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하 Apr 29. 2021

삼성 vs 메디치

오늘은 하루 종일 아래 액자 속 그림이 여기저기에서 보인 날입니다. 겸재 정선의 대표작 인왕제색도로 진경산수화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작품입니다. 겸재가 지하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하며 놀라다가 사실을 알면 매우 기분 좋아할 일이 발표된 오늘 하루입니다. 그런데 아래 그림은 짝퉁 카피본입니다. 그리고 굳이 제가 짝퉁임을 고백 안 해도 모두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들 있을 것입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삼성가의 통 큰 예술품 기부 리스트 중 가장 주목받는 국보 216호 작품입니다. 진경산수화란 말 그대로 진짜 경치를 보고 그리는 산수화입니다. 작가의 상상이나 꾸밈 장식 없이 오롯이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화풍의 그림입니다. 서양 화풍으로 치면 쿠르베, 도미에로 대표되는 사실주의나 라파엘 이전으로 돌아가서 있는 사실 그대로 그리자는 로제티, 밀레이 등의 라파엘전파 정도가 같은 정신을 공유할 듯싶습니다.

겸재가 인왕산에 후두둑 쏟아지던 여름 소나기가 그친 후 바로 막 그린 그림이라선가 카피본임에도 산이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그림 속 오브제들이 입체가 되어 액자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을 정도로 그림은 생동감이 뛰어납니다. 과연 정선이라는 뛰어난 아티스트의 위대함이 깃든 진경산수화라 그럴 것입니다.

저는 이 그림을 오늘이 아니더라도 매일 보고 있습니다. 10년 전쯤 구독하던 중앙일보 신년 1일 자에 구독자 선물로 삽지 형태로 배달된 이 그림이 좋아 보여 표구하여 사무실에 걸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사무실을 이전해도 이 그림은 계속 저를 따라와 매일 저를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요즘 명품의 경우 짝퉁도 등급에 따라 가격을 쳐준다는데 이런 명작의 짝퉁은 왜 안 그런가 모르겠습니다.

세계가 인정했던 경영 구루 이건희 회장 사후 남은 유족의 결심인지, 아니면 생전 그의 의지인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제1 거부다운 과연 위대한 기부입니다. 2만 3천여 점의 작품들이 이제 그 집안을 떠나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지방의 미술관들로 뿔뿔이 이사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국민들이 볼 수 있는 문화유산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제 더 이상 짝퉁을 안 보고 비로소 인왕제색도의 진품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접 비교하기엔 좀 그렇지만 과거에 이런 유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피렌체를 3세기 이상 지배했던 메디치가의 이야기입니다. 대를 이어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기에 그 집안엔 걸작들이 차고 넘쳤습니다. 1743년 이제 더 이상 후사를 보지 못한 마지막 메디치인 안나 마리아 루이사는 그녀의 집안 모든 작품들을 토스카나 공국의 피렌체 시에 기증했습니다. 익히 알려진 그 조건은 단 하나였습니다. 이 작품들을 피렌체 시 밖으로 절대 반출하지 않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이후 메디치가의 모든 예술 작품들은 현재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피치는 영어로 오피스라 하니 메디치는 죽어서도 여전히 예술품을 지키는 그들의 책무를 다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기부한 그 작품들은 전 세계의 모든 지구인들이 와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 않으니 그 한 곳만 가면 모두 다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과연 삼성가는 어떤 조건으로 이 많고 귀한 동서양의 수작 예술품들을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기부하는 것일까요? 메디치가처럼 그렇게 려나요..

(마지막 메디치인 안나 마리아 루이사는 3남매의 장녀였습니다. 그 3남매 모두 자녀가 없어 메디치가의 대가 끊어진 것입니다. 먼저 동생인 장남은 양성애자여서 난한 성생활로 인해 성병이 옮아 애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의 동생 차남은 한술 더 떠 동성애자로 동성애인과만 성생활을 하고 부인에겐 근처도 안 가 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똑똑했던 장녀인 그녀는 남편이 매독을 옮겨 그 후유증으로 임신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허 참..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그 덕분에(?) 후대의 우리는 메디치가의 걸작 예술품들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혹여 이상한 메디치가 태어나 다 팔아먹었거나, 외세에 파괴당했을지도 모를 그 작품들을 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Sometimes it snows in April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