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봄 햇살이 좋습니다. 창밖 둑방 너머엔 양재천이 흐릅니다. 제가 3년 8개월간 앉아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자리입니다. 그간 특별한 약속이 없는 오후엔 주중이든 주말이든 거의 이 카페에 왔습니다. 메디치의 사무동인 우피치가 미술관이 된 것과는 반대로 동네 카페가 저의 오피스가 된 것입니다. 벨 에포크 때부터 헤밍웨이에 이르기까지 파리의 문인들이 왜 카페에서 글을 썼는지 저는 확실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조용한 도서관보다 소음이 있는 이런 카페가 훨씬 더 글 작업에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 1년 동안은 도서관에서 쓴 경험이 있기에 체득한 사실입니다. 물론 저처럼 산만한 사람에겐 더 그럴 것입니다.
이 카페 주인은 독특합니다. 양재천 뒷길에 즐비한 다른 호화로운 카페들의 주인과는 분명히 달라 보입니다. 일단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영업에 방해되지 않기 위해 제가 피해 가는 점심 시간엔 안 그렇겠지만 아르바이트생도 있는 그 바쁜 그 시간을 빼면 그는 카운터 안쪽 내실로 들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장을 찾은 손님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와 같은 데스크벨을 눌러서 주인을 호출합니다. 그래야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장사를 하면서 돈 버는 데에 적극적이지 않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데스크벨을 발견하지 못한 손님들은 주인을 부르고 찾다가 그냥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럴 땐 자리에 앉아 있던 제가 그 벨을 누르라고 가르쳐 줍니다. 저는 산만하니까 그런 손님들의 모습도 잘 보이곤 합니다.
카페는 보시다시피 훵~합니다. 아기자기함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밋밋한 스타일의 카페입니다. 그 홀 맨 끝 창가의 구석 자리가 제 자리입니다. 런던 대영도서관의 G-8 좌석이 30여년간 카를 마르크스의 지정석이었던 것처럼 카페의 그 창가 자리는 3년 8개월 동안 저의 지정석이 되어 오고 있습니다. 대개는 사진에서 보듯이 비어 있어 쉽사리 저의 차지가 되곤 합니다.
마르크스가 대영도서관의 그 지정석에서 <자본론>을 썼듯이 저는 제 책인 <TAKEOUT> 시리즈를 이 자리에서 썼습니다. 그는 30여년 동안 그곳에서 딱 한 권을 출간했지만 저는 카페 3년 8개월 더하기 이전 도서관 1년에 걸쳐 총 4권의 책을 펴냈습니다. 하지만 그의 책은 세상의 절반을 바꾼 불멸의 저서가 되어 지금도 서점의 매대를 장식하고 있는데 반해 제 책들은 출간과 동시에 샐러리맨 통장의 월급과도 같이 매대에서 금방 사라지곤 했습니다. 제가 지금 뭘 비교하자는 건가요?ㅎ
돌아가는 손님에게 데스크벨 안내를 해주기도 해서 그런가 말수 적은 이 카페 주인은 제가 주문한 커피는 특별 대우를 해줍니다. 다른 손님들에겐 종이컵에 커피나 차를 담아주지만 제 커피는 자기 잔에 따라 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열 손실이 적어 맛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워낙 자주 많이 보기에 그간 정이 들어서도 그렇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제겐 고마운 일입니다. 가까운 곳에 글을 쓸 장소가 있고 이렇게 칙사 대접까지 해주니 말입니다.
아래 녹음이 진 창밖 정경은 작년 여름에 찍은 사진입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창밖은 그 사진과 변함 없는 모습으로 푸르게 변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작년 봄에도 이 자리에서 글을 썼듯이 오는 여름에도 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저는 쓰고 있습니다. 광고 현업을 떠난 2021년 7월부터 게재한 <뉴스버스>의 원고가 내일 금요일 마감이기에 그렇습니다. 처음 2년은 꼬박 매주 한 주도 빠지지 않고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후 지금까지 2년 8개월 동안은 3주에 2회 꼴로 쓰고 있습니다. 편당 원고지 40~60매에 달하는 인문교양 에세이입니다. 그 글들이 모이고 같은 주제끼리 분류되어 4권의 <TAKEOUT> 책이 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온전히 제 이름을 건 클래스를 시작했습니다. 글이 모여 책이 되듯이 지난 1년간 하나하나 만든 강연 콘텐츠를 모아 8개의 강의를 하나로 묶은 8주 클래스를 개설한 것입니다. 서양문명사와 일본근대사를 주제로 한 강연입니다. 역시 TAKE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