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엔 형형색색의 그라피티로 물들은 레논의 벽(Lennon Wall)이 있습니다. 1980년 비틀스의 멤버였던 존 레논이 암살되자 그를 추모하기 위해 프라하의 예술가들이 낙서하며 시작된 벽입니다. 그 벽은 몰타기사단 대사관 담장의 일부입니다. 이후 그 벽은 당시 공산주의였던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그라피티의 내용이 정치색을 띤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는 낙서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벽 앞 작은 광장은 민주화를 위한 시위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체코는 1989년 민주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소련의 공산주의 치하에서 벗어나 자유주의 공화국이 된 것입니다. 유혈사태 없이 부드럽게 진행된 이 혁명적인 변화를 역사는 벨벳혁명이라 부릅니다. 바로 전 베를린에선 동서독을 막아놓은 벽이 무너져 브란덴부르크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후 체코는 1993년 슬로바키아와 분리하며 또 한 번 변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그것 역시 양국의 원만한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기에 4년 전 일어난 혁명에 빗대어 벨벳이혼이라 불립니다. 많은 사상자를 낸 같은 동구권의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 슬기로운 분리독립이었습니다.
레논의 벽은 프라하를 가로지르는 몰다우강(체코어, 블타바강)의 서편 강변 대사관 골목에 위치해 있습니다. 프라하역 쪽에서 프라하성 방향으로 도시의 랜드마크인 카를대교 건너에 있습니다. 역 앞 바츨라프 광장에선 더 이전인 1968년 소련의 억압에 맞선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8월에 일어났지만 프라하의 봄으로 불리는 비극입니다. 당시 소련은 바르샤바 조약의 동맹군을 시내에 진입시켜 체코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탱크로 막았습니다. 우리에겐 다니엘 루이스가 매력적으로 등장한 영화 <프라하의 봄>에서도 볼 수 있었던 현장이었습니다. 그 시기 체코 정부로부터 탄압받던 작가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한 영화였습니다.
레논의 벽 골목길엔 과거 모차르와 베토벤이 프라하에서 음악 활동을 할 때 머물던 집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두상 부조가 현관에 붙어있어 쉽게 식별이 되는 장소입니다. 그만큼 예술적 소양도 풍부했던 과거 보헤미아 왕국, 체코였습니다.
레논의 벽에 본래 그려져 있던 그의 얼굴은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원화 위로 새로운 그라피티가 입혀졌기 때문입니다. 마치 물감이 덧칠해져 원화 아래 숨겨있는 유명 아티스트의 명작처럼 그의 얼굴은 현재 그라피티 아래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으로 반전과 평화를 외쳤던 그의 이상이 깔려있는 레논의 벽은 영원할 것입니다. 그 벽이 무너지지 않는 한 말입니다. 그리고 45년간 그 벽을 허용해 온 건물주인 인도주의의 사도 몰타기사단이 어느 날 갑자기 낙서를 금지할 리도 없을 테니까요.
작년 이맘때인 2024년 파리올림픽 개막식에서 세느강 위에서 전 세계로 울려 퍼진 <Imagine>이 떠오릅니다. 생각해 보니 가장 최근에 들은 이매진이었네요.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