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영화의 효용성 - 프로젝트 헤일메리

by 마하

일전에 한 유명 배우가 우리나라의 영화 관람료가 너무 비싸다고 일갈을 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놀랐습니다. 저와 생각이 크게 달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화관 티켓이 너무 싸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예술을 감상하는 비용으로는 상대적으로 가장 저렴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랬습니다. 오페라나 뮤지컬, 연극 등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서양에서 고대 그리스인은 가장 보편적인 예술 감상으로 원형극장에 모여 연극을 즐겼습니다. 로마 시대에 들어서는 연극보다는 주로 원형경기장에서 열리는 검투사 경기나 전차 경기를 열광하며 봤습니다. 예술이 서커스로 바뀐 것입니다. 로마인의 점령지라면 유럽이나 북아프리카 어디에 가든 남아 있는 그 경기장이나 원형극장의 유적을 우린 볼 수 있습니다.


중세 천년 간 유럽인들은 아쉽게도 그런 것들을 한가하게 즐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모든 일과가 동네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시대였기에 그랬습니다. 엄숙하고 거룩한 시대가 아주 길게 이어졌습니다. 당시 중세인들에겐 종교재판에 이어지는 마녀의 화형식 같은 것들이 그나마 스펙터클한 볼거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날이면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불타는 그 광경을 지켜봤습니다.


근대 들어서는 음악과 연극이 결합된 오페라가 가장 대중적인 예술로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유럽의 웬만한 도시엔 어딜 가든 오페라 극장이 있으니까요. 도시마다 경쟁적으로 많은 돈을 들여 화려하고 아름답게 지었습니다. 그런 오페라 전용극장이 독일의 베를린엔 무려 3개나 있습니다. 동서로 갈라진 시절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한 도시 베를린이었지만 두 도시로 분단되니 없는 지역에 또 극장이 또 생긴 것입니다. 자존심이 작용한 서베를린에 하나가 더 생겼습니다. 동베를린에선 대중적인 오페라를 위해 하나를 더 운영해 총 3개가 된 것입니다. 그만큼 오페라 전용극장은 도시의 필수 건축물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인구 천만의 우리 수도 서울엔 그 전용극장이 한 개도 없습니다. 매번 말만 나오고 무산되어서 그렇습니다. 거기엔 정치적인 이유도 일정 부분 작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구에만 오페라 전용극장이 있습니다.


세기말인 1895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새로운 예술이 출현했습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며 영화가 등장한 것입니다. 선구자인 르미에르 형제는 파리의 그랑카페에서 그들이 발명한 시네마토그래프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이후 영화 산업은 폭발적으로 발전해 동네마다 극장이 다닥다닥 세워지며 기존의 오페라 하우스를 말 글대로 클래식한 공연장으로 밀어냈습니다. 오페라보다 관람료가 싸면서 더 다채롭고 입체적인 연출이 가능한 진정한 종합예술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중성과 보편성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술성은 별개입니다. 고대 로마시대 검투사 경기가 예술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그렇듯 1만원 전후의 비용으로 2시간 정도를 킬링하며 타임을 보낼 수 있는 영화가 저는 고맙고 좋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 동안 감동이든 즐거움을 느끼고 때론 장르에 따라 공부도 되니까요. 물론 모든 영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가 선택해서 봐온 영화들 중에서 지금까지 1만원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습니다. 영화관에서 먹은 커피나 주전부리가 맛이 없어서 아까운 적은 있었어도 말입니다.


영화 중에서도 가성비와 효용성이라는 측면에서 제가 가장 고평가하는 장르는 우주 영화입니다. 영화 속 현재는 실제에서도 보이거나 유사 경험을 통해 공감할 수 있고, 과거를 소재로 한 영화는 그 장소를 가서 남은 유적이라도 확인할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실행 여부와 상관없이 여유가 있다면야 세계 어디든 가볼 수 있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주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것은 제가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영역과 공간이기에 그것을 간접적이나마 경험할 수 있는 우주영화에 남다른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 우주여행 상품이 예약 판매 중이고 일부는 비행 중에 있기도 합니다. 블루 오리진(아마존, 제프 베조스), 버진 갤럭틱(버진항공, 리처드 브랜슨), 스페이스엑스(테슬라, 일론 머스크)의 우주 트리오가 경쟁작으로 파는 상품들입니다. 하지만 탑승 비용이 최소 2억이 넘기에 제 남은 일생에 미국까지 가서 지구 대기권 밖으로 나갈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아마 공짜로 타라고 해도 겁이 나서 못 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우주 비행은 위의 상품들처럼 짧은 시간 동안 대기권 밖으로 한 번 슈욱 하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먼 우주로 오랜 시간 항해와도 같이 비행하는 것이기에 질적인 측면으로 봐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영화관에서 그 장면을 보는 저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는 달리 무엇보다도 안전합니다. 그러니 좋은 것입니다. 말 그대로 진짜 미지의 신세계를 1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2시간 동안이나 경험하니 아니 즐거울 수 없는 것입니다.


다소 늘어지는 이 글은 최근 영화관에서 본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쓰는 감상문입니다. 사실 그런 류의 우주 영화는 많았지만 제가 위와 같은 생각까지 들게 한 첫 영화는 <그래비티>였습니다. 2013년 개봉작으로 조지 클루니와 산드라 블록이 우주 비행사로 등장하는 영화입니다. 아마 그 이전에도 우주 영화는 많았지만 퀄리티가 제가 생각하는 것만큼 따르지 못해 <그래비티>부터 그런 우주의 신비감과 경외감을 느끼며 새로운 눈으로 영화를 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 2014년 나온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 2015년 리들리 스콧 감독과 맷 데이먼이 손을 잡은 <마션>, 2019년 브래드 피트와 토미 리 존스가 부자로 나온 <애드 아스트라>가 제겐 그런 레벨의 영화로 보였습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발상부터가 기발하고 재미있습니다. 대단한 원작에서 출발한 것으로 작가는 전작인 <마션>을 쓴 앤디 위어라는 소설가입니다. 그가 설정한 스토리는 태양열로 인한 지구의 위기가 닥치는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우주로 날아간 우주 비행사가 똑같은 위기를 당한 미지의 별에서 온 고등 생명체와 합심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스토리입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전혀 다른 구조의 이질적인 생명체들이기에 양자는 서로의 언어를 트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그 장면이 이어지는 동안 2017년 개봉한 영화 <컨택트>가 생각이 났습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156분이나 되는 긴 시간의 대부분을 어두운 우주 속을 비행하는 주인공 라이언 고슬링과 이목구비가 없는 외계 생명체만이 등장합니다. 그렇듯 지루할 수밖에 없는 영화이지만 실상은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그만큼 긴박하고 재미있는 영화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국내 개봉일인 3월 18일부터 예상을 상회하는 초강력 영화로 흥행가도를 달리는 <왕과 사는 남자>(2월 4일 개봉) 사이에서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오늘인 4월 12일, 2백만명 돌파가 확실해 보입니다. 단 한가닥 남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경으로 승리를 위해 절체절명의 순간에 쏜 풋볼과도 같은 헤일메리입니다. 물론 승리했고 성공했습니다. 메리에게 감사를!


(영화는 아들과 함께 봤습니다. 갸가 집에 있길래 그냥 한번 가자고 쿡 찔러 봤는데 웬일로 그분이 흔쾌히 예스를 했습니다. 제 기억으론 <해리 포터> 이후 처음인 듯싶었습니다. 가기 전부터 감동.. 그러면서 자긴 원작 소설도 읽었다고.. 으응? 그럴 리가.. 표는 내가 끊었는데 끌려가는 기분이..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저는 내내 여주인공이 기네스 펠트로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안 해도 되는 실망을 2시간 넘게 했습니다. 오늘 글 쓰며 찾아 보니 아니라서..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