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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Dec 21. 2024

Why so serious? 크리스마스인데..

어떤 송년 음악회 1

모차르트의 전기 영화로 유명한 <아마데우스>에선 어린 모차르트가 왕궁에 들어가 황제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왕궁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전통적으로 사용해오던 호프부르크 궁전이거나 그즈음 웅장하게 새로 지어진 쇤부른 궁전이었을 것입니다. 모차르트는 그날 오늘날 오스트리아인 신성로마제국의 군주인 요제프 2세 앞에서 연주를 하러 아버지와 함께 간 것이었습니다. 아기 때부터 음악의 신동으로 소문난 그였기에 그 뉴스가 잘츠부르크 그의 집에서 수도 비엔나까지 퍼져 입궁을 한 것이었습니다. 클래식을 사랑하는 황제 앞에서의 연주이니 분위기는 엄숙하고 근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영화 더 뒤에 나오지만 그 황제가 참관하는 음악회에서 그가 지루해 하품을 3번 하면 그 음악가의 곡은 다시는 무대에 못 올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모차르트는 그런 경직된 분위기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일단 천재는 분위기를 안 타는 사람들입니다. 그건 제가 만나 본 현존하는 사람들 중에 제가 천재급으로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이윽고 모차르트의 연주가 시작됩니다. 실제로는 모르겠으나 <아마데우스> 영화에선 <피가로의 결혼> 주제부의 피아노 연주가 나옵니다. 그가 다양하게 변주를 하며 연주를 하자 황제 주변에 선 궁정 음악가들의 당황해하는 모습들이 비춰졌습니다. 존엄한 황제 앞에서 매우 익살스러운 표정에 장난기 어린 동작까지 보이며 연주를 했기 때문입니다. 진지함이라곤 요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그의 연주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그 궁정 음악가들 중엔 그의 경쟁자 아닌 경쟁자인 살리에리도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과는 아랑곳없이 피아노를 두들기던 모차르는 오히려 그들이 이상한 듯 갸우뚱하며 무언가 묻는 듯해 보였습니다.


"선생님들.. Why so serious?"   


모차르트가 입궁하여 황제와 궁정 음악가들 앞에서 연주하는 모습 (출처, '아마데우스', 1985)


그날 모차르트는 그 궁전에서 요제프 2세의 동생인, 훗날 프랑스혁명 시 단두대에서 이슬로 사라져 비운의 왕비가 된 어린 마리 앙트와네트를 만나고 왔을 것입니다. 그녀 앞에선 그는 황제 앞과는 달리 경직된 모습을 보였을 것입니다. 남녀 문제는 천재도 일반인과 별반 차이가 없으니까요.


오늘날에도 위의 모차르트가 살았던 18세기 유럽의 궁정 음악회나 무도회에서나 입을 법한 복장을 입고 연주하는 유명한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 그 오케스트라에선 남자 연주자들은 복고풍의 연미복을 입고 연주하고, 여자 연주자들은 우아한 왈츠 드레스에 배우 같은 색조 화장을 하고 연주를 합니다. 바이올린을 켜며 지휘를 하는 더치맨 앙드레 류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입니다. 그의 음악회는 위트와 기지가 넘치고 종종 기발한 이벤트가 등장하곤 합니다. 음악은 즐거워야 한다는 그의 음악 철학을 연주회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즉, 듣는 음악만이 아닌 보이는 음악까지 추구하는 앙드레 류입니다.


그래서 무대와 관객석이 대형 무도회장으로 변하기도 하며, 때론 연주자들이 연주를 하며 그 곡의 스토리를 연기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연주를 하며 왁자지껄한 파티를 열기도 합니다. 심지어 연주회장에 갑자기 황소가 뛰어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론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해 관객들의 가슴을 뜨겁게도 만들고, 때론 심각한 사회 이슈도 부각시켜 관객들의 가슴을 웅장하게도 만듭니다. 그 오케스트라는 2004년과 2005년 두 번 우리나라에도 왔었습니다. 할리우드 유명 배우인 멜 깁슨을 쏙 빼닮아 - 특히 <브레이브 하트>에서의 긴 머리 멜 깁슨 - 연기도 잘하는 앙드레 류는 그런 연주에 놀라는 관객들을 향해 지휘봉으로도 사용하는 그의 바이올린 활을 흔들어대며 외치는 것만 같습니다.


"여러분들.. Why so serious?"  


거대한 무도회장으로 변한 앙드레 류 오케스트라의 공연 모습 (마스트리흐트, 2024. 12)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무대가 열리고 불이 켜집니다. 그리고 음악회가 시작됩니다.


조명 아래 빨간 라인이 들어간 예쁜 쳄발로가 놓여 있고 그 옆에 비올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대의 비올라를 가지고 두 명의 남녀 연주자가 각자의 활을 가지고 샴쌍둥이처럼 붙어서 연주를 합니다. 둘이서 피아노 연탄 연주를 하듯이 비올라 한 대를 공유하며 듀엣 연주를 하는 것입니다. 구조상 반대로 활질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자 비올리스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다니며 힘겹게 연주하는 남자 비올리스트의 모습이 웃기는지 참지 못하고 연주 중 웃음을 토해냅니다. 그들은 그렇게 연주하며 무대를 가로질러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무대 뒤에서도 연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집니다. 그들이 문을 빼꼼 열고 장난스레 관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바이바이를 할 때까지 말입니다.

- P.D.Q Bach, Sonata for Viola 4 Hands



금관의 호른 주자 둘은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연주하지 않는 구간이 길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둘은 시시덕거리며 장난을 칩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맙소사!" 대형 사고를 칩니다. 한 호른 연주자가 앉은 의자 뒤로 숨겨놓은 와인을 꺼내더니 서로 따라서 주거니 받거니 마시는 것입니다. 그들 양옆의 현악기 연주자들은 열심히 연주를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리곤 이윽고 그들 연주 타임이 되자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연히 연주를 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소리는 더 깨끗하고 부드럽게 들립니다. 알코올로 입을 소독한 것일까요?

- Mozart, Musical Joke



앉아서 연주하던 바이올린 연주자가 슬며시 일어납니다. 그녀는 연주하며 옆 연주자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곤 그녀의 바이올린 활을 강하게 그어 대어 소음을 만들어 냅니다. 빨래판을 긁어대는 듯한 격한 소리가 그 바이올린의 울림통에서 튕겨져 나왔습니다. 졸고 있던 옆 연주자에게 이제 너의 차례이니 "정신차렷, 이 친구야" 한 것입니다.

- Mozart, Musical Joke


피아노 연주자도 두 명 등장합니다. 그런데 피아노는 한 대입니다. 연탄 연주인가 봅니다. 그 둘은 처음부터 좁은 의자를 가지고 자리싸움을 하며 엎치락뒤치락 연주를 주고받습니다. 검은 피아노에 검은 조명, 게다가 둘 다 검은 옷을 입어서인가 저속으로 느리게 보면 마치 찰리 채플린의 흑백 무성 영화를 보는 것과도 같은 장면이 연출됩니다. 물론 그들의 표정은 동작만큼이나 심각하지 않습니다. 위의 황제 앞에서 피아노를 친 모차르트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한 피아노에서 연주를 마친 그들은 두 대의 피아노에 각각 나눠 앉습니다. 편하게 앉아 듀엣으로 각자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입니다. 이젠 싸울 일이 없을 것 같지만 그들은 서로를 의식하며 피아노를 부술 듯이 쳐댑니다. 마치 누구의 피아노 소리가 더 큰지 배틀을 하듯이 말입니다. 피아노는 현악기일까요? 건반악기일까요? 아님 타악기일까요? 그날은 타악기였습니다.

- Kabalevsky, The Comedian for 4 Hands by Han Lee / Schnittke, Gogol Suite for Two Piano



이것은 앙드레 류 오케스트라의 공연 실황이 아닙니다. 지난 주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공연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그날 저는 관객석에 앉아 위의 이색 연주를 감상했습니다. 아, 연주뿐만이 아닌 연기까지 감상했습니다. 그날 그 음악회의 타이틀은 <Why So Serious?>였습니다. 이전 제 글에 가끔 등장했던 프렌즈오브뮤직(예술감독 구자은)이 매해 12월 여는 송년음악회를 그렇게 기발하게 기획한 것이었습니다.


보듯이 모차르트는 역시나 장난꾸러기답게 이런 조크를 던지는 소품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3대 희가극(오페라 부파)으로 불리는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여자는 다 그래> 등에서 많은 풍자와 해학의 정석을 보여준 그입니다. 비엔나의 최고 영웅임에도 어렵게 살며 생활고 속에 요절했고,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그였지만 그는 타고난 낙천성으로 이렇게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떠오르게 하는 그의 삶과 죽음입니다. 


위에서 한 대의 비올라를 두 명이 연주하게 한 작곡가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의 아들인 P.D.Q 바흐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바흐 주니어는 실존했던 인물이 아닙니다. 올해 초 사망한 미국의 현대 작곡가인 피터 쉬켈(1935~2024)이 창조한 음악가입니다. 그가 가상의 음악가에게 음악 명문가의 족보를 안겨주어 바로크 음악의 거장인 바흐의 아들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쉬켈이 작곡한 위의 기상천외한 비올라 소나타만큼이나 기상천외한 작곡가 이력이 만들어졌습니다. P.D.Q는 가짜 바로크를 뜻하는 PseuDo baroQue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의 곡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조크라 할 것입니다.


그날 <Why So Serious?> 무대에 선 연주자들은 그들의 연주만큼이나 훌륭한 연기자의 역할도 해냈습니다. 연주야 검증된 플레이어들이지만 연기는 초보인 무명의 플레이어들일 텐데 모두가 훌륭한 희극 배우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추위로, 고물가로, 그리고 이달 초 예기치 않은 정치판의 대형 사고로 한껏 경직되고 움츠려들은 관객들에게 그 시간만큼은 연주 구간과 상관없이 시종일관 즐거운 박수와 웃음을 쏟아내게 했습니다. 음악당 밖의 일들을 잊고 이색적인 공연을 즐기게 한 것입니다. 왜 진지하냐고 물은 공연이었지만 그 시간, 그 공간만큼은 진지하기 힘들었습니다.   


시리어스한 연주와 시리어스하지 않은 연기를 함께 들려주고 보여준 프렌즈오브뮤직의 송년 음악회 포스터 (서울 예술의전당, 2024. 12. 15)


바야흐로 크리스마스 시즌입니다. 12월 21일 오늘, 크리스마스는 이제 불과 4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해엔 임박한 오늘까지도 좀처럼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습니다. 거리에서 캐럴이 과거만큼 안 들리는 거야 기정사실이 되었다곤 하지만 TV를 비롯한 각종 온오프 미디에서도 예년과 같은 울긋불긋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크리스마스 소식 대신 심각하고 우울한 뉴스들이 그 시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블루 크리스마스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영화로 <러브 액츄얼리>가 있습니다. 2003년 첫 개봉 후 거의 매해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단골로 재개봉을 하곤 했던 로맨스 코미디입니다. 찾아보니 올해는 그 영화도 상영이 없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한 가지가 빠진 느낌입니다. 그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등장인물 모두가 크리스마스를 향해 힘차게 달려갑니다. 5주 전부터 크리스마스 무드에 젖은 다양한 커플들의 서로 다른 러브 스토리가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5주 전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상대로 그들의 사랑은 완주한 크리스마스에 모두 완성이 됩니다. 반면에 일부 비정상적인 커플의 관계는 그날로 정리가 됩니다. 완벽한 해피엔딩이고 카타르시스입니다.


며칠 안 남았지만 저도 이제부터라도 크리스마스를 향해 달려가렵니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배우들보다는 많이 늦었지만 짧게라도 크리스마스의 무드에 빠지겠다는 것입니다. 험난한 세상의 것들과 상관없이 말입니다. 당장 해마다 해왔지만 올해는 아직까지 설치 안 한 창고의 크리스마스트리도 꺼내어 거실을 밝히겠습니다. 다만 더 이상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주의 기도를 거듭 되뇌렵니다. 2천 년 전 그는 세상 모든 이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며칠 후 이 땅에 오셨습니다. 현재 세상 모든 신들 중에서 지상에 가장 가까이 내려와 있는 그입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또한 그날은 그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어린이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오시는 날입니다. 축제의 날이고 기쁨의 기간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이든, 산타클로스이든 지금 그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다면 아마도 이렇게 물을 것 같습니다.


"여보세요.. Why so serious? 지금은 크리스마스 시즌 아닌가요?"


김창완 아티스트가 산타 나라 말을 쓰고 손수 그린 2024년 크리스마스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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