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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캣 Dec 27. 2018

육식조선 肉食朝鮮 04

薯蕷湯法서여탕법

     

서여탕 만드는 법은 먼저 기름진 고기를 밤톨 크기로 썰어 뜨거운 솥에 참기름을 두르고 볶는다. 여기에 엿물을 붓고 끓여 익히다가 껍질 벗긴 마를 잘게 썰어
끓는 탕에 넣고 잠시 더 끓인 후 계란을 깨어 넣는다. 
탕을 많이 끓일 때는 계란을 7~8개, 적게 끓일 때는 4~5개가 적당하다.  

    



온몸을 난도 당한 채 죽었던, 아니 죽은 줄 알았던 유백증의 아들 유황이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처음으로 한 말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이 기억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죽었던 아들이 아버지가 잡은 고기가 먹고 싶어 다시 살아났네, 죽은 아들의 코앞에 갓 잡은 신선한 소고기를 들이댔더니 번쩍 눈을 떴네, 아버지 현방에서 죽은 아들이 소 귀신에 씌어 잡혀갔다가 이기고 돌아왔네⋯ 등의 이야기로 각색되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황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떤 것이었든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황은 진정한 ‘길동’이라는 결론이었다. 아무나 죽었다 살아나나? 천에 하나도 그런 일 생기긴 힘들지⋯ 라며 사람들은 황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운 좋은 아이’라고 다시 한번 결론지었지만 정작 유황을 살린 최정보나, 혹은 유황을 맨 처음 발견해 낸 처녀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채 그 둘은 그 사건에서 조금씩 멀어져 잊혀 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날, 유백증의 집에 모였던 사람들은 대부분 신분이 낮은 양민이었고 그런 까닭에 최정보가 누군지 알 도리가 없었다. 유일하게 최정보에 대해 알고 있던 인물은 김홍중이었지만 그는 최정보의 활약보다는 자신이 찾아낸 사향 이야기를 떠벌리는 데 더 열중했기 때문에 양반들 사이에서는 최정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정보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의 관심은 이 이상하고 수상한 사건을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유황이 되살아난 다음 날, 최정보가 다시 유백증의 집에 나타난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귀신이 그것도 떼로 나타난 듯 난리통이었던 유백증의 집은 지난밤의 사건으로 만들어진 무성한 소문의 무게만큼 가벼워지고 홀쭉해져 보였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조금이라도 막아 보려는 듯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늘 열려 있던 대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한성부 좌윤조차 한참을 두드리고 호통을 친 연후에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견고했으니 그간 얼마나 많은 입방아들이 이곳을 다녀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밤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소리 지르던 마당은 텅 비어 있었다. 방문들은 모두 닫혀 있고 일꾼들로 복작거리던 부엌이나 사랑채도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그럴 수밖에.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사흘 만에 되살아났으니 혹여라도 다시 무슨 탈이 날까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갖은 액막음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몸 상태가 온전치도 못한 유황을 위해선 누구라도 외부인이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유백증이 철저하게 봉쇄했을 터였다.      

하지만 철옹성으로 변한 유백증의 집이라 해도 최정보는 곧장 유황이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가 한성부 좌윤이어서라기보다는 황의 목숨을 구한 생명의 은인이기 때문이었다.      


“아니네. 생명의 은인은 내가 아닌 바로 그 처자일세. 그녀가 아니었다면 자네는 지금쯤 작은 아들을 땅 속 깊이 묻었을 거세. 그 아인 어디 있나?”     


놀라우리만치 깨끗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황을 잠깐 보고 난 후 최정보는 온갖 인사치레를 하며 굽신거리는 유백증에게 거두절미하고 그녀가 있는 곳을 물었다. 하지만 유백증은 왠지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했다.    

  

“허허. 자네가 진정 이럴 텐가? 어서 그 아이를 데리고 오게.”     


마지못해 앞장서는 유백증을 따라간 곳은 부엌 옆 창고였다. 어라? 이런 곳에 그 아이를 두었다? 최정보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무식한 거골장이라 할지라도 아들을 구한 은인에게 이럴 수는 없었다. 닫혀있는 창고 문을 한쪽 발로 박차고 문을 열어젖힌 최정보는 너무나 놀라 그만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창고 구석진 곳에 어젯밤의 그 처녀 아이가 죽은 듯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네가 진정 죽고 싶은 것이야? 어찌 무고한 나이 어린 여자를 이리 험악하게? 내 너를 가만 두지 않겠다!”   

  

최정보는 유백증의 목을 움켜쥐고 부르르 떨었다. 뭔가 불길한 예감에 아침부터 서둘러 왔건만. 이건 해도 너무 허지 않은가?      


“나리⋯ 그게⋯ 켁⋯ 제 말 좀⋯.”

“시끄럽다. 빨리 저 아이를 내리지 못할까? 만일 저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내 당장 너를 거꾸로 매달 것이야!”     


그제야 유백증은 일꾼들을 불러 황급히 그녀를 매달았던 줄을 풀어내렸다. 축 늘어진 그녀의 몸이 바닥에 턱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 최정보는 급히 달려가 맥을 짚어 보았다. 다행이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어찌 된 건지 말해 보거라. 아들이 생사를 넘나드는 이 판국에 네가 어찌 감히 다른 생명을 이리도 험악하게 다루는 것이냐? 다른 이의 생명을 홀대하는 이가 어찌 자기 아들의 생명이 무사하길 바랄 수 있는 것이더냐? 내 너를 그리 안 보았건만 오늘에서야 너라는 인간의 얄팍함을 알겠다.”     


잔뜩 화가 치밀어 소리를 지르던 최정보였지만 유백증이 털썩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유백증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았던 것이 성급하고 무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유백증의 태도에는 처녀 아이를 거꾸로 매단 행동에 대한 참회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래. 말해 보거라. 지금 내가 본 것이 무슨 일이더냐?”     


유백증은 어젯밤보다도 더 늙고 지쳐 보였다. 감당하지 못할 일은 무릇 사람의 기를 앗아가 노쇠함을 촉진시키는 게 분명하다고 최정보는 생각했다. 시시각각 진행되는 유백증의 노화와 부활한 아들이라니. 결국 자식은 부모의 목숨을 갉아먹는 존재인가.  

    

“오늘 새벽, 축시 경이었습니다. 의원이 다녀간 직후 황이 다시 깨어나서는 황망한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전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황이 한 말이 무엇이었느냐?”

“황은⋯ 염라대왕을 만나고 왔다고⋯ 그리고.”     


유백증은 고개를 돌려 떨리는 손으로 여전히 실신해 있는 그녀를 가리켰다. 저 떨림은 무엇이지? 두려움? 기진?      

“그리고 저 아이를 거꾸로 매달라고⋯ 죽지 않을 것이니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다시 죽을 것이라고⋯했습니다.”     


염라대왕을 만났다? 자신을 구한 여자를 거꾸로 매달지 않으면 다시 죽을 것이다? 유백증이 차라리 입을 다물지언정 거짓을 말하는 인물은 아니라는 걸 최정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황당한 이야기는 분명 황의 입을 통해 나왔을 것이고 유백증은 아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고.    

  

“사연이야 알겠다만 네 짓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저 아이는 살인사건의 목격자이기도 하다. 서둘러 저 아이를 데려다가 정신이 들도록 하여라. 내 저 아이에게 긴히 물을 것이 있다.”   

  

처녀 아이를 옮기게 한 후 최정보는 다시 황에게 갔다. 그의 몸을 살펴봐야 했다. 족보씨와 현방.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 한가운데 유황이 있다는 생각이 든 건 어젯밤부터였다. 연달아 일어나는 도륙의 사건들이 모두 백정이라는 특정 집단과 결부되어 있다는 건 절대로 우연일 수가 없었다. 사건의 열쇠가 백정들에게 있다는 심증은 이미 굳어진 후였다. 그리고 그 확신은 유황의 몸에 있는 상처들을 살펴봄으로써 더욱 확고해질 것이었다.      


유황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최정보는 조용히 그의 곁으로 다가가 웃옷을 벗겼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다. 유황의 몸에 난 수많은 난도질의 흔적을.      


“이건⋯ 휴⋯ 나쁜 놈들⋯ 사람의 몸을 이렇게 만들다니⋯.”     


능지처사*. 유황의 몸은 말 그대로 수백 번의 칼질로 난도 당한 상태였다. 아물지 않은 상처는 부풀어 오르고 출혈 후 터져 나오는 진액으로 온통 질펀했고 그런 상처가 가슴과 배에만 수십 개였다. 최정보는 떨리는 손으로 유황의 팔과 다리를 살펴보다 급기야는 눈을 감고 말았다. 이 상태로라면 유황은 회복한다 해도 온 몸에 수천의 칼자국을 문신처럼 평생 달고 살아야 할 터였다.     


*陵遲處死 죄인이 고통을 느끼며 서서히 죽어가도록 몸에서 살점을 조금씩 떼어내며 죽이는 형벌

 

유황의 몸을 살펴보던 최정보는 문득 상처에 일정한 문양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상처가 너무 많아 뚜렷하게 보이진 않지만 유황의 복부에는 분명 누군가 일부러 남긴 흔적이 있었다. 한참 동안 유황의 상처를 내려다보던 최정보의 눈에 어느 순간 빛이 났다.  

    

韃      


그건 ‘달’ 자였다. 횟수가 많고 워낙에 난잡한 칼질로 만들어진 터라 보일 듯 말듯한 형상이었지만 오랫동안의 책 읽기를 통해 그 어떤 글자나 문장이든 판독해 내는 능력을 길러낸 최정보의 눈에 보이는 그것은 분명 그 글자였다.  최정보는 급히 유백증을 불러 물었다.    

  

“황을 일으켜 앉힐 수 있겠는가?”

“지금⋯ 말입니까?”

“그렇다네.”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최정보의 단호한 요구에 유백증은 마당에서 일하고 있던 일꾼 두 명을 불렀다. 죽음의 경계에 있는 유황의 상태를 모를 리 없는 그가 이러한 요구를 할 때는 분명 그 어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유백증은 잘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조심해서 천천히 일으키게. 부디.”

“예.”     


다행히 일꾼들은 유백증의 조심성 많고 신중한 주문에 맞춰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유황을 일으켜 세웠다. 일꾼들이 유황의 몸을 건드리고 조금씩 일으킬 때마다 유백증의 얼굴에는 가느다란 경련이 일었다. 쳐다보는 것조차 힘겨운 그의 표정은 일으켜 세워진 유황의 훤히 드러난 등을 보면서 급기야는 가느다란 신음으로 토해내 졌다. 유황의 등, 그곳에도 앞쪽 못지않은 난도의 상처가 있었다.    

  

     


‘음⋯. 역시!’     

유황의 등에 새겨진 것은 ‘단’ 자, 분명 그 글자가 맞았다. 등 쪽에 난 글자를 확인한 최정보는 일꾼들에게 다시 유황을 눕히라는 눈짓을 보냈다.  

    

“등에 난 상처가 덧나지 않게 수시로 바람을 쐬어 주어야 하네. 일각에 한번씩 어김없이 몸을 뒤집어 자세를 바꿔 주어야 할 걸세.”     


韃靼. 달단. 매질할 달자에 잘 매만져 부드럽게 만든 가죽 단자. 무두질의 시작은 가죽을 잘근잘근 때려 자리를 잡는 것이다. 유황을 이렇게 만든 자들은 그의 몸에 이 두 글자를 새겼다. 그 행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유황을 짐승처럼 죽여 가죽을 벗겨낸다는 잔혹함의 표시일까? 글쎄⋯ 굳이 잔혹하게 죽이는 데 이렇게 까지 공을 들여 글자를 새길 필요까지 있었을까? 혹시⋯ 유백증에게 알리는 경고문?      


“처녀 아이에게 내 친히 물어볼 것이 있으니 깨어나면 알려주게. 황이도 각별히 보살피고. 이제부터 두 사람은 중대 살인사건 관련 증인들이니 그 누구도 사사로이 해를 끼치면 국법으로 엄하게 다스릴 것이니 그리 알게. 물론 아비인 자네도 포함되는 말일세.”     


금생의 아들이야 이미 끝나 손도 못될 상황이라 치지만, 준행에 황까지 줄줄이 살인 내지는 살인 미수 사건들이었다. 그것도 백정과 관련된. 어찌 된 세상이 사람 목숨이 이리도 쉽게 왔다 갔다 하는지⋯ 한편에선 농사짓기에도 부족한 소들을 잡아 그 고기로 배를 불리고, 다른 한편에선 소보다도 지독하게 사람을 잡아 난도질을 하니. 눈이라도 내리려는지 잔뜩 찌푸린 하늘을 바라보는 최정보의 얼굴에 초겨울 구름 같은 근심이 서려있었다.  




“달단? 몽골 놈들이 왜? 그것들이 또 뭔 일 친 거야? 안 그래도 내 그놈의 족속들 때문에 머리가 터질 기경이라네. 아, 지난번 보낸 몽학통사*들을 이놈들이 반병신으로 만들어 보냈단 말일세. 자네도 왜 알지 않은가? 통사 이춘발 말일세. 눈이 터지고 얼굴이 정말 잡은 지 사나흘은 지난 돼지 같더라니까? 몽골말 좀 버벅거린다고 글쎄 말에 묶어서 한참을 끌고 다녔다더군. 쳇. 무식한 것들⋯.” 


*몽골족을 대상으로 통역과 번역 업무를 맡아했던 전문 관리 

   

유백증의 집을 나온 최정보가 사역원에 들러 김홍중에게 앞뒤 싹 자르고 ‘달단’이라는 말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김홍중이야말로 ‘달단’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가장 객관적이고 동시에 광범위하게 바라보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단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이리 보면 이런 뜻으로 보이고, 또 저리 보면 좀 전과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마련인 것이 마치 앞모습과 옆모습, 그리고 뒷모습이 서로 다른 괴물과도 같다. 그러니 유황의 몸에 새겨진 글자를 제대로 보려면 이런 김홍중 같은 인물의 시각이 필요했다. 글자 그대로 지독한 복수를 말한 건지, 혹은 몽골족 출신 백정들을 지칭하는 ‘달단’으로서의 의미를 담은 건지. 혹은 두 가지 다 일수도 있었다. 그리고 최정보가 ‘달단’이라는 단 한마디 말을 했을 뿐인데도 예상대로 김홍중의 입에선 그가 생각하고 있는 ‘달단’에 대해 줄줄 우거지를 꿰듯 사연이 미어져 나왔다.

      

사역원의 수장인 제조의 입에서 나온 달단은 과연 그다지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다. 비록 하급이라지만 상대가 조정의 관리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건 그들이 가진 대담함과 무지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기에 잘 보여도 모자랄 몽학 통사에게 몽골말이 좀 서툴다는 이유로 그리 함부로 대했다는 건 조선 조정에 대한 불신 내지는 반감의 정도가 꽤 수위가 높음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홍중. 자네가 생각하기에 달단들이 가진 가장 큰 불만이 뭐라 생각하나?”

“그거야 뭐 당연 거골장들이지. 어차피 이놈이나 저놈이나 소 잡는 건 마찬가진데, 솔직히 좋은 소 잡아 돈 더 버는 건 거골장이지 않은가. 게다가 요즘엔 그나마도 소가 씨가 말라서 달단들이 잡을 소가 없단 말일세. 쯧쯧. 하루에 60두로 꽉 묶어두다 보니 그놈들을 죄다 거골장들이 가져가 버리는 거지. 그러니 거골장만 없으면⋯.”

“소 도축에 대한 이권다툼이군.”

“그렇지.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온 나라가 소 앓이 중이지 않은가. 굽고, 끓이고, 삶고⋯ 난릴세, 난리. 난로회만 하더라도 전국에서 수십 개가 열리고 있다는군. 사백칠십오 년 금육의 시대를 어찌들 견뎠는지 몰라? 이건 어마어마한 시장이야. 천민이건, 상민이건, 양민이건 이 줄만 잘 타면 돈을 긁어모을 수가 있지. 그러니 달단이야 오죽하겠나? 그것들은 돌아갈 땅이 없지 않은가? 죽든 살든 여기서 뭐든 해야 하는데 그나마 입에 풀칠하게 해 주는 도축마저 거골장들이 독식하고 있으니⋯ 근데. 달단은 왜?”   

  

참 빨리도 묻는다. 최정보는 최대한 가볍게 대답했다. 김홍중에게 굳이 유황 사건에 얽힌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존재를 보일 필요는 없다. 이 사건은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치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자칫하면 수많은 유황이 재현될 수도 있는 폭약 같은 사건인 것이다.      


“하하. 내가 몽골 말을 좀 배워볼까 해서 말이네.”

“뭐? 그딴 걸 왜 배우나? 통사를 시키면 그만인걸.”

“통사들이야 다들 엉터리 아닌가. 진짜 몽골어를 좀 배워보고 싶네. 괜찮은 달단인을 알면 좀 추천해 주게.”    

 

김홍중은 커다란 눈알을 굴리며 잠시 최정보의 진심을 알기 위한 탐색전을 펼쳤다. 아무렴. 뭐든 그냥 넘어갈 인물이 아니지. 최정보는 태연자약하게 마침 김홍중의 서안* 위에 있던 몽골어 문서를 뒤적이며 딴청을 부렸다. 김홍중은 그런 최정보의 얼굴 바로 앞 까지 코를 들이밀어 냄새를 킁킁 맡았다. 


*書案 책상   

  

“음⋯ 뭔 냄새가 나긴 나는데⋯ 하긴, 내가 자네의 그 음흉한 속을 어찌 들여다볼 수가 있겠는가. 됐네 됐어. 나중에 맘이 변하면 좀 일러주기나 하게. 알잖은가. 난 궁금한 게 있으면 잠도 못 이루는 걸.”

“하하. 알았네. 알았어.”

“어디보자⋯ 그래. 이 녀석이 좋겠구먼. 설렁거라고 달단 두목 비안정의 아들일세. 꽤 영민하고 눈치가 빨라 다루기도 편한 아이네. 내 몽학통사들에게 일러 설렁거를 자네에게 보내라 이르겠네.” 

“아니네. 내가 가겠네. 위치만 가르쳐 주시게.”  

   

준행과 유황의 범인이 달단과 연결된다는 막연한 생각은 김홍중을 만나고 사역원을 나오면서 확신으로 굳어졌다. 조선 백정 중에 열네 살 먹은 사내아이를 죽인 후 발가벗겨 독에 넣어 버리는 자는 없을 것이다. 제 아무리 의식 같은 것에 연루된 살인이라 할지라도 조선의 풍속 중에 죽은 자를 발가벗기는 경우는 없었다. 게다가 독이라니. 옹관묘 풍속은 조선이 아닌 북방의 것이다. 모든 정황들이 두 사건이 달단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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