 그들은 그 이전인 1776년 영국의 왕을 거부하며 독립을 선언했고 전쟁에서 승리해 독자적인 정부를 수립한 것입니다. 전쟁 사령관인 조지 워싱턴은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지구상에 최초로 삼권이 분리된 국가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초기 13개 주로 시작한 미국은 대서양 연안의 국가에서 태평양 쪽으로 계속해서 서진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서쪽의 남부엔 그들과 같은 대통령이 다스리는 광대한 영토를 가진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미국의 서부 개척사에서 다른 주들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먼저 움직여 연방 국가 미국과는 별개로 독립 국가를 세웠습니다.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애리조나, 유타, 네바다 등은 1848년 미국이 멕시코와 치른 전쟁에서 승리해 미국의 영토가 되었는데 그 나라는 그 이전인 1836년부터 단독으로 국가 체제를 유지해 온 것입니다. 텍사스 공화국(Republic of Texas)입니다. 그 공화국은 10년의 기간 동안 초대 대통령인 샘 휴스턴을 비롯해 4대에 걸쳐 3명의 대통령을 배출했습니다.


성조기와 함께 게양된 텍사스의 주기인 론스타기(Lone Star Flag) (출처, pixabay)


본래 북아메리카 서부와 중남부 그 지역은 스페인의 영토였습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서인도 제도에 상륙한 후 동부는 플로리다를 통해 북진했고 서부는 멕시코를 거쳐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를 통해 북진을 했습니다. 그러다 식민지인 멕시코의 힘이 스페인을 누르며 독립전쟁을 벌인 끝에 멕시코는 1821년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남북 아메리카 대륙을 선점했던 스페인의 약발이 다 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멕시코는 보너스로 위의 스페인 식민지였던 오늘날 미국의 주들까지 전부 획득한 것입니다. 실로 대단한 크기의 영토였습니다. 하지만 멕시코의 속박성이 약한 그 땅들엔 동쪽에서 이주해 온 미국인들도 정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메리칸과 멕시칸의 갈등이 표출해 영토 전쟁이 벌어집니다. 처음엔 미국이 돈을 주고 사겠다고 매각을 권유했지만 멕시코가 거절해 전쟁으로 간 것입니다. 결국 멕시코는 그렇게 보너스로 얻은 땅들을 모두 날렸습니다. 스페인으로부터 본토만 독립한 꼴이 된 것입니다.


그런 역사 속에서 미연방 정부와는 별개로 텍사스는 호전적으로 멕시코에 먼저 대응을 한 것입니다. 과거 스페인 식민 정부 시절부터 그들과 협정을 맺고 그 땅을 개척해 온 50만 명 정도의 정착민들이 그 땅의 새 주인이 된 멕시코에 반발한 것입니다. 독립한 멕시코는 텍사스를 행정적으로 이름도 어려운 코아우일라이테하스 준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산타 안나 대통령은 저항하는 텍사스의 정착민들에게 추방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전쟁은 텍사스가 승리했고 텍사스는 멕시코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그 멕시코 대통령은 포로로 잡히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1836년 그곳에 텍사스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들어섰습니다. 그 전쟁에 미연방 정부는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텍사스인(Texan)들이 자력으로 만들어 낸 독립이고 건국이었습니다.

 

결국 텍사스는 10년 후인 1845년에 미국 연방의 28번째 주로 편입되었습니다. 텍사스 국민들이 단독 국가(Nation)로 가는 것보다 미연방 국가의 한 주(State)로 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그렇게 결정했을 것입니다. 만약 그때 텍사스가 그런 결정을 하지 않고 역사가 이어졌다면 오늘날 미국 지도 한 편엔 텍사스란 나라가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당시 연방 정부는 텍사스가 연방의 주로 들어오는 대신에 그 보상으로 채무를 갚아주고 그전엔 나 몰라라 했던 멕시코와의 분쟁에서 강력한 보호자 역할을 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텍사스는 미국에서 멕시코와 가장 긴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는 주입니다.


멕시코는 텍사스를 뺏긴 10년 후인 1846년 미국과 또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그 전쟁에 걸린 땅은 위의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애리조나, 유타, 네바다였습니다. 텍사스는 그 1년 전에 미연방으로 들어간 상태였기에 이번엔 미국군이 되어 멕시코와 또 싸웠습니다. 그리고 또 승리했습니다. 이렇게 미국은 멕시코와 연계된 서부의 영토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1848년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 주들 중 대표적인 캘리포니아는 1850년 미국의 31번째 주로 편입되었습니다. 그 해 오늘날 주도인 북부의 새크라멘토에선 금이 발견되며 골드러시로 미국의 화려한 서부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텍사스가 두 번의 멕시코 전쟁에서 승리한 데에는 혁혁한 공을 세운 조직이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텍사스 레인저스(Texas Rangers)입니다. 그 기관은 텍사스 공화국이 건국되기 전인 1823년에 일찌감치 창설되었습니다. 정착민들의 공공 안녕과 질서는 물론 멕시코의 위협이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자경단 성격이지만 민병대와는 달리 공식적인 법 집행자 역할까지 수행했습니다. 주 경찰과는 다른 상위 조직입니다. 물론 초기엔 멕시코와 전쟁을 치르며 군대 역할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멕시코로부터 텍사스가 독립을 이뤄낸 1836년의 전쟁에서, 그리고 미국이 멕시코와 치른 1846년의 전쟁에서 그 용맹성을 십분 발휘하였습니다. 그런 전통으로 텍사스 레인저스는 지금도 주 경찰과는 별도 기관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텍사스엔 또 하나의 레인저스가 있는데 바로 메이저 리그(MLB)의 프로야구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입니다. 우리에겐 박찬호와 추신수 선수로 인해 잘 알려진 팀입니다.


텍사스의 공공 안녕을 책임지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론스타 배지


텍사스는 강인하고 저돌적으로 느껴집니다. 게다가 카우보이들이 설쳤던 서부 영화의 배경으로 단골로 등장하니 마초적으로까지 느껴집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제임스 딘이 출연한 텍사스를 대표하는 서부 영화의 고전은 제목도 <자이언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왠지 텍사스주의 각 집안엔 총 한 자루쯤은 모두 갖추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 텍사스 카우보이의 전통이 미국 개척 시대를 스포츠로 보여주는 미식축구팀으로 탄생했습니다. 바로 댈러스 카우보이스입니다. 그 구단은 미국풋볼리그(NFL)에서 최고 인기 팀이자 전 세계 모든 종목의 프로 스포츠 구단에서 최고의 자산 가치를 가진 팀입니다.


텍사스 주기에 떠있는 큰 별은 마치 미국 성조기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50개 주의 별들 중에서 가장 큰 왕별로 보입니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심벌도 역시 큰 별입니다. 하나만 떠있는 그 별을 가리켜 론스타(Lone Star)라 부릅니다. 텍사스주의 별칭답게 그 별은 텍사스 내 어디를 가도 보입니다. 텍사스주의 두 프로야구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더비를 가리켜 론스타 시리즈라 부를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외환은행 인수 시 문제가 된 그 론스타도 댈러스에 연고를 둔 투자회사입니다.


그래서 정치적 성향도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텍사스주는 지난 30년 동안 치른 8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 공화당이 승리했습니다. 정치인으론 텍사스를 대표하는 부시 대통령 가문과 그곳을 좋아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떠오릅니다. 종교도 보수적인 미국 개신교 최대 교파인 남침례교가 우세한 지역으로 텍사스는 남동부 바이블 벨트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백인 우월주의의 강성 주입니다. 그래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미국 연방이 과거 소비에트 연방처럼 해체된다면 그 선봉엔 아마도 텍사스가 설 것입니다. 텍사스는 지금 당장 연방에서 탈퇴해도 세계 8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섭니다. 댈러스에 연고를 둔 미국농구협회(NBA)의 팀명은 댈러스 매버릭스(Mavericks)입니다. 매버릭은 독립성과 개성이 강한 사람을 뜻합니다. 


서부 시대를 연상케 하는 텍사스의 빈티지풍 식당의 내벽


이윽고 댈러스포트워스 공항에 내렸습니다. 댈러스와 포트워스 두 도시가 공유하는 공항이라 그렇게 이름이 붙은 공항입니다. 미국 중서부의 대표 공항으로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허브입니다. 그 두 도시 사이엔 위에 등장한 프로야구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의 연고지인 알링턴도 위치해 있습니다. 공항에서 마중 나온 선배를 반갑게 만나고 그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가면서 본 텍사스, 댈러스의 첫 느낌은 '크고 넓다'였습니다. 30분 정도 가면서 본 모든 것이 큼지막하고 넓어 보였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도 받은 느낌이지만 그보다 더 크고 더 넓었습니다. 학교와 교회를 비롯한 건물과 집들도 그렇고 비어있는 넓은 공터도 꽤나 많이 보였습니다. 130만 명이 사는 미국에서 9번째로 큰 댈러스인데 말입니다.


다음날 가서 본 다운타운을 제외하곤 높은 건물은 어딜 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넓으니 높게 지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과연 미국에서 역외 영토인 알래스카를 제외하곤 가장 넓은 주 텍사스입니다. 텍사스는 우리나라보다 무려 7배나 큰 주입니다. 그곳에 3천1백만 명 정도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대도시는 제가 간 댈러스 이외에 우주 센터가 있는 휴스턴(4위, 이하 인구로 본 미국 도시 순위), 우리의 삼성전자 공장이 있는 주도 오스틴(11위), 그리고 샌안토니오(7위), 포트워스(13위) 등이 있습니다. 이렇듯 큰 땅에 큰 도시가 많은 주 텍사스입니다.


미국의 중남부에 위치한 텍사스주의 지도 (출처, 구글맵)


두 번째 느낌은 '싸다'였습니다. 선배와 함께 가본 식당의 음식값이 같은 미국인 캘리포니아의 LA나 샌디에이고와 비교했을 때 20% 정도는 쌌습니다. 우리 한식당 기준으로 순두부나 된장찌개가 팁을 제외하고 캘리포니아는 18불에 달했는데 텍사스는 15불을 넘지 않았습니다. 기름값은 1갤런에 캘리포니아는 4.2불인데 반해 텍사스는 2.7불이었습니다. 집 렌트비는 방 3개 기준으로 캘리포니아는 3,800~4,200불인데 반해 댈러스는 3천 불을 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이후 대폭 물가가 올라서 살기 힘들어진 미국이라고 하지만 텍사스는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합니다. 넓은 땅에 풍부한 석유자원이 있어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가계의 중요 요소인 학생들의 학비도 텍사스는 다른 주에 비해 쌉니다. 휴스턴에 위치한 명문 라이스 대학의 경우 사립이니까 비쌀 수밖에 없지만 오스틴을 비롯한 주립대학들의 학비는 다른 주에 비해 저렴합니다. 특히 캘리포니아의 주립대학과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납니다. 물론 장학금도 많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인 요즘 텍사스주는 인구가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가가 싸고 아이들 교육 환경이 좋으니 사람들이 몰리는 것입니다. 반면에 미국에서 인구 3천5백만 명으로 최다주인 캘리포니아주는 인구가 줄고 있습니다. 고물가를 피해 피난을 떠나는 것입니다. 아마도 텍사스로 가장 많이 유입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시민, 주민, 외부인에게 무료로 개방하는 댈러스의 팬시한 프리스코 공공 도서관


댈러스에서 본 것은 많지 않습니다. 3일 중 오가는 비행기 시간을 빼면 온전하게 하루를 보낸 것은 이틀째인 하루에 불과하니까요. 하지만 한 곳이지만 확실하게 인상적인 장소를 방문했습니다. 바로 미국 역대 대통령들 중 인기도 측면에서 어떤 조사를 해도 상위권에 랭크되는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이 일어난 역사의 현장입니다.


61년 전인 1963년 11월 22일 오후 12시 30분 JF 케네디 대통령은 부인인 재클린 여사와 함께 댈러스 다운타운을 카퍼레이드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1961년 미국 3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그가 재선을 위한 선거 운동을 겸해 댈러스에 온 것입니다.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이 보수의 성지인 텍사스를 방문한 것이기에 반대가 많았던 방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뉴프런티어 정신을 주창했던 그답게 프런티어 정신으로 미국 개척사에 한 획을 그은 텍사스 방문은 강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 시간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오스왈드라는 24세의 청년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것입니다. 암살범은 그가 근무 중인 교과서 창고로 쓰이는 6층 건물의 창가에서 아래 도로로 지나가는 케네디를 저격했습니다. 43세에 당선되어 미국 역사상 최연소 당선 대통령이었던 케네디는 그렇게 46세의 나이로 비명횡사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이송 중에 범인 오스왈드는 격분한 어떤 나이트클럽의 사장이 쏜 총에 맞아 즉사했습니다. 그래서 사건은 미궁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 나이트클럽 사장조차 재판이 시작되기 전 감옥에서 병으로 죽었습니다.


암살된 장소 근처에 조성된 케네디 메모리얼 플라자 내 케네디 대통령 추모석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고 2시간 8분 후에 그의 러닝 메이트였던 존슨 부통령은 비행기 안인 에어포스 원에서 미국의 36대 대통령으로 취임 선서를 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장면이 현실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그렇게 텍사스에서 젊은 영웅은 가고 미국은 또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그 후 케네디 암살 사건은 무성한 음모론 속에 50년이 지나면 진실을 공개한다고 했지만 막상 2013년이 되어도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없었습니다.


오스왈드가 총을 쏜 그 6층 건물의 6층은 지금 식스 플로어 뮤지엄(Six Floor Meseum)이란 이름으로 케네디 암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건물 주변은 딜리 플라자(Dealey Plaza)로 불리는 곳으로 과거 북적댔던 그날과는 달리 휑한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 아래 도로 바닥엔 케네디가 암살된 지점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이라 대단한 표식이 있을 것 같지만 경찰이 어젯밤 발생한 교통사고 현장을 표시해 놓듯이 백묵으로 조악하게 X자를 그어 놓은 것이 전부입니다. 그 위로 61년 전 그날처럼 차들이 지나가고 그곳을 보기 위해 사람들도 건너 다닙니다. 그 사람들은 제가 그랬듯이 "이곳이 케네디가 죽은 곳이구나"라고 되뇌며 확인할 것입니다.


그 주변엔  케네디 메모리얼 플라자도 있습니다. 그의 이름만이 새겨진 장식 없는 검은 추모 석판이 바닥에 놓여있습니다. 케네디의 사체는 옮겨져 워싱턴DC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깨끗해 보이지 않은 그 주변을 거닐며 그런 역사적인 장소를 왜 그렇게 보수하지 않고 낡은 모습으로 방치할까 의아해했는데 알고 보니 그곳을 국가역사기념물로 지정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손을 대지 않는 것입니다. 암살 현장 길 건너로는 고층 건물이 밀집한 뉴타운이 이어져 올드타운인 그곳과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케네디가 방문했던 시기엔 이곳이 뉴타운이었을 것입니다. 별개로 딜리 플라자라 불리는 그곳은 댈러스의 탄생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840년대에 그곳에서 댈러스가 태동했습니다. 그렇다면 케네디 대통령은 댈러스가 태어난 곳에서 죽은 것입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현장. 아래 화살표의 X자가 암살된 곳. 위의 화살표 옆 6층 끝창문이 저격 장소.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선배와 함께 한 3일 일정을 마치고 다시 캘리포니아의 LA로 향합니다. LA 공항에서 인천으로 가는 우리의 날개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야 해서 그렇습니다. 이번엔 시차가 반대라 기록상으론 1시간 밖에 안 걸리는 비행이었습니다. 실제는 올 때처럼 3시간이 걸리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11일 샌디에이고 더하기 3일 댈러스 살기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인천행 비행기는 밤 11시 50분에 출발합니다. 아직도 기나 긴 반나절이 남았습니다.


샌디에이고에 사는 친구가 또 LA 공항으로 나와줬습니다. 친구를 잘 못 둔 친구입니다. 그렇게 친구와 함께 LA의 이곳저곳을 돌아보았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생기를 되찾은 생각보다 넓은 코리아타운의 한인들도 보았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일정이었습니다. 코리아타운에서 미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으니까요. 이렇게 이번 샌디에이고 14일 살기 댈러스에 이어 LA 반일 살기까지 끼어들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일정들이었지만 기분 좋은 만남과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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