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 겸재 정선 전시회
4년 전 어제로부터 하루 먼저인 2021년 4월 29일 우리나라를 놀라게 한 발표가 있었습니다. 삼성그룹에서 선대인 이건희 회장 사후 2만 3천여점의 미술품을 국가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당시 그 기부 목록에서 단연 화제가 됐던 작품은 국보 216호인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1751)였습니다.
그날 전 이곳 브런치에 아래 소환한 글을 올렸습니다. 근대를 연 르네상스 운동을 드러내놓고 후원한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모습과 그날 삼성의 모습이 닮아 보여서 그랬습니다. 또 하나 대표 기부 작품인 <인왕제색도>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제 집방으로 옮겨졌지만 당시엔 제 사무실 벽에 그 그림의 카피본을 걸어놨었기에 그랬습니다. 전 그때 아래 소환 글에 나오듯이 과연 재 생애 언제 정선의 진경산수화인 그 그림을 진짜로 보게 될까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날 쓴 글은 그런 염원을 담아서 쓴 글이었습니다.
그날로부터 4년 후로부터 하루 지난 어제 4월 30일 전 그 그림을 보았습니다. 저의 염원이 이루어져 <인왕제색도>를 실물영접한 것이었습니다. 역시 또 그 그림과 연관 있는 삼성그룹에 속한 용인의 호암미술관에서 보았습니다. 매일 가짜만 보다가 진짜를 만난 것입니다. 예상대로 놀람은 컸습니다. 진짜 <인왕제색도>를 보니 제 방의 가짜 카피본은 축소되어 있는 그 크기만큼이나 작고 초라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반면에 진짜 <인왕제색도>는 실제 크기(79.2×138.2cm )보다 훨씬 더 크게만 느껴졌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미술관에 가서 정선에 대해 몇 가지 다르게 놀란 점이 있었습니다. 일단 그가 그린 그림의 작품의 수입니다. 이번 호암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작품은 무려 165점에 달합니다. 그 정도로 그는 많은 그림을 그린 다작 화가였습니다. 그런데 이것들만이 그의 모든 작품은 아닐 것입니다. 당장 서울의 겸재정선미술관을 비롯하여 대구의 간송미술관, 울산의 대곡박물관 등에서도 그의 작품 전시회가 현재 열리고 있으니까요. 고흐와 같은 전문 화가도 아니고, 영조 시절 벼슬에도 오른 그가 그 먼 금강산을 오가고 오르내리면서 이렇게나 많은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또 하나 그는 중후장대한 산수화만 그리지 않았습니다. 자화상을 비롯한 인물화도 그리고 개구리, 방아깨비, 말 등의 경박단소한 동물과 식물에 컬러를 입힌 채색화도 그렸습니다. 그런 작품들을 보면서는 과연 붓으로 어떻게 그렇게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렸을까라는 놀라움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공부한 학식에 풍류까지 더해진 정통 양반답게 그의 그림엔 시도 많이 등장합니다. 그것도 여러 서체로 말입니다. 한마디로 겸재 정선은 시서화에 모두 능한 문예인이었습니다.
기쁜 날입니다. 개인적으로 소망했던 일이 이루어진 날이었니까요. 어제는 오늘과는 달리 매우 화창한 전형적인 봄날이었습니다. 호암미술관은 봄을 색다르게 즐기러 나온 상춘객들로 그 아래 펼쳐진 정원(희원)의 꽃들만큼이나 형형색색으로 버글거렸습니다. 저처럼 겸재가 내린 축복을 받은 자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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