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이 다른 나라, 이탈리아

by 마하

기원전 753년 테베레강 동쪽 일곱 언덕에 조그만 도시 국가로 시작한 로마제국은 기원전 272년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를 깨끗이 통일했습니다. 마지막 그리스계 도시인 타렌툼을 정복함으로써 그 반도를 온전히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 뻗치는 힘으로 로마는 곧바로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카르타고와 격돌합니다. 그 바다 북쪽 유럽과 남쪽 아프리카의 맹주간에 제해권을 놓고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기원전 264년 시작된 포에니전쟁입니다. 100년 넘게 3차까지 간 그 전쟁의 시작은 로마와 가까운 시칠리아섬에서 일어났습니다. 제국으로 뻗어 가는 로마의 최초 해외 식민사업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북방 국경선은 루비콘강이었습니다. 이후 기원전 50년경 로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최고의 로마인이 나타나며 루비콘강 너머 갈리아까지 진출했습니다. 그는 포에니전쟁으로 그들 조상이 초토화시킨 아프리카의 카르타고도 다시 재건하였습니다.


이탈리아는 이렇게 지역적으로 보면 유럽 국가들 중에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일찍 통일 국가를 이루었습니다. 영국이나 프랑스는 그보다 훨씬 후인 중세 들어 통일 국가가 나타났으니까요. 잉글랜드왕국은 10세기 초, 프랑크왕국은 5세기말에 출현했습니다. 스페인은 레콩키스타가 완성된 1492년이 돼서야, 독일은 1871년 독일제국이 출범하면서 첫 번째 통일 국가를 이루었습니다. 물론 게르만족 대이동으로 오늘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는 고대와는 다른 민족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영국은 브리튼족에서 앵글로색슨족으로, 프랑스는 골족에서 프랑크족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로마인인 라틴족이 망한 후 중세 들어 딱히 특정한 민족이 주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민족들간 싸움에서 어느 한 민족이 독보적으로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민족은 주류 민족이 없이 그냥 이탈리안으로 불립니다. 공식적으론 포폴로 이탈리아노(Popolo italiano)라 칭합니다. 사용하는 언어는 과거 로마인이 사용한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사실 전 유럽을 통치한 로마였기에 영국어든, 프랑스어든, 독일어든 라틴어에 기초하지 유럽의 언어는 없지만 그래도 그들의 후예들이기에 언어적으로 가장 많이 닮았을 것입니다. 라틴어가 시간이 흐르며 변형되고 북방 게르만족과 남방의 침략자들이 사용한 언어들과 합쳐져 오늘날 이탈리아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어는 라틴어에 속어와 방언이 섞인 언어라고 합니다. 이런 라틴어를 중근세 유럽의 귀족들은 어린 자제들에게 교양 필수로 가르쳤습니다. 고대 인문학 학습을 위한 고귀한 언어로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이탈리아는 유럽 주요국 중 가장 늦은 1871년이 돼서야 오늘날과 같은 이탈리아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연도로 보면 독일과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독일은 962년 세워진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연합체 국가 안에 일찍부터 들어가 있었고, 프로이센공국과 통합하며 1701년 프로이센왕국으로 오늘날과 같은 정체성을 지닌 국가를 이루었으니까요. 그때까지도 이탈리아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처럼 도시 국가(City state) 형태로 산재해 있었습니다. 제노아, 밀라노, 베니스, 피렌체, 나폴리 등과 같은 도시로 말입니다. 하지만 같은 국가들이라 하더라도 북부와 남부는 전혀 다른 배경과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통일 전까지 남과 북이 전혀 다른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로마가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이탈리아 통일에 가장 방해가 된 도시는 로마였습니다. 로마는 인간이 아닌 신의 도시였으니까요.


476년 그 위대한 로마가 무너졌습니다. 로마가 있는 로마, 서로마제국입니다. 그 이전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는 광대한 제국 운영의 효용성을 위해 두 아들에게 제국을 분할해서 상속했습니다. 330년 콘스탄티누스 1세 때 제국의 수도를 그의 이름을 딴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상태에서 이렇게 천년제국 로마는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할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이전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 때부터 제국을 동서로 나눠 동방정제와 부제, 서방정제와 부제 등 4인 지도체제로 운영해와 분할 조짐이 있어온 로마였습니다. 테오도시우스 1세는 동로마는 장남인 아카디우스에게, 서로마는 차남인 호노리우스에게 나눠줬습니다. 서로마제국의 수도는 옛 수도인 로마가 아닌 밀라노로 정해졌다가 402년부터는 반도 동부의 라벤나로 안착되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수도로서의 기능이 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테오도시우스 1세 때 둘로 쪼개진 로마제국 (395)


476년 패망 시 라벤나에서 게르만족의 용병 대장인 오토아케르에 의해 제국을 넘겨준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는 로물루스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 그 이름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서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똑같습니다. 마찬가지로 1453년 동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이름도 그곳으로 천도한 황제와 이름이 같은 콘스탄티누스였습니다. 묘한 평행이론이 작용한 로마제국의 흥망사입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은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으로 메흐메트 2세와 가열차게 싸우다 망한 동로마제국과는 다릅니다. 고려의 공양왕이 외견상 평화롭게 이성계 장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듯이 10대 소년 황제였던 로물루스는 야만인이라 불린 자에게 그의 자리를 바쳤습니다. 그 정도로 당시 서로마는 늑대의 가죽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로마의 불이 꺼진 후 이탈리아 반도의 역사는 파란만장하게 펼쳐집니다. 계속해서 주인이 바뀌어 간 것입니다. 오토아케르를 몰아낸 1번 타자는 역시나 게르만족인 동고트족이었습니다. 그런데 6세기 들어 동로마제국에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났습니다. 천년을 더 이어간 동로마제국에서 최고의 황제로 꼽히는 유스티니아누스대제입니다. 그는 536년 동고트족으로부터 로마와 라벤나를 탈환하고 스페인까지 뻗어가 과거 지중해 연안 전체를 지배했던 로마제국의 부활을 꿈꾸었습니다.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도 점령했습니다. 내적으로는 그의 이름을 딴 법전과 소피아 대성당을 지어 강력한 기독교대국을 이룬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였습니다.


하지만 565년 유스티니아누스대제가 사망하며 그 땅은 또 다른 게르만인 랑고바르드족이 차지했습니다. 그들은 206년간(568~774) 그곳에 랑고바르드왕국으로 존속했습니다. 밀라노가 위치한 롬바르디아 지역의 유래가 된 민족입니다. 그 나라는 프랑크족의 나라인 프랑크왕국의 샤를마뉴에 의해 멸망되었습니다. 샤를마뉴는 오늘날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을 태어나게 해 유럽의 아버지라 불리는 대제입니다. 그가 죽으면서 광대한 프랑크왕국의 영토를 세 아들에게 나눠줬는데 서프랑크는 프랑스, 동프랑크는 독일, 중프랑크는 이탈리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베르됭조약(843)과 메르센조약(870)에 의해 3국의 영토가 정리되었습니다.


이 시점 이탈리아, 아니 유럽 역사상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기독교의 지도자인 교황이 세속 군주처럼 영토를 갖게 되는 교황령(Papal State)이 시작된 것입니다. 위의 샤를마뉴의 아버지인 피핀 3세가 당시 교황인 스테파노 2세에게 공짜로 그가 정복한 땅을 주었습니다. 엄밀히 말해 공짜는 아니고 정당하지 않은 그의 왕위를 교황이 인정해주는 대가로 기증한 것입니다. 당시 동로마의 영역이었던 라벤나를 정복해서 기증했습니다. 역사에선 '피핀의 기증'(753)으로 불리는 사건입니다. 이때부터 로마의 교황은 콘스탄티노플의 동로마와 연을 끊고 서방의 기독교 국가들과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교권이 왕권을 압도했던 시기, 이런 기증은 이후 계속 일어났습니다. 반도 동쪽 라벤나에서 시작된 기증은 서쪽의 로마까지 이어졌습니다. 미스터리한 서류 조작 사건도 있었지만 이렇게 교황청이 있던 로마는 교황의 땅이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로마는 신성불가침한 지대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순교지로서 신의 땅이 된 것입니다. 교황령은 당시 한 도시가 아니라 이탈리아 반도 중간에 걸친 전 지역으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한반도의 DMZ와도 같은 교황령이 형성되며 이탈리아의 남과 북은 단절이 되었습니다.


프랑스가 피렌체를 침공한 1494년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 지형도. 반도 중앙에 교황령


로마 아래 나폴리와 시칠리아는 다른 흐름의 역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북부 이탈리아는 샤를마뉴 같은 뛰어난 황제가 정리를 해줬지만 남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은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게르만족, 동로마제국, 아랍, 노르만족 등이 계속해서 침공을 하며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지중해의 중심, 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지점으로 모두가 탐을 낸 것입니다. 결국 아라곤왕국이 차지하며 그때부터 나폴리와 시칠리아는 스페인과 한 배를 타고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1492년 스페인이 통일되며 통일의 한 축인 아라곤이 스페인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도 중앙 교황령 위 북부는 중프랑크왕국이 멸망하며 위에 열거한 도시국가 형태로 각자도생하며 나아갔습니다. 항구를 가진 제노아, 놀리, 베네치아, 피사, 아말피, 가에타 등은 부유한 해상공화국으로 지중해와 흑해를 오갔습니다. 당시 교황은 바로 곁에 강력한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프랑스나 신성로마제국처럼 적당히 떨어져 있는 것은 상관없지만 바로 곁에 강력한 대국이 있으면 위협이 되기에 그런 도시 국가 중심의 체제가 지속된 측면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탈리아는 유럽이 백년전쟁을 끝내고 제후에 의존하던 봉건제도를 끝내고 강력한 중앙정부의 왕정국가를 구축해 나가는 시기에도 도시국가로 올망졸망 살아나갔습니다.


이제 이탈리아가 요동을 칩니다.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를 장악한 메디치가문의 최고 메디치인 로렌초 메디치가 1492년 43세의 이른 나이에 죽자 프랑스의 샤를 8세는 곧바로 1494년 그곳을 침공했습니다. 나폴리까지 밀고 내려가 이탈리아 전역을 차지하려 한 야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메디치가문에 프랑스왕가의 문장인 백합을 하사할 정도로 그간 사이좋게 지내온 관계였지만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으로 변했습니다. 로렌초 메디치는 생존 시 이런 외세의 침공을 막고자 피렌체, 밀라노, 베니스, 나폴리 등과 전략적 동맹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자마자 동맹은 와해되고 이탈리아는 외세의 격전장으로 변해갔습니다.


이탈리아 내에서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가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를 생포한 파비아전투 (1525)


북쪽에서 프랑스가 공격을 개시하니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소유권을 가진 스페인도 이듬해인 1495년 군대를 밀고 들어왔습니다. 스페인을 통일하자마자 이사벨여왕과 페르난도왕이 이탈리아를 두고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마치 우리 한반도의 청일전쟁과도 같은 외세끼리의 전쟁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벌어졌습니다. 이탈리아전쟁이라 불리는 이 전쟁은 이후 65년간(1494~1559) 지속되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로마의 교황은 카톨릭의 맏딸이라 불린 프랑스와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훗날 19세기말 이탈리아 통일 때까지도 지속되었습니다.


전쟁 기간 스페인은 합스부르크왕가와 결혼동맹으로 그 왕가가 주축인 신성로마제국의 연합국이 되었습니다. 이사벨여왕 부부의 딸인 후아나여왕이 합스부르크왕가의 필리프 1세와 결혼하면서 그 왕가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과 합스부르크 최고의 전성기로 스페인압스부르고라 불린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 부부의 아들인 카를 5세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구 역사상 최대 영토를 보유한 왕이 되었습니다. 스페인계 엄마인 후아나로부터는 스페인, 포르투갈, 시칠리아, 나폴리, 신대륙을 물려받았고, 합스부르크의 아버지인 필리프 1세로부터는 부르고뉴,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신성로마제국 전체를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압스부르고의 최대 영토인 카를 5세 시절의 유럽 (1544)


그 힘으로 카를 5세는 이탈리아전쟁을 종식시켰습니다. 스페인의 승리이고, 신성로마제국의 승리이며, 합스부르크왕가의 승리였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북이탈리아는 합스부르크왕가의 영향권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교황령인 로마 아래는 본래대로 스페인 영향권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스페인압스부르고는 스페인 쪽에서 왕위를 이어가지 못해 1700년 프랑스계인 부르봉왕가가 들어섰습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시칠리아도 그 부르봉왕가의 영향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후 시칠리아와 나폴리는 아예 하나로 합쳐져 양시칠리아왕국(1816~1861)이 되었습니다. 남부부터 통일 아닌 통일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1796년 나폴레옹이 쳐들어 왔습니다. 그의 이탈리아 원정은 교황령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달랐던 이탈리아가 처음으로 하나가 된 웃픈 사건이었습니다. 그때부터 18년간 이탈리아는 나폴레옹을 비롯한 그의 형제들이 돌아가며 다스렸습니다. 이후 나폴레옹은 물러갔지만 이탈리아엔 전쟁의 오비이락으로 이상한 나라가 들어섰습니다. 나폴레옹전쟁의 전후 처리를 위해 모인 빈 체제(1814~15)에서 본래 북부 이탈리아에 지분이 있던 합스부르크왕가의 오스트리아가 롬바르디아-베네치아왕국(1815~1866)이라는 괴뢰국을 세운 것입니다. 이렇게 이탈리아의 수난기는 19세기 들어서도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대혁명의 정신도 함께 가져온 나폴레옹이었기에 그런 오스트리아의 식민 정책은 이탈리아를 각성하게 했습니다. 부활을 뜻하는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 운동'이 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부활이라면 그것은 로마제국의 부활을 의미할 것입니다. 로마 멸망 후 이탈리아엔 통일국가가 있던 적이 없었으니까요.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기 때 이탈리아 공화주의자들이 만든 이탈리아 삼색기 (1797 제정)


마침내 1861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토리노를 수도로 한 이탈리아왕국의 출범을 선포했습니다. 수상인 카부르가 통일의 로드맵을 작성하고 실행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 롬바르디아-베네치아왕국은 1866년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프랑스 원군의 도움으로 가능했던 독립이었습니다. 대신 이탈리아는 니스와 사보이아를 프랑스에게 내주었습니다. 값비싼 통일의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 훗날 2차 세계대전 시 무솔리니 총통은 그곳을 이탈리아 영토로 재편입시켰지만 패전으로 수복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남부의 통일은 달랐습니다. 한마디로 거저로 어느 날 갑자기 한 영웅의 출현으로 통일이 이루어졌습니다. 붉은 혁명가, 가리발디가 그 엄청난 일을 혼자 해내었습니다. 가리발디는 나폴리를 접수하고 이어서 시칠리아까지 상륙해 간단히 그곳을 정복했습니다. 그런 후 가리발디는 그 양시칠리아왕국을 북부를 통일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이탈리아왕국에 헌납했습니다. 가리발디가 마음만 먹으면 남부 이탈리아의 왕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체 게바라가 최고로 존경했던 진정한 독립운동가요 혁명가인 그였습니다. 1861년 이탈리아는 그렇게 남과 북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통일기인 19세기 중후반 지형도. 롬바르디아-베네치아왕국 중 롬바르디아는 1859년 먼저 독립


하지만 완전한 통일이 되기엔 마지막 관문이 하나 더 남아 있었습니다. 언급한 대로 로마입니다. 통일 세력은 10년이 지난 1871년이 돼서야 비로소 로마를 수도로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의 군주 교황 비오 9세의 요청으로 로마를 방어하던 프랑스군이 물러나서야 가능했던 로마 입성이었습니다. 프랑스는 자국에서 일어난 보불전쟁(1870~1871)으로 제 코가 석자라 로마의 병력을 철수시켰습니다. 이렇게 로마 수복으로 로마제국의 부활인 리소르지멘토는 완벽하게 끝이 났습니다. 크게 보면 남과 북으로 갈렸던 이탈리아가 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통일이 되었음에도 다른 뿌리와 역사로 인해 이탈리아의 남북간 갈등은 계속되었습니다. 오늘날엔 분리독립의 말이 나오는 대개의 나라들이 그러하듯이 경제력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상공업이 발달한 북부의 부유함이 농업이 주산업인 남부의 빈곤함을 메꾸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통일의 4인방. 좌상 시계방향으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가리발디 민병대장, 마치니 공화주의자, 카부르 수상


* 이탈리아 통일기인 19세기 중후반의 역사는 전에 이곳에 올린 글인 <라데츠키와 행진곡>, <레오파드와 이탈리아 통일>에 비교적 상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