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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Jul 09. 2021

행복을 만드는 공장 1

이런 상품을 만드는 공장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강원도 홍천 산골에 있는 어떤 공장의 이름이 바로 '행복공장'이니 이름으로만 보면 있을까싶습니다. 이 공장의 원료, 원재료는 그곳에 입소(input)하는 사람들입니다. 행복이 모자라거나 행복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와서 하루든 이틀이든 이곳의 행복 공정을 거치면 최종적으로 행복해져서 출소(output)하게 됩니다. 사실 모두가 행복해져서 출소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출소자들 행복의 순도에도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행복 순도 80%가 되어서 출소하는 사람, 58%에만 그치고 출소하는 사람, 반면에 95%까지 도달해서 출소하는 사람 등 같은 공정을 거쳐도 행복이라고 하는 최종 상품의 결과는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공장의 공장장이 정한 목표는 언제나 행복 순도 100% 출소입니다.

  

이 공장의 설립자, 행복공장의 공장장은 권용석 이사장이라고 불리는 친구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 이력이 특이합니다. 행복, 행복한 삶, 행복 치유 등과는 왠지 거리가 멀 것 같은 일을 하다가 공장을 세웠기에 그렇습니다. 그는 전직 검사입니다. 지금보다 그들이 좀 더 무서워 보였던 시절에 그 직업에 종사하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떤 사건을 처리하다 문득 인간의 행복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다 걸쳤던 검사복을 벗고 대형 로펌의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공장 건축을 위한 재원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본인이 벌어서 모은 사재를 거의 쏟아붓고, 그리고 그간 그의 뜻에 동참해온 후원자들의 모금을 더해 8년 전인 2013년 드디어 행복공장 수련원을 완성했습니다. 2009년에 실체 없이 행복공장이라는 사단법인을 발족했으니 마음속에 그린 공장을 짓기까지는 4년이 걸렸습니다.  

   


당시 권용석 검사가 겪은 사건은 고교 청소년 강도 사건인데 주범이 부모가 없는 고아였습니다. 그때 그의 생각은 그 아이가 감옥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그가 그곳에서 나오면 어찌 될까라는 고민이 계속 그를 잡고 놔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평생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골로 갈 수밖에 없는 그 소년의 미래 인생이 떠오른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감옥을 가는 것만은 막아야 했기에 그 소년과 교화 성격의 많은 면담을 하고 피해자와 합의를 잘 이끌어내어 그의 감옥행만은 겨우 막았다고 합니다. 당시 그의 보스는 결재 시 기소하라고 불허했지만 끝내 관철시켜 얻은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소년의 감옥행을 막은 그였지만 단 하루라도 감옥에 들어가 세상과 담을 쌓고 살면 그 순간은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고 합니다. 격무와 세상의 나쁜 것에 찌들어 살던 그에게 세상이 큰 감옥으로 보이고 실제 작은 감옥은 그런 세상과 단절된 피난처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오늘날 행복공장이 발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살면서 그간 살아온 삶의 방향이 전환하는 변곡점이 생기는 시기, 그에겐 그때 그가 맡은 청소년 사건과 동시에 그를 포함한 인간의 행복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한 그때가 바로 그 시기였을 것입니다. 그의 가슴에 이전에는 흐물흐물한 추상명사였던 행복이라는 키워드가 그때는 찬 얼음을 만지듯 화들짝 놀라게 하는 선명한 고체로 그의 가슴에 와서 박혔을 것입니다. 그것은 보리수 아래에서 7주간에 걸쳐 인간사의 진리를 깨달은 부처나, 목욕탕 안에서 한 순간 새로운 원리를 발견해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와 그것들과 다를 바 아닐 것입니다.     


행복공장에는 감옥이 있습니다. ‘내 안의 감옥’이라 불리는 그곳에서 역설적으로 행복이 생산됩니다. 감옥은 독방입니다. 실제 평수와 구조를 진짜 감옥과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입소와 출소로 표현했습니다. 방에 들어갈 때 입소자는 아무것도 못 갖고 들어갑니다. 가장 세상적인 것, 스마트폰은 물론 금지입니다. 식사는 감옥처럼 끼니때마다 문 하단 작은 배식구를 통해 전해집니다. 말 그대로 프리즌 스테이(prison stay)입니다.


입소자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는 세상과 유리되어 보내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나밖에 없기에 온전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신영복 님이 이야기한 감옥에서의 사색이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학원과 입시에 찌든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쳇바퀴 돌리듯 사회생활하는 장년층에게도 쉼 속에서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에 대한 사색이 그곳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 취침 시 머리맡 위로 쏟아지는 밤하늘 별빛은 보너스입니다.  

   


이번 주에 1박 2일간 그곳을 다녀왔습니다. 이른 아침 차로 홍천을 향해 국도로 달릴 때 서울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일단 숨통이 트였습니다. 집합한 일행들과 강당에서 공장 오리엔테이션 후 점심을 먹고 등산이라 하기엔 좀 낯 간지러운 부지를 빙 둘러싼 산을 우에서 좌로 올라갔다 내려왔습니다. 다녀와서는 공장 뒤편에 산과 맞닿은 텃밭에서 감자를 캤고 감옥 앞 잔디밭에 삐죽 솟아난 잡초들도 뽑았습니다. 두 일 다 군 제대 후 처음 해보는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허리가 아팠습니다.


해질 무렵엔 지근거리에 있는 가수 인순이 씨가 운영한다는 다문화학교 학생들이 방과 후 독서토론 수업을 위해 행복공장을 방문했습니다. 아이들을 보니 이상하게도 밖에서 보는 것보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곳에 있어선가 쟤들이 미래 이 나라의 주인공.. 뭐 괜시리 이런 생각이 퍼뜩 들어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매끼 식사는 그곳에서 직접 기른 것들로 밥상을 풍성하게 만드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아, 육식은 아닙니다. 이곳의 가축은 독서토론하러 온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라 했던 개 두 마리가 전부이니 말입니다. 공장 내 작은 연못의 작은 물고기는 식용으로 쓰기엔 너무 작았습니다.   

  

 

비는 오후 내내 계속 오락가락했습니다. 달라진 우리나라의 여름 날씨를 실감한 강원도의 긴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날이 컴컴해지고 이윽고 독방 감옥으로 입소했습니다. 피곤했지만 행복공장이라 하니 행복이라는 단어를 잠깐은 생각했습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인가? 물론 행복한 사람이지. 그럼 과연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 하고 말입니다. 마치 어린 시절 밥 먹기 전 엄마 앞에서 혼나지 않으려고 건성으로 기도하듯이 말입니다. 그나마 답을 구하기 전 피곤에 밀려 저의 눈은 굳게 닫혀 버렸습니다. 닫히기 전 아쉽게도 날씨가 안 도와줘 공장장이 자랑했던 별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식당에서 감옥으로 가는 길에 잔디 위에 붙은 반짝이는 반딧불은 보았습니다.    

    

위에 이곳 행복공장 설립자를 친구라 표현한 것은 사실 그 친구가 같은 고교 친구이기에 그렇습니다. 학교 때 단 한 번도 전교 수석을 놓치지 않은 그때도 자랑스러운 친구였습니다. 요즘 가수 조영남 씨가 중앙선데이에 매주말 주변 지인들과 친구들을 소개하고 자랑하는 글을 게재하고 있는데 저도 한 번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그가 검사를 그만두고 행복공장을 처음 시작할 때는 혹시 정치를 하기 위한 포석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를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간 보여준 그의 초심과 순수의 힘이 여과 없이 주변에 그대로 이해되고 전해졌기에 그럴 것입니다. 그 결과로 어려운 재정 가운데도 홍천 땅에 행복공장이 지어졌고 지금까지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연극 연출을 하는 그의 부인 노지향 씨는 소년원생, 외국인 노동자, 장애우, 기지촌 여성 등에게 연극을 지도하고 무대에 올리는 등 남편 못지않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회 소외계층인 그들에게 행복감과 자존감을 심어주려는 노력이고 행동입니다. 그녀는 권 이사장과 함께 행복공장의 공동 파운더입니다. 부창부수, 과연 이 사자성어가 딱 들어맞는 선한 부부입니다. 요즘 광고 중 '선한 영향력'이란 카피가 눈에 들어오고, 기업경영의 화두가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라 너도나도 선포식을 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이나 기관이 계속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런데 출소 후 달라진 저의 행복 점수는? 아쉽게도(?) 저는 정식 입소한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반입을 허용해줬네요. 밥도 다 식당에 가서 먹고.. 제대로 한 번 더 입소해야겠습니다.     



- 뉴스버스 7월 9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www.newsverse.kr/news/articleView.html?idxno=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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