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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Jun 23. 2021

타작마당 사과나무

서울시 중구 장충동에 타작마당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마당엔 사과나무가 있어 매년 가을이면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는데 그 마당 정원을 가꾸는 주인이 스피노자를 좋아하여 그와 똑같은 심경으로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외쳤다는 스피노자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과일 중 그는 왜 하필 사과를 선택했을까요? 세상엔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과일보다 더 많은 과일이 있고 굳이 맛이나 색깔, 모양으로 치자면 사람마다 호불호가 다 다른데 말입니다.


타작마당 정원의 사과나무, 2020. 10


그러고 보니 인류 역사를 바꾸는 어떤 모멘텀의 스토리에 짜잔~ 하며 과일이 등장했다 하면 그것은 어김없이 사과였습니다. 단연코 원픽 독보 과일로 말입니다. 가장 오랜 텍스트인 성서에 등장하는 최초의 과일이라서 그런 걸까요? 무위도식하며 편안히 살아도 됐을 인간의 운명을 만만치 않게 만들고, 그 속에서 남자, 여자의 역할을 명확히 노동과 출산으로 지정해준 에덴동산에 하나님이 심었다는 선악을 구분한 그 사과 말입니다. 이후 동산에서 쫓겨나 신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 살던 신화와 역사가 혼재했던 시대에도 사과는 엄청난 사건에 등장하게 됩니다.


올림푸스 산 위에 살던 여신 헤라, 아데나, 아프로디테가 어느 날 미모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의 손엔 각자의 미모를 상징하는 사과가 들려 있었습니다. 심판관이 필요했던 그녀들은 신들의 신인 제우스에게 쪼르르 달려가 누구의 미모가 최고인지를 가려달라는데 제우스는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부인이자 질투의 여신으로 악명 높은 헤라의 바가지가 두려워 다른 여신을 선택할 수가 없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제우스는 당시 지구 최고의 미남인 트로이의 패리스 왕자를 심판관으로 선정하는데 그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사과를 선택하여 그녀는 올림포스 여신의 미모 챔피언에 오릅니다. 그리고 아프로디테의 약속대로 패리스는 당시 지구 최고의 미녀인 스파르타의 왕비 헬렌을 보쌈을 해와 아내로 맞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를 되찾으려는 트로이전쟁이 발발해 그도 죽고 그의 왕국도 멸망하는 뼈아픈 과를 초래하게 니다. 헬라스라 불렸던 그리스 연합과 트로이 연합이 총동원된, 인류 최초의 세계대전인 동서의 대충돌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여신들의 하찮은 미모 경쟁에 등장한 사과 한 개로부터 비롯것입니다.


<패리스의 심판>, 루벤스, 1638~1639


이렇게 오늘의 세계까지 오게 한 서양사의 두 줄기인 히브리즘과 헬레니즘의 꼭대기에 등장했던 과일이 사과였으니 이후에도 과일이 필요한 역사에 사과가 등장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역사에 사과는 이때저때 이곳저곳에서 줄줄이 등장합니다.


영국의 뉴튼은 낙과로 인해 근대 과학의 토대가 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는데 하필 그가 낮잠을 잔 곳이 사과나무 아래였습니다. 전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동화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독일의 백설공주는 하필이면 에덴동산에서 이브가 먹어서 탈 난 사과를 또 먹게 됩됩니다. 마녀로 변신한 뱀의 유혹의 재판입니다. 웅장한 현대 오페라 구조를 구축한 이탈리아의 롯시니의 윌리엄텔이 쏜 화살이 명중한 머리 위에 얹힌 과일은 왜 또 사과이어야만 했을까요?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 추앙받는 프랑스의 세잔은 그 많은 과일 중 왜 유독 사과만을 열심히 그려댔을까요?



이렇게 문화, 예술, 과학, 문학 등 모든 역사상 스토리의 전환점엔 이 문제의 과일, 사과가 있었습니다. 철학 분야의 사과 소유자위에서 언급한 네덜란드의 스피노자니다. 철학을 신학에서 구출해내 철학의 그리스도라 불리는 그였습니다. 그러다 20세기 어느 날 실용주의가 융성한 미국의 어떤 한 남자가 사과를 한입 베어 물다가 스마트한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종이와 펜이 없어도 글 쓰고 게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사과는 말 그대로 이름도 애플입니다.


그런데 사과는 위와 같이 서양사 안에서만 각광받는 과일입니다. 흔히 지구를 바꾼 과일이라 부르지만 실은 그 절반인 서양을  바꾼 과일이라는 것이죠. 그간 세계사의 헤게모니를 서구 사회가 쥐었기에 전체 역사로 포장된 것이겠지요. 열거했듯 사과 스토리의 주인공들은 모두 서구를 대표하는 들의 위인입니다. 신기하게도 각 국가마다 분야마다 1인 1표, 아니 1국가 1사과를 행사하고 있네요.


그러면 지구의 또 절반인 동양을 대표하는 과일은 무엇일까요? 동양의 역사와 신 속에서 사과는 언뜻 떠오르지 않습니다. 대신 떠오르는 과일.. 복숭아 아닐까요? 복숭아나무가 우거진 이상향인 무릉도원을 비롯하여 3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이 먹었다는 불로장생의 천도가 있으니 말입니다. 고대 중국에서 복숭아는 옥황상제의 주식이고, 서유기의 손오공이 훔쳐먹기도 한 과일입니다.


우리나라엔 안평대군이 꿈속에 보았다는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복사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습니다. 또한 복숭아꽃과 열매는 동양에선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동양 민담이나 신화에 과일이 등장했다 하면 그것은 복숭아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매우 신비스러운 과일로 말입니다. 반면에 서양의 사과는 위에서 보듯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한 전환성의 오브제로 주로 등장했습니다.


몽유도원도, 안견, 1447


사과는 우리 사회에도 왕왕 등장합니다. 서양처럼 미인을 상징하기도 하지요. 여아들은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를 부르며 사과와 닮기를 희망하며 자랍니다. 요즘은 많이 정화되었지만 한때 사과박스하면 부정한 뇌물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역사상 사과는 혁신과 전환의 오브제로 드라마틱하게 등장했는데 이후 미래 인류를 바꿀 모멘텀엔 또 어떤 사과가 등장할지 모르겠습니다. 환경문제, 신자원, 모빌리티, 블록체인, 메타버스, 우주개척 등의 새로운 화두에서 역사를 전환시킬 새로운 사과가 등장할까요?

      

그때가 언제이든 타작마당에 심어진 사과나무는 쉬지 않고 계속 아름드리 성장할 것입니다. 그 미래의 사과를 타작하기 위해 그 마당의 주인은 오늘도 스피노자처럼 열심히 사과나무를 가꾸고 있으니까요. 아참, 타작마당은 통섭형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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