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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캣 Dec 14. 2018

육식조선 肉食朝鮮 03

육면肉緬

     고소하면서도 풍미 가득한 육면은 뜨끈한 국물과 쫀득한 소고기의 조합이 일품이다. 고기는 기름기가 적당히 있는 부위로 준비, 반숙해서 국수같이 가늘게 썰어 밀가루를 고르게 묻힌다. 미리 만들어 둔 된장국에 넣어 여러 번 솟구쳐 끓어오르면 먹는다.   
   


유백증의 집은 최정보의 기억에 남아있던 고기 잔치를 질펀하게 벌이던 그 집이 더 이상 아니었다. 최정보를 맞는 유백증은 지난번의 단아함과 꼬장함은 사라진, 그저 초라하고 궁색하고 슬픔에 지친 노인네의 얼굴로 툇마루 한구석에 앉아있었다. 변한 건 집주인뿐만이 아니었다. 한양에서 제일로 꽉 차 보이던 그의 알짜배기 집에는 더 이상 화롯불도, 고기 익는 냄새 하나 없었고 수를 셀 수도 없이 많았던 부지런한 시종들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작은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이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였던 거골장의 기세와 의욕을 깡그리 앗아간 것이리라. 그는 더 이상 우황제도, 조선 제일의 알부자도 아닌 그저 아들을 잃은 불쌍한 아비일 뿐이었다.  

     

“습*을 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상해 있었다는군. 누군가 치밀하게 계획한 후 아주 잔인하게 죽인 듯 보이네. 무슨 원한이 있었길래...”   


*시신을 씻긴 후 수의를 입히는 장례 절차

  

이번에도 어김없이 먼저 와 있던 김홍중이 귀띔해 주었다. 김홍중은 사역원* 제조**라는 자신의 직분보다는 사건과 사고를 쫓고 기록하는 사적인 일에 더 열심이었다. 성균관 시절부터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성의 이곳저곳을 뒤지느라 바쁘게 뛰어다니던 그였다. 하지만 결국 그가 택한 것이 문서를 번역하고 통역관을 교육시키는 사역원이었고 최정보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관직***이라는 것이 일단 선택을 하면 평생 동안 지속되기 마련인데 어찌 그는 자신의 생겨먹은 근본과는 다른 길을 택한 것인지. 하지만 의문은 곧 풀렸다. 중국과 왜는 물론, 몽골과 위구르 등 다양한 주변 민족의 융화정책이 실시되면서 사역원의 위치가 점차 상승하는 분위기였고, ‘글은 힘을 갖기 위해 읽는 것’이라는 묘한 공식을 가진 그에게 사역원은 곧 권력 중심부로 향하는 초석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굳이 종 5품 직인 판관 자리를 마다하고 종 6품인 주부직에 여태껏 머물러 있었는데, 그 이유야말로 현장에 나갈 일 없는 우두머리보다는 이곳저곳을 제 집처럼 들락거리는 현장직을 택해 알차게 실속을 챙기겠다는 속셈이었다.      

  

*司譯院 조선시대 외국어의 번역과 통역 및 교육을 관장하였던 곳
**提調 종 2품의 품계로 조선시대 각 관청을 관리감독했었다
***館職 조선 시대에, 홍문관 부제학 이하의 벼슬아치와 성균관 대사성 이하의 벼슬아치를 통틀어 이르던 말    


“사고사가 아니었다는 건가? 그런데 어찌 한성부엔 보고가 되지 않은 겐가?”

“이 사람아,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난 사역원 주부지, 한성부 판관이 아닐세.”

“헛소리 말고 읊으시게. 어찌 된 연유인지.”

“그것이, 의식도 없고 도저히 살아 있을 수가 없는 몸인데. 이리 좀 가까이 와 보게.”

“?”     


김홍중은 잠시 주위를 살피곤 최정 보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온기가 남아 있었다는 거야.”

“온기? 그렇다면 혈류가 멈추질 않았다?”

“그렇지. 그러니 이미 처참한 지경이었는데도 유백증 저 자가 온갖 용한 의원들은 죄다 불러다가...” 

    

젊은 생명력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혹은, 치명적이지만 죽지 않을 정도로만 해했다? 그렇다면 유황은 자신의 살이 저미는 모든 고통을 고스란히 느꼈다는 건가.   

    

“의원이 절명을 확인했다던가?”

“그렇겠지. 안 그랬으면 어찌 발인을 할 수 있겠는가. 필시 아비의 착각이었을 것이야. 온기가 남아 있다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백 편은 안 돼도 오륙십 번은 족히 넘게 저몄다는데.”  

“약관을 갓 넘은 나이에 원한 질 일이 무어라고...”  

“모르는 소리 말게. 평소 좀 거들먹거렸어야지. 거골장 자식 주제에.”   

   

온몸을 한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이 무엇이든 사람을 저렇게, 그것도 채 죽지 않은 사람을 육고기처럼 만들다니. 그도 그랬지만, 자식을 쫓아 곧이라도 따라 죽을 듯 보이는 아비의 면전에서, ‘거골장 자식 주제’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김홍중도 예사로 보이지가 않았다. 그의 얼굴엔 소고기 구이를 접대받던 그 날의 감사한 표정은 이미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다. 비아냥 혹은 당연시. 역시나 유백증의 특별 선물은 갖지 못한 자가 바치는 당연한 공물일 뿐이었던 건가.  

    

“유황은 어디서 발견했다든가?”

“그게 저 유백증이 미칠 만도 한 게, 유백증네 현방에서 찾았다는 거지. 너덜거리는 게 매달려 있더라는 거지. 그걸 노인네가 직접 본 모양이야. 그 후론 말도 않고 저러고 있다는 군. 올 난로회는 아무래도 물 건너 간 듯 허이. 옳거니! 저기 자리가 났네. 일단 앉자구. 혹시 아나, 고기찬이 좀 나올지...”     


원한이라면 참으로 깊고 무서운 것일 테고, 원한이 아니라면 인간이 아닌 자의 소행일 터였다. 그렇다면 누가? 최정보는 김홍중을 뒤에 남긴 채 유백증이 있는 안채로 향했다. 마침 대렴*이 막 시작되려는지 안채엔 검은 옷을 입은 일꾼 서넛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최정보가 가까이 갔는데도 유백증은 넋이 나갔는지 고개도 들지 않았다. 혼례를 치르지도 않은 아들이니, 유백증이 상주일 터였다. 그 심정이란 건 굳이 물을 필요도 없는지라 최정보는 가만히 마루 구석진 곳에 서서 염포에 싸여 묶여 있는 시신을 바라보았다.  


*大斂 죽은 지 사흘 째 되는 날 행하는 장례절차로 시신을 관에 넣는 행위들이 포함된다

    

유황은 평온하고 깨끗했다. 너덜너덜할 정도로 훼손된 시체로는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얼굴엔 손도 안 댔다. 그 어떤 고통의 흔적도 없다. 흠...’

심지어 그 얼굴은 어찌 보면 웃는 듯, 아니 그렇진 않더라도 살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라곤 없었다. 그렇다면, 숨을 거둘 당시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그런데 몸은 채 식지 않았다?’

혹은 약물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최정보는 약물 쪽으로 심증을 굳혔다. 유황의 얼굴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표정은 편안함을 넘어선 일종의 황홀경에 근접한 것이었다.      

‘유황의 얼굴은 불만족과 허무함으로 가득했었다. 그런 얼굴에서 저런 표정이 나올 순 없다. 필시 그에게 약물을 먹여 혼절하게 한 다음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그것도 굳이 유백증의 현방으로 끌고 가서⋯ 그렇다면? 범인은 유백증에게 원한을 가졌거나 혹은 유백증이 가진 영향력을 시기하는 자들?’

     

최정보는 유황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유황은 거골장 유백증의 아들이었을 뿐, 한성부와는 스칠 인연도 없는 삶을 살았으니까. 그건 최정보뿐만이 아니라 유백증의 집에서 최상의 난로회를 즐긴 누구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유백증이야 알아두면 손해 볼 것 없으니 대충 귀에 걸어두는 것이었지만 그의 아들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권력층에게 고기를 바치는 거골장의 아들? 그건 전혀 관심 밖이었던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유황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저잣거리를 두리번거리고, 대낮에도 술 퍼 마시고 여기저기서 주정하다 군졸들에게 잡히기 일쑤였으며, 그나마도 아니면 여자들하고나 놀아나는 삼류 건달일 뿐이었다. 영양가 있는 일이라곤 일절 하지 않고 책 한 권, 글 한 자 들여다보지 않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양인 건달. 그에게 부친의 재산이 없었다면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물려받은 재산이란 종종 그렇게 후손들을 나약하고 타락하게 만든다는 것을, 유백증은 알고 있었을까? 더불어 그 재산으로 인해 자식이 갈기갈기 찢겨 죽는 참혹한 범죄가 일어날 거라는 것을, 그는 생각이나 했을까?   

   

“유황 어렸을 때 이름이 길동이었다네. 吉童. 돈 많은 아비 만나 양반보다 편하게 사는 유백증네 둘째 아들은 누가 보기에도 운 좋은 아이, 길동이었던 것이지.”  


황의 형, 무가 죽었을 때 유백증의 곡간은 한성의 여느 양반가 못지않은 알짜배기 재산으로 채워진 상태였다. 유백증은 큰 아들을 잃은 후 자책감과 슬픔으로 일에 더욱 매진했고, 작은 아들에게 절대로 거골장 일을 시키지 않았다. 대신 그는 황을 양반가의 자제처럼 키우기 위해 큰 아들과는 다른 공을 쏟아부었었다. 아버지의 그런 변심 덕분에 황은 언제나 좋은 옷 입고, 맛난 것만 먹으며, 명절이면 가난한 동네 아이들에게 공짜로 떡이며 먹을거리를 뿌리며 대장처럼 군림할 수 있었다. 유백증에게도 작은 아들은 걱정스러웠겠지만, 큰 아들을 잃으면서 팍삭 늙어버린 그에게는 황을 무처럼 다룰 그 어떤 기력도 남아있질 않았다.   

   

황이 길동이라 불리는 데 그 누구도 이견을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돈 많은 아버지에, 아무도 참견하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 과거시험에 대한 압박도 없으니 공부할 필요도 없고, 하는 일이라곤 무위도식 밖에 없으니. 굶주림과 중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 그는 하늘이 내린 복을 껴안고 태어난 길동이가 확실했던 것이다. 

     

“그러길래 어렸을 때부터 엄청나니 복이 있다 했잖어.”

“그라게 말이여. 저렇게 갑자기 일을 당할지 누가 알았겄어.”

“하이고, 잘 먹고 잘 살다가 저렇게 죽느니 그냥 매일 풀죽 먹고사는 게 낫겠네.”

“하고 유백증 좀 보게. 큰 아들에 작은 아들꺼정⋯ 쯔쯔. 소 잡고 고기 끊어 악착같이 돈 벌면 뭐 하나. 손주 놈 한 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멀쩡한 아들을 몽땅 잃었는데⋯ 사람 팔자 참 뭐라 할 거 아녀.”

     

낮은 담장 너머로 아낙들의 목소리가 넘어 들어왔다. 매일 고기만 먹던 길동이는 이제 베로 싸여 꽁꽁 묶인 채 잠시 후면 관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를 위해 울어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아버지는 넋을 잃고, 유황의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의 여인은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초점 잃은 눈으로 멀거니 죽은 아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도 유황을 누가 죽였는지, 그가 왜 죽었는지는 관심 없어 보였다. 하지만 최정보가 볼 때 이 사건은 명백한 살인이었고 그의 일은 범인을 잡는 것이었다. 제 아무리 칼로 산 사람을 난자하는 무시무시한 범죄자라 해도 말이다.      


“홍중, 자네 누가 유황을 발견했는지 알고 있나?”

“저기, 저 예쁘장한 계집종 보이지? 그 아이라네.”     


술잔을 들이켜던 김홍중이 손가락 들어 안채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조문객도 없고 일꾼 서넛만 오가는지라 최정보는 ‘예쁘장한 계집종’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열일곱이나 여덟 정도로 보이는 처녀 아이였다.      

고운 피부에 또롱또롱한 눈빛, 허름한 옷에 장식 없이 땋아 내린 긴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우두커니 서 있는 그녀는 조금 이상했다. 옷차림은 계집종인데 행색이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게 마치 급하게 다른 이의 옷을 얻어 입기라도 한 듯 겉돌았다.    

       

“저기, 저 규수 말인가?”

“규수는 무슨, 잡일 도우는 아이라던데.”    

 

이상했다. 얼굴은 희고 입술은 붉으며 눈썹은 숱이 많고 짙었다. 일자로 곧게 다문 입술 때문인지, 나이보다 성숙해 보이는 그녀는 미동도 않고  가느다란 몸을 부엌 입구에 기대 있었다. 잠시 말없이 그쪽을 바라보던 최정보의 시선은 그녀의 허리쯤에서 멈췄다. 검고 윤기 나는 머리는 잘 땋아져 허리 아래까지 늘어져 있었다. 양인은 물론 웬만한 양반들도 엄두를 못 내는, 손질에 꽤나 공이 드는 머리 차림이었다.   

   

“저 규수, 아니 처녀 아이가 맞나?” 

“그렇다네. 저 아이가 유백증한테 와서는 유황이 현방에 있다고 알려줬다고 그러더구만. 그런데 말이야, 저렇게 곱게 생긴 처녀가 왜 그 야심한 밤에 현방 같은 곳엘 깠을까? 진짜 이상하지 않나? 혹시 고기를 훔치러 간 건 아닐까? 너무 오랫동안 고기를 못 먹어서 미친 건가?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최정보는 김홍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 김홍중의 어쭙잖은 추리를 들을 필요는 없었다. 들어봤자 고기 타령 아니면 다른 이의 험담일 터. 

가까이에서 본 그녀는 얼핏 보았을 때보다 한결 광채가 났다. 긴 속눈썹 사이로 보이는 진하고 깊은 검은 눈동자, 붉은 입술. 그리고 달빛이 머문듯한 투명한 피부까지⋯ 그녀는 마치 제대로 된 화가가 좋은 안료를 사용해 치밀하게 그려낸 미인도 속에서 방금 걸어 나온 모습이었다. 터질 듯 붉은 입술이란⋯ 미색도 대단했지만 긴장한 듯 치맛자락을 꽉 잡고 있는 손가락에 노동의 흔적이라곤 없었다. 

최정보는 천천히 조금 더 다가갔다. 바로 가까이까지 갔는데도 그녀는 움직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잡일을 거들러 온 행색은 아니었다. 얼굴이나 몸가짐이 지체 높은 집안의 규수로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알고 있질 않았다. 그렇다고 슬퍼 보이지도 않은 걸로 봐선 조문객도 아닐 터. 누굴까?      


“한성부 좌윤이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겠느냐.”     


그제야 그녀는 고개를 돌려 최정보를 바라보았다. 정면에서 본 그녀의 깊은 눈에는 슬픔이 아님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길을 잃은 얼굴이다.’    

  

“⋯.”

“네가 유황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고 들었다. 맞는가?”

“⋯.”

“죽은 유황과는 어떤 사이었느냐?”

“⋯.”     


귀머거리인가, 아니면 말을 잃은 걸까. 그녀의 눈은 최정보를 향하고 있는데 그 눈동자는 바로 코앞에 있는 최정보가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다른 세상에 속한 사람 같았다. 사람들은 바삐 오가고, 유황의 모친은 울부짖다 혼절하고, 구경꾼들은 담 밖에서 이리 우르르 저리 우르르 몰려다니고⋯ 그 아수라 속에서 그녀는 자기만의 세상에서 홀로 서서 그 모든 상황을 홀로 지켜보는 절대자 같았다.      


“아이고⋯ 아이고⋯ 황아⋯. 내 새끼⋯. 어미도 데려가라⋯. 너랑 같이 갈란다⋯. 흐흐흑흐흐흑⋯. 이 사람들아⋯ 우리 황이 거기다 넣지 마소. 애가 답답해하지 않소⋯ 흑흑흑⋯.”   

  

미동도 않던 유황의 모친이 갑작스런 오열을 터트린 건 그때였다. 일꾼들이 삼베 뭉치처럼 변한 유황을 막 관에 넣으려던 참이었다. 큰 아들에 이어 작은 아들까지 잡아먹은 어미라고, 돈 독 오른 지아비 제대로 간수도 못했다고 사람들이 얼마나 입방아를 찧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이 황망하고, 저리 죽은 아들이 불쌍하고, 게다가 이런 짓을 한 자들이 무시무시하여 맘껏 울지도 못하였을 어미는 참고 또 참았을 설움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황의 모친이 재취로 시집온 건 아나? 다 늙은 영감하고 뭔 재미가 있었겠나. 아들 하나 보고 살았겠지. 쯔쯔. 저 여인네가 제일로 가엾구먼. 방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는데.”

“슬픔이 컸겠지.”

“아니지, 그래서가 아니라 저 유백증이 꼼짝 말고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라 일렀다 하네. 곡소리가 나는 날엔 다 같이 죽자고 했다더군. 하나, 그게 어디 맘대로 될 일인가.”

“...”     


유황 모친의 갑작스러운 오열은 유백증의 작지 않은 남촌 집을 술렁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시신을 관에 집어넣으려던 일꾼들에게 달려가 매달려 울부짖는 모친으로 인해 입관은 중지되었고, 까맣게 타버린 얼굴의 유백증은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아내를 잡아 끌어내라 역정을 내고 있었다. 그 바람에 담장 너머에 있던 치들까지 무리 지어 우르르 달려 들어와 구경거리를 놓칠세라 자라목들을 하는 바람에 조용히 마무리될 듯 보이던 유황의 삼일장은 마지막 날, 폭죽이라도 터진 듯 요란 시끌벅적해지고 있었다.  

    

“죽지 않았어요⋯. 아직⋯.”     


남의 상갓집에 불구경이라도 나온 듯 다투어 몸을 들이미는 꼴불견 구경꾼들을 향해 혀를 차던 최정보의 귀에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아미* 말씀이 맞아요. 관에 넣으면 안 돼요.”  


*아주머니의 옛말

   

검은 눈동자의 그 처녀 아이였다. 여전히 공허한 눈동자로 말하길, 아직 죽지 않았다?     


“지금, 뭐라 했느냐?”

“죽지. 않았어요.”

“안 죽었다?”

“사향이 필요해요. 진한 걸로”

“사향? 이보아라, 그것이 다 무슨 소리냐?”  

   

시신과 관, 그리고 구경꾼들을 보던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최정보는 하마터면 그녀와 얼굴을 부딪칠 뻔 했다. 하지만 놀란 건 그녀가 아니라 최정보였다. 감히, 한성부 좌윤의 물음엔 미동도 않더니 이젠 그마저도 모자라 꼿꼿이 고개를 들고 최정보를 쳐다보는 그녀의 목소리와 눈에 거짓이라곤 없었다. 

‘험한 일을 겪은 귀한 집안의 여식이 분명하다. 실성이라도 한 것인가.’

하지만, 그녀는 눈에 광기나 실성기는 없었다. 그 눈은 오로지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말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었고 그리고 그건 두 가지였다. 유황이 죽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강한 사향으로 자극을 줘야 한다는 것.      

“나리께서. 유도령을 도와주셔야 합니다.” 

    

麝香引藥氣透達 사향은 뚫고 들어가 통하게 한다 

     

순간 최정보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건 <본초강목>의 한 구절이었다. 

‘만약, 만약에라도 아주 가느다란 숨이 유황에게 붙어있다면... 가장 효과적인 건 사향이다. 사향은 인체의 문을 통하게 해 구멍을 열어 주고 그 기운이 골수까지 파고 들어가는 강력한 약재다.   

  

“사향이라 했느냐.”

“예, 맞습니다. 이곳에 있습니다.”

“알았다.”      


죽은 지 삼일이 지나 이제 관 속으로 들어가려던 시신에게 사향이라니. 하지만 아무리 강한 사향이라도 지금의 유황에게 효과가 있을 수는 없을 터. 하지만 최정보는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서둘러 사람들 쪽으로 향했다. 마치 처녀 아이의 주술에라도 걸린 듯한 자기 자신을 보면서 최정보는 생각에 잠겼다. 

‘막 입관하려는 시신을 두고 죽지 않았다 말한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누구라도 저 정도 상해를 입었다면 제 아무리 강력한 약을 썼다 하더라도 목숨을 지탱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거두절미 사향을 달라 하자. 그다음, 깨워낸다?’ 

물론 사향이 각성제로서의 효능이 있기는 하지만, 실패한다면? 다른 이도 아닌 한성부 좌윤이 상갓집에 가서 시신을 앞에 두고 헛소리를 지껄였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웃음거리가 되는 건 물론이고 자칫 파면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몇 걸음만 더 가면 시신 앞에 다다를 것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최정보의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과 가능성,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꼬리를 물고 닥칠 후폭풍의 상황을 그려보느라 지글지글 소리가 날 정도였다. 이제 두 걸음, 한 걸음.      

‘그래, 해보자! 유황이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해도 기껏해야 거골장의 아들일 뿐이다. 이를 두고 뭐라 할 수는 없다. 만약 살아난다면 유황이 현방에서 겪은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준행이의 죽음에 백정들이 연관된 건 분명하다. 유황은 방법은 다르나 역시 칼을 잘 쓰는 자들에게 당했다. 혹여라도, 사향을 핑계 삼아 가까이에서 유황의 상처를 볼 수만 있다면 그 관계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유황의 모친은 이제 실신 상태였다. 눈은 허옇게 뒤집어지고 몸은 늘어진 게 줄초상의 조짐마저 보였다. 최정보는 사람들을 뚫고 들어가 유백증의 앞에 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노여움과 슬픔이 극에 다다른 유백증은 여기에 한성부 좌윤이 나타나자 그만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유골장. 잠깐만 기다리시게. 황이 어머니는 저쪽으로 모시고. 이래서야 입관인들 제대로 되겠나.”    

 

유백증은 멍하니 최정보를 올려다볼 뿐 별 반응이 없었다. 이미 그의 정신은 몸에서 벗어나 몇 걸음밖에 내팽개쳐진 듯했다. 최정보는 일꾼들에게 실신한 황의 모친을 데려가라 이르고 몸을 구부려 죽은 지 열흘은 돼 보이는 시체 같은 유백증의 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유골장. 집에 사향이 있는가?”

“⋯.”

“독할수록 좋네. 내오게.”

“⋯?” 

    

최정보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흘려 먹었는지 유백증은 한참을 눈만 꿈벅였다. 거골장의 집에 사향이 있을까? 가축 누린내를 쫓기 위해 조금은 둘 만도 한데. 당최 지금 상태의 유백증은 사향은커녕 죽은 이가 아들인지 딸인지도 못 알아볼 듯싶었다. 최정보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누구에게 시키면 좋을까?   

    

“어이, 홍중!”     


급하게 눈에 걸린 김홍중을 불렀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머리를 빼내고 서 있던 김홍중은 잽싸게 최정보에게로 다가왔다.    

  

“사향을 찾아오게. 집 어딘가에 있을 걸세. 가능한 한 빨리.”

“엥? 뭐? 사향?”

“지체할 시각이 없네. 독할수록 좋네. 어서 서두르시게!”  

   

왕의 어명을 받은 암행어사라도 된 듯 신이 난 김홍중이 사라지자 최정보는 유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창백하고 푸른 안색에 거무스름한 입술, 눈 주위에는 흑색의 두터운 띠가 끼어 있었다. 가만히 손가락으로 목옆의 천정 혈을 짚어 보았다.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유황의 얼굴은 죽은 지 사흘이 지난 시신이라기보다는 심한 출혈을 겪은 환자의 얼굴에 가까웠다. 죽을 정도로 고신을 당한 죄인들을 수없이 봐온 최정보였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사지가 잘려나간 이들은 많은 피를 잃은 연유로 안료를 바른 창호지처럼 창백하기 마련이다. 마치 지금, 그의 눈앞에 누워있는 유황의 얼굴처럼 말이다. 반면, 생명이 없는 얼굴은 푸른 창호지보다는 무두질을 마친 가죽처럼 보인다. 생명이 빠져나간 갈색의 육신은 무두질을 기다리는 가죽과 다르지 않다. 죽기 직전까지 다다랐다 할지라도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육신과는 달랐다. 최정보가 한 자 정도를 사이에 두고 내려다보고 있는 유황의 얼굴은 아무리 봐도 후자에 가까웠다. 즉, 가죽이라기보다는 아직 사람의 얼굴이었다.  

    

“이보게, 정보. 사향, 여기 있네. 유골장 방에 소복하게 쌓여 있더구먼. 그런데, 자네 이 물건이 이 집에 있는 건 어찌 알았나? 거 참, 이것이 바로 사간원 제조 나부랭이와 한성부 좌윤 나리의 차이...”   

   

김홍중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손에 들려있던 사향주머니를 최정보에게 빼앗겼다. 최정보는 마음이 급했다. 유황의 천정혈은 닫혀있었다. 천정혈은 기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이다. 그런 곳이 미동도 않는다는 건 설사 숨이 붙어있다 하더라도 거의 마지막까지 빠져나갔음을 의미했다. 천정혈이 막혔다는 건 누가 봐도 죽었다는 건데⋯ 저 처녀 아이는 어찌 저토록 단호한 걸까? 그렇다. 처녀는 유황이 변을 당하는 그 현장에 있었고, 모든 것을 본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사건의 열쇠 또한 그녀가 가지고 있다. 넋 빠진 그녀의 동공은 극심한 공포를 겪은 이의 눈동자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 그녀가 한 말, 죽지 않았다⋯와 사향이 필요하다는 말을 되풀이한 데는 그녀가 본 무엇인가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는 목격자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일단 해 보는 거다.’     

최정보는 삼베에 쌓인 유황을 잡아 일으켰다. 순간 사람들의 입에서 헉!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제 아무리 한성부 좌윤이라지만, 그래서 모두들 입 틀어막고 숨죽이고 지켜볼 뿐이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했다. 시신을 관에서 일으키다니.      


“구경만 하지 말고 뒤에서 좀 잡게. 어서!”     


최정보는 입을 벌리고 서 있는 김홍중에게 소리를 냅다 질렀다. 김홍중은 화들짝 놀라 최정보가 시키는 대로 반쯤 일으켜 세운 유황을 뒤에서 잡아 받쳐 주었다. 동시에 유황의 머리를 감싸고 있던 각진 두건을 벗겨 내었다. 사향. 그리고 정수리혈. 혹시라도 실낱같은 숨이라도 붙어있다면 단 한 방으로 정수리혈을 열고 그곳으로 사향의 기를 들이밀어야 한다. 그리하면 사향이 유황의 골수까지 파고들어 불 꺼진 그의 몸에 바람을 불어 일으킬 것이었다. 사향⋯ 처녀 아이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분명 일각도 안 되는 시각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 사이에 최정보는 머릿속은 꽤 많은 생각이 드나들었다. 그리고 난 후 최정보는 손과 다리에 힘을 주어 단단하게 했다. 이 방법이 통한다면⋯ 한 목숨이 살아나고 살인사건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최정보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일단은 젊은이의 생명을 다시 살려내는 데 집중하자. 일은 그다음이다. 최정보는 눈을 감은 채 앉아 있는 유황의 아래턱을 왼쪽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오른손은 직각으로 세워 단단하게 기를 불어넣었다.  

    

“악!”   

   

최정보의 오른손이 유황의 정수리를 탁! 하고 세게 내려치는 그 순간. 숨소리조차 내지 않던 구경꾼 중 누군가가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그 바람에 유황의 머리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고 이를 보던 구경꾼들 중에선 도망을 치는 자도 있었다. 최정보는 재빨리 사향주머니를 열어 유황의 코에 깊숙이 갖다 대었다. 그 냄새가 어찌나 독한지 최정보의 눈앞이 심하게 흔들렸다. 이다지 독한 사향이 필요할 정도로 유백증은 피비린내에 시달린 건가. 순간 최정보는 거골장 유백증의 삶의 한 조각을 훔쳐본 기분이 들었다. 평생을 새카맣게 타들어가도록 사향 냄새를 맡으며 고기를 팔아온, 순식간에 아들을 잃고 넋이 나가 이제 가만히 구석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얼굴 까만 노인네를.      


“나리. 우리 황이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제게 있습니다⋯.”     


유백증의 입에서 들릴 듯 말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분명 최종보가 죽은 자식에게 엄한 짓이라도 하려는 줄 알았을 터. 하지만 자식의 마지막이나마 조용히 보내고픈 늙은 아비의 목소리가 어찌나 작고 힘이 없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최정보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유황의 변화를 살피느라 눈 돌릴 겨를조차 없어 그에게 아니라고, 마지막 시도를 해보는 거라 말할 겨를조차 없었다.

‘이보게, 유골장. 난 유황을 살리려는 것이네. 그래야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게 아니겠나.’ 

하지만 유황에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미친 짓이었나.’

유황은 죽은 것이 확실해 보였다. 이리도 독한 사향을 콧구멍에 아예 쑤셔 박았는데도 미동조차 없으니. 최정보는 순간 창백한 유황의 얼굴이 준행의 눈 감은 얼굴과 몹시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유황과 준행은 모두 몸에서 많은 피를 흘린 시신들. 그 이유 때문일까? 아니면 혹 다른 연관성이라도?   

  

“아, 악!”     


누군가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에 최정보는 흠칫 정신을 차렸다. 한 순간, 눈 한 번 깜박일 시각 동안 준행을 생각하느라 유황의 얼굴을 잠시 놓쳤다. 그리고 비명은 그 사이에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일까? 최정보는 급히 유황의 얼굴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마치 그렇게라도 멈춰진 유황의 숨통을 트일 수 있게 하려는 듯.   

    

“귀⋯귀신이다!”

“시체가 움직였다!”

“누, 눈이⋯ 움직이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외침이 점점 일어나면서 과연 최정보의 눈에도 유황의 눈꺼풀이 조금 움직인 듯 보였다. 하지만 보일 듯 말 듯 미세한 움직임인지, 착시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의 입에선 벌써 갖은 추측과 희망이 만들어낸 유언비어가 만들어져 나오는 걸 보면서 최정보는 새삼 오늘 이후 이 일로 인해 퍼져나갈 말과 소문들에 둘러싸일 자신을 생각하며 씁쓸해졌다. 안 그래도 역병에, 잇단 살인사건에⋯ 포악한 성품을 지닌 한성부 판윤 이상덕이 이번 사건을 두고 가만있을 리 없었다. 젠장.     

 

그 때였다. 세상의 온갖 추악함과 잔인함, 기괴한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하며 살아온 최정보가, 그래서 무서울 것도 놀랄 일도 없는 그가 기절초풍하며 뒤로 벌러덩 자빠진 건. 그 자신도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진정 생각지도 못했었기에.      


“아버지⋯ 고기⋯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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