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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캣 Nov 29. 2018

육식조선 肉食朝鮮 01

갑회甲緬

갑회는 이렇게 만든다. 먼저 기름기 없는 연한 쇠고기의 살과 양, 천엽, 콩팥 등 각종 부위를 얇게 저며 물에 담가 핏기를 빼고 가늘게 채 썬다. 파·마늘을 다져 산초가루·깨소금·기름·꿀 등을 섞어 잘 주물러 재고 잣가루를 많이 섞는다. 
초고추장은 꿀을 섞어 만드는데 여기에 잘 구운 고기를 찍어 먹는다

         



오전부터 불기 시작하던 가을바람은 오후가 되면서 제법 따가워졌다. 충분히 타오르지 못하는 늦가을의 해가 흐릿하게 하늘이 떠있다가 슬그머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면 어스름이 막 내려앉은 길가에 늘어선 주막들은 서둘러 등을 켜고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이글이글 불타는 아궁이 속으로 연이어 장작이 들어가고, 커다란 무쇠 솥에선 물 끓는 소리가 보글보글 들렸다. 불 때는 연기가 지붕 위로 폴폴 올라올 즈음이면 이 삭막한 골목은 순식간에 밥 짓는 냄새로 가득 찼다. 그리고 이제 곧 가난한 자들의 저녁 만찬이 시작될 것이었다.       

하루에도 수 백 마리의 소들이 살아서 걸어 들어와 고기로 변해 나가는 그곳, 한양 우시장은 이 맘 때쯤이면 어김없이 축축하고 비릿하게 변해 있었다. 공포와 피로감을 이기지 못해 뿜어져 나오는 가축들의 입김과 덩치 큰 소들의 마지막 사투를 오롯이 몸으로 겪어내야 하는 소몰이꾼들의 거친 입김, 그리고 그들에게 소 값을 주고 소를 사들이는 거골장들의 돈 냄새 가득한 입김이 섞여 있는 그곳. 우시장의 골목은 이렇듯 시작부터 끝까지 질펀했다.      

이제 곧 토수 막*에서 쏟아져 나온 백정들로 골목은 부산해질 것이었다. 아직도 뜨거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의 그 어떤 부위와 창자와 간⋯ 온갖 부속물들은 하루를 도살에 바친 그들에게 주어지는 삯이었다. 누군가를 죽여서 얻어낸 피 흐르는 살덩이와 내장, 그리고 뼈. 그들은 그것을 주막에 주고 돈으로 바꿨다. 그리고 주막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싱싱한 재료들로 입 맛 돋우는 소고기 요리를 만들어 냈다. 피 냄새와 땀, 그리고 살육의 광기로 하루를 보낸 그들에게 지금 꼭 필요한 건 걸쭉한 탁주 한 동이. 그렇게 주막은 고기를 찾는 이들과 술을 찾는 이들로 가득 차고 이 골목의 활기찬 밤은 늦도록 이어졌다.    


*도살장의 옛 말

  

야심한 시각. 낮 동안의 살육으로 잔뜩 달궈졌다가 서서히 식어가고 있는 골목을 천천히 걸어오는 젊은 사내가 보였다. 필사적으로 대항하는 소를 단 번에 때려잡는 근육질의 직업, 백정으로는 보이지 않는 호리호리한 몸집에 중키인 그는 옷차림부터가 영 그곳과는 어울리지가 않았다. 비단이나 명주옷은 아니지만 녹두 색에 짙은 청록을 배색한 그의 옷차림은 한양 저잣거리에서도 단연 돋보일 화사한 복장을 한 그는 누구일까? 테가 좁은 갓을 쓴 것으로 보아 양반은 아니지만 여느 양반 못지않은 화사한 옷차림에 당당한 걸음걸이로 이 시각, 이곳에 나타난 그는? 

     

“어이, 황! 이쪽이야, 이쪽!!”     


그를 반갑게 맞는 건, 초라한 행색의 젊은 남자였다. 그를 황이라 막 부르는 걸로 그 또한 양반은 아닌 듯 보이나 가을 저녁 바람에도 힘없이 너덜거리는 그의 겉옷으로 봐선 그에겐 이 사회에서 발휘할 어떤 힘도 없어 보였다.  반갑게 맞는 그와는 달리 황이라 불리는 자는 못 마땅한 표정을 가득 얼굴에 담고 천천히 남자에게 다가갔다.      

“어여 앉어. 금방 탕이 나올 거야.”  

   

천천히 자리에 앉는 황이라는 남자의 얼굴엔 그다지 앉고 싶은 마음이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어서 빨리 이 비린내 나는 곳을 뜨고 싶은 것 같았다. 남자가 내미는 술잔을 받아 건성으로 한 모금 마시곤 툭 내려놓는 그의 손가락에서 귀찮음과 건방이 가득 묻어 나왔다.  

    

“용건이 뭐냐?”    

 

기분 나쁘고 건방진 말투였다. 마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나무라는 투? 술잔을 내미는 사내의 입술에 가느다란 경련이 일었다. 하지만 그 정도 무시를 당했다고 술상을 엎을 만큼 호락호락한 세상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아는 그였다. 애비 잘 만난 덕분에 뭣도 아닌 게 세상모르고 까부는 이런 자식한테 본때를 보여줄 때가 올 것이었다. 그러니, 그때까지 참아야 했다.    

  

“흐흐. 왜 이렇게 급해⋯ 자, 한 잔 쭉 들어. 우리 둘이 이렇게 같이 마시는 게 얼마나 오랜만이냐.”     


황은 마지못해 사내가 내미는 잔을 받았다. 마주 앉아 술을 나눠 마시지만 두 사람은 얼핏 주인과 몸종으로 보일만큼 차림새부터 큰 차이가 났다. 황은 너저분한 술친구가 영 맘에 안 드는 눈치였다.      


“그래, 어르신은 잘 계시고?”

“흥. 노인네야 늘 그렇지.”

“여전히 바쁘게 보내시나 봐?”

“암. 이 나라에 고기 처먹겠다는 아가리들이 없어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무진장 잘 지내시겠지.”    

 

황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른 적이 없었다. 그에게 아버지는 그저 나이 많고 바싹 마른 노인네일 뿐이었다. 돈으로 젊은 여자를 사서 쉰이라는 나이에 아들까지 낳은 탐욕스러운 노인네. 아들까지 낳아준 아내를 하녀 부리듯 볶아대는 노인네. 그런 자를 아버지라 부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자식, 보자마자 노인네 얘기다. 재수 없게.      

한편. 젊은 사내의 눈에 보이는 황은 그저 싹수없고 배은망덕한 아들일 뿐이었다. 아버지 돈으로 먹고, 놀고, 싸는 주제에 지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배배 꼬인 심보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인간 말종. 이런 놈들은 그 돈줄이 없어져 배고프고 핏물 벌건 바닥에 내팽개쳐지고 발로 밟혀 내장이 터져봐야 그제야 그 고마움을 알 것이었다. 지가 잘 나 배 터지게 고기 처먹고 때깔 좋은 옷에 몸땡이를 집어넣고 다니는 줄 아는 놈. 황을 쳐다보는 젊은 사내의 눈은 살살 웃고 있지만 뱀의 혀를 감춘 듯 날카롭다. 그런 사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은 젓가락으로 탕을 휘휘 저으며 그저 심드렁하게 술을 들이켤 뿐이었다. 

     

“역병땜에 차질은 없으시고?”

“야, 지랄병 돈다고 고기 안쳐먹던? 인간은 말야, 숨만 쉴 수 있어도 고기를 찾아대는 존재인 거야. 본색이 육식인 동물.”

“흐. 맞다 맞어. 사방이 죽어 나자빠지는 소들인데 여긴 싱싱한 살들로 넘쳐나는 걸 보면 니 말이 맞어. 자, 오랜만인데 한 잔 하자.”

“그러지 뭐. 근데 니가 날 찾은 거니까, 당연 니가 사는 거지?”

“짜식. 아, 알았다 알았어! 조선 제일의 거골장 네 외동 아드님한테 내가 산다, 사!”    

 

그들이 앉아 있는 ‘선 씨네 주막’은 주점 중에서도 가장 붐비는 곳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먹고 있는 탕 덕분이었다. 그날 잡은 소의 싱싱한 내장과 잡고기로 만든 선 씨네 탕은 맛도 뛰어났지만 무엇보다도 푸짐하게 고기를 먹을 수 있어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도살장이 지천이고 사방에 늘어선 창고 가득 소들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지만 그 고기를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선 씨네 탕은 굶주린 백성들에겐 호사 중의 호사였지만 한양에서 가장 큰 현방*을 하는 유백증의 막내아들에겐 입에 맞을 리가 없었다.    


* 조선시대의 쇠고기 판매점. 왕실ㆍ귀족ㆍ관아ㆍ군문에 고기를 공급하였으며 주로 백정 등의 천민이 경영하였다. 조선시대에 있어서 현방 이외의 도살은 사도(私屠)라 하여 금지되었던 만큼, 현방은 비록 평시서(平市署)의 시안(市案)에는 등록되지 않았지만, 거의 시전의 특권을 누리는 상인조직을 이루고 있었다

 

“근데 황아, 우금령*은 왜 내린 거라냐? 지들은 지키지도 않을 거면서.”

“글쎄. 뭐 그런 게 하루 이틀이냐? 하긴 우리 노인네 요즘 현방속** 때문에 미치고 있다. 소 잡는 데 뭔 세금을 그렇게 많이 걷는지.”     



* 육식을 금했던 고려왕조가 멸망하고 조선왕조가 되면서 소고기 수요가 급증하자 나라에서 내린 소고기 금지령이다. 하지만 양반들이 이를 무시하고 대단한 속도로 소고기 탐식에 빠져들면서 전국적으로 소고기의 수요가 크게 부족한 현상을 초래했다

** 懸房贖 : 현방이 소의 도살 판매권이라는 특권을 대가로 매달 삼법사(三法司:형조•한성부•한성부)에 납부해야 했던 세금


뚝배기 가득 담긴 잡고기는 일반인들은 구경하기도 힘든 특등급이었다. 선 씨는 요리 솜씨에 인심까지 넘쳐나 백정들에게 인기가 많은 인물이었다. 이왕이면 값도 잘 쳐주고 맛있는 요리도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 굳이 이곳을 마다하고 다른 주막으로 갈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곳에서 먹을 수 있는 건 그저 부속 물 뿐이었다. 육회니, 가리구이니* 하는 것들은 어디까지나 양반들의 전유물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양인 거골장인 유백증의 아들도 살코기를 실컷 먹지 못한 걸까? 그럴 리가 없겠지만. 젊은 사내는 황에게 탕을 내밀어 권유했다. 그건, 황에게는 비록 쓰레기로 보이는 잡고기일지 몰라도 자신에겐 먹기 위해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는 살점들이었다.   


*갈빗살을 소금과 기름으로 양념해 구워 먹는 요리로 오늘날의 갈비구이와 비슷한 요리   


“그래, 할 말이 뭐야?”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황의 거드름은 다소 풀렸다. 하긴, 유백증의 아들이라지만 그들은 모두 이 사회의 아랫것들이었다. 요행히 부친이 권세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시작한 현방이라는 사업이 잘 풀려 돈은 좀 모았다고는 하나 신분 자체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술이라는 게 일단 뱃속으로 들어가면 몸을 둘러 감았던 허세는 어느 정도 녹아내리게 마련이다. 입은 옷이 얼마나 차이 나든지 간에 두 사람은 어릴 적 친구인 것이다.      


“나 말이야, 니네 아버지 현방 좀 구경하면 안 되겠냐?”

“엥? 그 칙칙한 델 왜?”     


젊은 사내는 술잔을 들어마셨다. 잠깐의 침묵이 만들어 내는 궁금증 유발 기대? 그리고 그의 잔머리는 황을 능가하는 듯 황은 곧 그 수에 말려들었다.      


“왜? 거길 왜 가고 싶은데? 설마 너 고기 먹고 싶어서 그러냐?”

“아, 아니. 뭔 소리야. 그냥⋯ 나도 니네 아버지처럼 돈 많이 벌고 싶어서⋯. 근데 너도 알잖냐. 내가 좀 뭐든 늦는 거. 나이 스물을 한참 지난 이제야 철이 드는 것 같다. 우리 아버지 건강도 예전 같지 않으시고⋯ 돈은 벌어야 하는데 아버지 뒤를 이어 오작인*이나 해서는 입에 풀칠만 겨우 할 뿐이고⋯.”     


*관청에서 시체를 검시하는 직분을 수행하는 비정규직 하급 관리


듣는 둥 마는 둥. 황은 고기엔 손도 대지 않고 술 마시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하긴, 그에게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글을 읽고 과거를 봐야 하는 선비적 부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뼈 빠지게 일해서 하루하루 끼니를 벌어야 할 의무도 없다. 그저 닥치는 대로 먹고, 여자들이랑 뒹굴면서 아버지 돈이나 축내면 그만일 뿐.  

    

“야 황아⋯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     


젊은 사내의 애절한 눈빛에도 불구하고 황은 꿈쩍도 않았다. 젠장. 친구 맞냐? 술 상 확 뒤엎고 싶은 마음이 젊은 사내의 눈알을 뚫고 나올 기세지만. 참는다. 때를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그때’가 아님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난 그 숨 막히도록 가득 찬 고깃덩어리들을 보고 싶은 거야⋯ 그게 다 돈이잖냐. 니네 아버지 고기라면 모두들 아끼지 않고 돈을 내놓잖냐. 이왕에 개처럼 살 인생이라면 난 니네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고⋯.” 

    

그건. 진심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사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밝은 미래이자 꿈은 거골장 유백증이었다. 양반들과 왕족들과의 거래를 튼 엄청난 힘의 소유자. 권세가들에게 이 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소고기를 갖다 바침으로써 유백증이 얻는 대가는 대단한 것이었다. 일반 양인들은 물론 지질한 양반들조차도 꿈도 못 꿀 큰 집에 수많은 하인들, 그리고 10개가 넘는 현방은 곧 그의 권력을 의미했다. 한양에서 매일 도살당하는 소는 대략 200마리. 그 중 절반이 그의 손을 거쳐 배급이 되고 있으니 사람들이 그를 우왕(牛王)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유백증의 힘이란 것이 살아 꿈틀거리는 현재 상황임을 의미했다.      

유백증이 지금의 힘을 얻은 데에는 그가 천민이 아닌 양인 출신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손에 피를 묻힌 채 술을 퍼 마시고 있는 이들 대부분은 천민 출신의 백정이다. 그들은 신라 말부터 시작되어 고려 초까지 이어지는 급격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 이 나라로 유입된 말갈인·거란인들의 후손이다. 고려왕실은 그들에게 양수척(楊水尺)이라는 이름을 주고 정착시켰는데 그들은 그 뒤 화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얼마 전부터는 백정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유목민의 후예라는 민족적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종종 민가를 습격해 재물을 약탈하거나 방화·살인 등을 자행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나쁜 버릇이 그저 동네에서만 횡횡하는 걸로 그치면 다행인데 문제는 이들이 외적과 내통하거나 외적으로 가장해 난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거란병의 향도* 구실을 하거나 왜구로 가장해 노략질을 하기도 하는 등 그들의 작란(作亂)은 멈출 줄 몰랐다.      


*嚮導 길잡이, 가이드 


물론 백정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조정에서는 일부 백정들의 작태가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방패막이로 만든 제도가 현방제였다. 천민이 아닌 양인들 중에서 선발된 이들은 거골장이라 불리며 조정의 지원을 받아 전문 도살업자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예상치 않은 곳에서 시작되었다. 거골장들이 도살만 담당한 게 아니라 도살한 고기의 유통에까지 그 힘이 미쳤다는 거다. 유백증 같은 인물이 전국 소고기 유통의 절반 정도를 거머쥐고 있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를 시사했다.      


양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돈과 힘은 어디까지가 한계인가? 일부 거골장들의 독과점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이들이 이로 인한 힘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것인가? 절대로 거골장처럼 될 수 없는 천민 집단인 백정들에게 거골장들은 어떻게 비칠 것인가?      

이렇듯 거골장들은 비록 돈과 힘을 손에 쥐고는 있었지만 그건 언제 놓아야 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것이었다. 조선은 양반들의 나라였다. 양반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양인이든 천민이든 한껏 이용을 하고 둥둥 띄워 주지만, 이익에 도움이 안 되는 경우엔 가차 없이 내다 버리는 존재. 우금령이 내려진 이 상황에서 거골장들이 자신들의 배를 부르게 해 줄 소고기를 갖다 바친다는 이유로 티끌만큼 자신들의 영역을 내어준 것에 불과했다. 여기에 토종 도살꾼인 백정들이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고 있었으니 거골장들이야말로 위아래로 압박당하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골장은 많은 양인 젊은이들의 꿈과 삶의 목표가 되고 있었다. 배부른 삶이야말로 그들이 도달하고픈 가장 달콤한 낙원이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여름엔 역병으로, 겨울엔 동상으로 손가락 발가락을 잃는 일이 일상인 대다수의 양인들에게 도살당한 소고기가 가득 찬 현방은 그야말로 꿈의 낙원이었다.   

   

“개라⋯ 하긴 우리 노인네가 좀 꼬리를 잘 흔들긴 하지. 그래도 쓰레기나 주워 먹을 니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황은 입으로 막 가져가려던 술잔을 냅다 집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처럼 산다고? 쳇. 지금 저 새끼는 노인네가 개라는 소릴 하는 거야? 미친 새끼.      

황은 몹시 화가 난 듯 획 하늬바람을 일으키고 돌아나갔다.   

   

“말이 친구지 그다지 보고 싶지도 않던 놈이 간만에 술 마시자고 연락을 넣었길래 왔더니만. 뭐? 개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하지만 황이 이렇게 노발하는 건 노인네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니 그건 핑계였다. 어렸을 때부터 황에게 가장 익숙한 건 아버지 욕을 하는 온갖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양반이건, 양민이건, 심지어 천민까지⋯ 그리고 그것이 시샘이건 멸시건 뭐였든 아버지를 향해 퍼부어지는 욕의 이유는 단 하나, 아버지가 소 잡아 돈 버는 도살자라는 것이었다. 그런 욕을 질리도록 들어온 황이 새삼 별로 친하지도 않은 동네 녀석에게 ‘니네 아비는 개다’라는 소릴 들었기로서니. 그건 술상을 뒤엎을 이유가 못되었다.      


“에잇! 어디 가서 한 잔 더해야겠다! 미친놈!!! 우리 늙은이처럼 되고 싶다고? 돼라! 돼! 유백증 나리처럼 되든지 말든지!!!!”     


홧김에 선 씨네 주막을 나와 도성 쪽으로 향하던 황의 머릿속에서 재수 없는 조가 자식이 사라지기도 전에 황은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을 느꼈다.  

    

“이 밤에 소귀신 천지인 거길 왜 가자는 거? 미친⋯ 근데, 왜 이렇게 어지러운 거야?”     


눈앞의 세상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서도 욕지거리만큼은 확실하게 내뱉는 황이지만 그의 걸음은 이미 줄을 놓친 연처럼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골목을 가득 메운 백정들과 비교하자면 그다지 대단한 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술독 꽤나 비우는 실력인 그였던지라 황은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가 몹시 낯설었다.      


“어라? 내가 왜 이러지? 젠장할⋯ 재수 없는 놈이랑 마시면 꼭 이렇다니까⋯ 에잇 오줌이나 누자⋯”    

 

돌담 어딘가에 오줌을 누려고 막 하던 참이었다. 황의 흐릿한 눈에 웬 젊은 여자가 보였다. 단정하게 땋아 내린 머리에 낡은 옷을 입은, 장옷도 두르지 않은 처녀 아이. 웬 여자? 황은 나오던 오줌이 도로 몸속으로 들어갈 정도로 놀랐다. 이 시각에, 이런 곳에, 하필 오줌을 누고 있는데? 뭐야?  

    

급히 아랫도리를 추스르고 다시 바라보니 처녀 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어라? 귀신인가? 하긴 이곳은 처녀 귀신도 도망갈 곳이 아닌가? 음메~ 하는 소귀신이라면 몰라도. 쳇. 헛것을 본 게 분명했다. 오늘 선 씨네선 제대로 익은 술독을 딴 게 분명했다. 아이고 어지러워라. 오줌도 마저 눠야 하는데 말이지⋯.    

 

하지만 저만치 돌담 뒤에선 장옷도 쓰지 않은 처녀 아이가 황을 훔쳐보고 있었다. 하얀 달빛 아래에 서 있는 작은 몸에 여윈 얼굴의 처녀 아이는 도무지 사람으로 보이질 않았다. 설사 누가 처녀 아이를 보더라도 너무나 얇고 창백한 그녀의 존재감은 달빛인가? 하고 지나칠 정도로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숨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황을 훔쳐보고 있으니 모두가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고 있는 그곳에서 그녀의 존재를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황이 쓰러졌다. 흐느적거리던 몸이 갑자기 막대기처럼 땅으로 넘어지는 것으로 보아 술이 원인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처녀는 더욱 숨소리를 죽이고 몸을 낮췄다. 그 후 황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저만치에서 덩치 큰 사내 다섯이 나타났다. 덩치들은 황을 턱 하니 어깨에 메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살육의 기운으로 여전히 축축한 그곳 우시장의 골목 구석진 곳에서 일어난 이를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달빛처럼 얇은 처녀 아이만 없었다면. 

     

“눈 떠, 새꺄.”     


저 멀리 어디선가 목소리가 하나 들렸다.      


“이 새끼, 고기를 많이 처먹어서 그런가? 몸은 좋네!”    

 

아니, 둘인가?      


“그니까. 그거 쎈 거였는데. 다들 뻑뻑 나자빠지는 독에 이 자식은 오래 버텼지. 야, 역시 고기 힘이야!”

“중간에 깨서 지랄하면 어쩌죠?”

“헹! 이 놈이 처먹은 건 막 떼어낸 사향 불알로도 될 듯 말듯한 지독한 거야. 지 살이 저며지는 것도 모르고 그냥 히죽거리다가 가는 거지. 유가 놈은 지 새끼를 산 채로 땅에 묻게 될 거야.”

“아이, 그란디 확 깰 수도 있잖소. 그라문 개좇 되는데”

“에헤! 왜들 이래? 칠일 동안 저 상태로 나자빠져 있을 거야. 걱정 마. 젤 독한 걸로 구하느라 조가 자식이 똥 빠지게 고생했어. 조가 놈이 사길 칠 리는 없잖아. 그 새끼가 제안한 건데.”

“그라문야 뭐 흐흐 우리야 유가 놈 고꾸라질 때꺼정 구경만 하문 되겄제잉”     


둘이 아니었다. 셋이었다.      


“헤헤. 형님, 어떻게 요리하실 껀가요? 어떤 족보를 드릴까? 김정승*을 드릴까? 촛대**를 드릴까? 푸대벌리는*** 무당꽃****도 있습니다요!”

“다 가져와. 질펀하게 저미자!”

“옙!!”     


*백정들이 사용하던 도구. 소의 심줄을 끊는데 주로 사용하던 힘 좋은 칼
** 백정들이 사용하던 날렵한 도끼
*** 소가죽을 벗기는 행위를 말하는 백정 은어
**** 백정들이 사용하던 예리한 칼


그들은 다섯이었다. 몸은 움직이지 않지만 황의 의식은 또렷했다. 단, 문제는 그의 의식이 아주 먼 곳 아련한 곳에서 그를 몸을 보고 있다는 거였다. 몸과 의식이 분리된 상태라고나 할까. 그렇기 때문에 다섯 개의 목소리가 자신의 몸을 이런저런 흉기로 찍어가며 살점을 떼어내도 아무런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럴 수가⋯ 황의 아버지는 늘 고기는 몸과 의식을 하나로 붙여주는 아교 같은 거라 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버지 성화에 못 이기는 척 고기를 좀 먹을 걸 그랬다고 황은 생각했다.   

   

하지만 황은 고기가 싫었다. 남들은 그가 조선에서 제일로 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인 줄 알고 있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고기에 거의 손도 대지 않는 채식남이었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먹으라 하도 성화여서 억지로라도 먹기 위해 노력을 안 해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부글부글 끓일 때 올라오는 누런 거품에선 둥그런 눈을 희멀겋게 뜬 소가 침을 질질 흘리며 끌려가던 게 보였고, 새빨간 육회에는 멱을 딴 암소가 흘리는 처절한 피눈물이 묻어 있는 것 같아 도저히 목구멍으로 삼킬 수가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황은 늘 그런 것들을 보고 자랐다. 죽기 위해 끌려가는 가축들, 아버지의 손에서 나던 비릿한 피 냄새, 그리고 부엌 항아리에 가득 담겨 있는 내장들⋯.     

시각, 미각뿐 아니라 소는 황의 후각마저 질리게 만들었는데, 그건 바로 아교풀 만드는 작업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유난히 가죽에 욕심을 냈다. 사실 황의 집에 고기보다 가죽이 더 많다는 걸 아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현방을 처음 운영하던 그때, 아버지는 몰래 빼돌린 가죽으로 이런저런 물건들을 만들어 내다 팔아 돈을 벌기 시작했다. 국법상 무두질은 거골장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백정들에게 줘야 할 일을 양인인 거골장이 한다는 건 수치이자 착취였지만 아버지는 소를 도살하고, 살코기는 양반과 왕족에게, 그리고 부속물은 주점에 팔아 알뜰히 이익을 챙기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죽까지도 내놓질 않았다. 황의 집에선 늘 가죽 말리는 냄새가 진동했고 그 냄새는 황의 어린 시절 내내 떠나질 않았다.      

특히 소가죽으로 만든 아교는 고급이어서 비싼 값에 팔 수 있었다. 아침마다 황은 아버지의 일꾼들이 외쳐대는 기합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보면 그곳엔 한 겨울에도 웃통을 벗어 붙이고 땀 흘리며 작업을 하는 덩치 큰 사내들로 가득했다. 커다란 통에 물을 채우고 소가죽을 담가 털과 힘줄을 뽑아내는 작업은 어린 황에겐 놀라움이자 구역질 나는 광경이었다. 살과 뼈, 내장을 모두 잃은 소들은 흐물거리는 가죽으로 남아 아직도 음메~ 하고 황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눈처럼 하얀 소금을 뒤집어쓰고 마당 가득 말라져 가는 소가죽은 살아있는 소에서 마지막 남은 생명 한 오라기까지도 닥닥 긁어내는 잔인함으로 보였고, 그로 인해 황에게 아버지는 곧 생명 수탈자로 각인되었다.     

  

‘나⋯ 고기 많이 안 먹었는데. 뭐라고들 하는 거야⋯’  

   

서걱- 서걱-      

낫일까? 칼일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연장의 주인은 하루 한 번씩 정성으로 숫돌로 연장을 연마했음에 분명했다. 황은 자신의 몸이 예리한 연장으로 저며지는 걸 느꼈다. 몸의 일부가 저며지는 그 소리를 직접 듣는다는 것. 그 생각조차 하기 힘든 순간. 황의 의식은 엉뚱한 곳에 가 있었다.     

 

“살깎기*에서 힘 빼면 안 되는 거야. 기름기가 남아 있으면 비싼 값을 받을 수가 없어. 이 사람들, 정신줄 놓지 말고 일 하시게들!”

“넵!!!!”

“우피아교**는 털이랑 힘줄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안 되는 거야⋯ 이봐! 이 서방! 흙 좀 다시 구해와. 흙이 살아있어야 가죽이 삭지⋯ 어이! 물을 자주 바꿔! ⋯ 오늘은 왜 바람이 안 부는 거야? 살살 불어야 아교가 잘 마르지⋯.”     


* 가죽 가공에서, 가죽 밑 조직이나 지방층을 없애기 위하여 털뿌리가 나타날 정도로 깎는 일
** 소가죽으로 만든 아교


사각-사각-사각-     

노인네. 비싼 아교 만드시는구나? 다행이야. 지금 내 몸이 너덜너덜해지고 있거든. 노인네가 만든 우피아교라면 문제없이 잘 붙을 거야. 내가 누구야? 유황! 대궐 나리들도 찾아와 굽신거리는 유백증의 아들이야! 걱정 마! 노인네 아교만 있음 돼⋯ 아⋯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저 놈들이 내 몸에서 피를 몽땅 빼나 봐요⋯ 선짓국이라도 끓이려나⋯ 아⋯ 아⋯ 노인네 말을 잘 들을걸 그랬어⋯. 고기를⋯ 열심히⋯. 먹는⋯ 건데⋯ 근데⋯ 보고 싶네⋯ 우리 노인네⋯ 아⋯버지⋯.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어느 가을날. 한양에서 가장 큰 현방을 하는 유백증의 외아들 유황은 아버지의 현방 구석진 곳에서 그렇게 의식을 잃었다. 무엇이 그의 의식을 빼앗아 갔는지, 누가 그의 몸을 난도질했는지, 왜 그랬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조선 최고의 거골장의 아들인 그가 할 수 있었던 건, 어렸을 때부터 늘 보아왔던 친숙한 기억들에 매달려 의식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 소고기와 가죽과, 우피 아교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자신의 삶에 대한 그런 생각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그를 편안하고 기분 좋게 만들었다.      


거지 같은 것만은 아니었어⋯ 내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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