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햄넷>과 셰익스피어의 집

by 마하

아직도 상영 중인 영화 <햄넷>의 주인공은 햄넷이나 햄릿, 그리고 그 두 사람을 창조한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햄넷만을 창조한 야네스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아내이고 햄넷의 엄마입니다. 햄넷은 그 부부의 유일한 아들로 어린 시절 병으로 죽습니다. 셰익스피어는 그 비통함을 담아 불멸의 비극 <햄릿>을 탄생시켰습니다. 죽었지만 영원히 죽지 않는 아들로 남긴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의 사실입니다. 여기서 햄릿과 햄넷은 혼용되는 같은 이름입니다. 그렇듯이 야네스도 본명은 앤입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윌로 불리듯이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어린 시절 시골에 가면 할머니는 저를 광용이라 부르지 않고 광녜라 불렀습니다. "광녜 왔냐?"



영화에서 슬픔의 크기는 햄넷의 아버지인 셰익스피어보다 엄마인 야네스가 훨씬 더 크게 보입니다. 그녀는 자식 잃은 절절한 모정을 진짜 친모와도 같이 연기했습니다. 런던에 체류하느라 셰익스피어가 아들의 죽음을 보지 못했고, 장례를 치른 후에도 일터인 런던으로 바로 돌아가야 했기에, 슬픔에 빠진 야네스를 지켜주지 않아서도 더 그렇게 보였습니다. 통상 묘사되는 아버지의 모습일 것입니다. 당시 셰익스피어는 런던에서 극작가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때였습니다.


결국 이렇게 셰익스피어와 처음 만나는 처녀 시절의 달콤한 연기부터 자식을 잃게 되는 슬픔까지, 그리고 남편이 아들을 위해 만든 연극 <햄릿>을 보며 비로소 갈등이 풀리고 정화되는 희로애락의 명연기를 펼친 야네스 역의 배우 제시 버클리는 올해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셰익스피어 역을 맡은 폴 매스칼도 망작으로 찍힌 <글래디에이터 2>의 악평과 불명예를 씻어낸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묘하게도 두 배우 모두 당시 잉글랜드와 매우 적대적이었던 아일랜드 출신입니다.



제가 영화 <햄넷>을 보며 또 하나 관심있게 본 것은 영화의 주 배경지인 스트랫퍼드어폰에이본(Stratford-upon-Avon)이었습니다. 그의 작품명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길고도 어려운 이름은 그의 출생지이자 사망지입니다. 대저 출생지와 사망지가 일치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에이본 강가에 위치한 이 스트랫퍼드는 셰익스피어(1564~1616)가 태어나서 자라고, 결혼을 하고 150km 떨어진 일터인 런던을 오가면서도 살았으며, 은퇴 후에도 살다가 사망한 완벽한 그의 도시입니다. 그래서 그의 흔적이 어느 역사적 인물보다도 그곳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가 살던 시절에는 인구 250명의 조그만 마을이었습니다. 2년 전 여름 저는 궁금해오던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그래서 더 흥미롭게 <햄넷> 영화의 배경지에 주목한 것입니다.


스트랫퍼드엔 셰익스피어와 관계된 집이 무려 다섯 채나 있습니다. 400년이 지난 지금도 다 있습니다. 생가와 결혼 후 분가한 집 이외에 외갓집, 처갓집, 딸네집 등이 그 집입니다. 영화 <햄넷>에서 장갑 만드는 집 아들인 셰익스피어는 야네스를 처음 본 후 그의 집에서 그녀의 집을 참새가 방앗간 가듯이 오갑니다. 그래서 그의 집에선 아버지로부터 얻어맞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 얹혀살며 세 아이를 낳고 런던에 가서 출세하고 번 돈으로 고향에 저택을 짓고 삽니다. 그러니 위의 집들 중 세 집이 나오는 것입니다.


찰스 디킨스가 살려낸 셰익스피어 생가


그 집들 중 제가 가장 궁금해 한 집은 셰익스피어가 분가한 저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스트랫퍼드를 갔을 때 못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그곳이 어느 시점 헐려서 터만 남았기에 그랬습니다. 그가 태어난 생가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그 집은 새집답게, 그리고 저택답게 '뉴플레이스'라 불리고 있습니다. 터만 남은 그 집을 굳이 돈 내고 들어가서 볼 마음이 들지 않아 입구만 보고 발길을 돌린 것입니다. 지금은 약간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에서나마 셰익스피어의 그 집을 훔쳐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집은 영화에서도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실내는 물론 외관도 완벽히 보여주지 않고 마당에 있는 자녀들 뒤로 살짝 걸치는 정도로만 나옵니다. 고증하기가 힘들어서 그랬을까요? 좀 아쉬웠습니다.


터만 남아있는 셰익스피어의 저택 뉴플레이스


뉴플레이스가 터만 남아있는 것은 보존을 잘 못해서입니다. 이유는 셰익스피어가 후손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보듯이 유일한 아들 햄넷이 영화에서처럼 아이 때 죽은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결혼해서 스트랫퍼드에 집이 있다는 딸도 그녀의 딸 대에서 손이 끊겼습니다. 이렇게 그의 생가를 비롯한 그의 유산들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매각을 거치며 주인이 바뀌면서 돈으로 환산되는 일반 부동산이 되어간 것입니다. 그것에서 더 망가지지 않고 생가를 비롯한 그의 유산을 살려낸 것은 2백년 후 나타난 어느 잘난 후배 작가에 의해서였습니다.


찰스 디킨스입니다. 그는 경매에까지 나온 셰익스피어의 생가를 살리기 위해 기금 모금을 해 1847년 국가기념관으로 영구 보존케 했습니다. 그의 이런 노력은 그가 죽은지 6년 후인 1876년 셰익스피어 재단을 발족하게도 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스트랫퍼드에서 셰익스피어 지키기와 띄우기에 앞장서는 단체입니다. 현재 스트랫퍼드의 시민들은 셰익스피어 덕으로 먹고살고 있을 것입니다. 연간 600만명이 그 도시를 찾으니까요. 아마도 역사적 인물들 중에서 가장 많이 생가를 찾는 위인일 것입니다. 공산주의 국가의 독재자 생가는 빼고 말입니다. 고리짝 동네 어르신을 잘 둔 스트랫퍼드어폰에이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