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일상을 눈에 띄게 확장시켰습니다.
이제 우리는 버튼 하나로 연결되고, 손끝 움직임만으로 거대한 정보를 다룰 수 있습니다.
편리해진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생각하는 시간 없이도 자유롭게 세상을 헤엄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기술이 우리를 이렇게 멀리 데려다 놓은 지금,
'기술과 인간 사이'를 걷는다는 건 대체 어떤 것일까?
그리고, 과연 어디까지가 '나'일까?
'초연결성'이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구호를 지나
이제는 연결주의, 인공지능이 중심이 된 시대가 열렸습니다.
우리는 한 번의 로그인으로 수십 개의 서비스를 넘나들며
몇 번의 터치로 하루를 예약하고, 기록하고, 설계합니다.
인공지능은 나 대신 더 많은 것들을 대신 예측하고, 심지어 결정하기도 합니다.
기술은 우리의 손을 거들 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에도 점점 깊게 개입하고 있습니다.
내 손과 발이 편리해진 만큼
생각할 필요 없이 알아서 움직여주는 서비스도 늘어났습니다.
예측 검색, 자동 번역, 추천 알고리즘, 자동 결제, 스마트 알림까지.
처음에는 편리함으로 다가온 기능들이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사고하는 시간을 빼앗아가기도 합니다.
가령,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장소를 검색할 때
내가 고심하기도 전에 지도 앱이 "이곳이 가장 빠른 경로"라고 알려줍니다.
스케줄을 짤 때도, 나보다 먼저 캘린더가 "추천 시간"을 띄워줍니다.
그럴 때마다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이건 내가 선택한 걸까, 아니면 시스템이 선택한 걸까?
생각은 점점 압축되고,
행동은 점점 더 자동화됩니다.
우리는 '생각했다'고 믿지만,
실은 제시된 옵션 안에서 가장 편한 경로를 '고른' 것에 불과할 때도 많았을 것입니다.
기술이 행위를 대신해주는 시대.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되는 것.
사고의 주체는 여전히 '나'입니다.
자동 추천이 이끄는 대로 선택했더라도,
결정의 순간에 책임지는 것은 결국 사용자 자신입니다.
이 당연한 사실은
기술이 섬세해질수록 더 자주 잊힙니다.
"알아서 최적화해주겠지."
"추천 경로니까 이게 맞겠지."
"알고리즘이 나보다 똑똑하겠지."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판단의 주도권을 내려놓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그럴수록
"내 사고의 주체는 누구인가?"
"내 선택의 책임은 어디까지 나에게 남아 있는가?"
를 계속해서 물어야 합니다.
기술의 진화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상황과 시스템은 점점 더 빠르게 변합니다.
어제의 기준이 오늘은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나'의 경계도 고정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가 나인가?"라는 질문은,
한 번 던지고 끝나는 질문이 아닙니다.
가변성으로 구성된 현시대 속에서
매 순간, 매 선택 앞에서 다시 묻고 확인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이 꾸준한 탐색이야말로
기술 속 인간성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술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고, 우리는 이미 그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편리해진 만큼 인간성을 의식적으로 지켜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편리한 흐름에 무심히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질문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이 선택은 정말 '나'의 것인가?
이 흐름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
이 결과를 나는 정말 책임질 수 있는가?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기술을 만들고 운용하는 주체들의 윤리적 책임감일 것입니다.
기술이 인간을 대신해 판단하고 행동할수록,
그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들의 깊은 사유와 책임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기능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간을 위한 기술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존엄하게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