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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35년 지기 플로리오 씨를 소개합니다.

좋은 만남, 긴 인연

by kaychang 강연아

내가 1986년, 직장생활을 대우재단빌딩에서 하고 있을 때였다.

퇴근 후 집을 가려는데 길가에서 일단의 외국인들이 우왕좌왕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롯데 호텔에 가야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택시를 못 잡아서 남대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난감해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들이 롯데호텔의 발음을 ‘랏하테’로 하였으니, 당시 우리나라의 대부분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여하튼 나는 그들을 서울역 앞 대우 빌딩 쪽으로 인도하여 3대의 택시를 잡아 롯데 호텔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무리 중에서 너무도 감사하다며 나의 명함을 달라고 하던 사람이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는 플로리오 씨다.

그는 생각지도 않게 다음날 연락을 주었으며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식사대접까지 했다. 영어가 의외로 짧았음에도, 영화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전형적인 이태리인처럼 사교적이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이 이태리에서 온 바이어들이며 사업차 한국 출장 중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었는데, 본국으로 되돌아 간지 1주일 뒤에 그는 그림엽서로 - 간단한 영어로 - 안부인사를 보내왔다. 그 뒤의 이어지는 인연은 정말 대단했다. 나의 결혼과 한국에서의 5번의 이사, 미국에서의 약 2년간의 생활, 인도에서 벵갈루루를 거쳐 델리, 구루가운 그리고 다시 델리로 이어지는 여러 번의 이사를 거쳤는데도 끊기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나의 결혼 후 신혼 4개월쯤 플로리오 씨는 한국을 사업차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는 신랑을 동반하였는데- 롯데 호텔 일식당에서였다- 남편은 플로리오 씨를 만나자마자 내가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표 내지 않으려고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나선 나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환한 얼굴로 축하의 말을 건네던 그와 남편은 나를 중간에 두고 좋은 친구가 되었고, 우리들은 모두 행복한 시간을 가졌었다.

과거에는 한참 소식이 뜸하다 싶으면 비싼 국제전화를 하여 놀라게도 했지만, 이제는 서로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받는다. 내가 20대 초에 만났을 때에 그는 40대의 아저씨였으니, 이제는 70대의 할아버지일 테지만 항상 멋지게 인생을 살고 계신 분이라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젊고도 마음씨 좋은 아저씨로 남아있다. 나이를 초월하여 오토바이를 즐기고 스키 타러 겨울이면 북 이탈리아 별장으로, 여름이면 지중해의 프랑스령 별장으로 휴가를 떠나는 분이셨다. 혹은 모리셔스를 자주 가셔서 예쁜 바다가 어우러진 엽서를 자주 보내주셨는데 인도에서 최초의 가족여행을 모리셔스로 잡은 것은 그분 영향이 크다. 보석 같은 섬으로 우리 가족은 바다와 산을 충분히 즐기고 돌아왔었다.

10년 전에는 스카이프(skype)로 연락이 왔었는데 머리숱이 완연히 없어졌지만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 주셨다. 나는 흰머리가 듬성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카메라 설치를 안 했었다... 푸짐한 몸매의 아주머니도 왔다 갔다 하시면서 관심을 보여 주셨다.

언젠가는 버츄얼 갤러리의 웹사이트를 보내면서 내가 좋아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다 들어 있으니 참고하라고 했다. 내가 미술이나 예술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예전에 한번 하기는 했어도 기억해서 챙겨주기란 쉽잖은 일인데... 사소한 일에 감동을 주는 분이다.
http://www.mystudios.com/artgallery/

이태리에서는 무엇보다도 가족 모두가 모여서 즐기는 대가족 제도가 마음에 와 닿는다. 가끔 딸, 사위 등 열댓 명 되는 가족과 바베큐 파티하는 사진도 보내오곤 했었다... 부인과 메주고리 성모님께 다녀왔는데 한글로 쓰여진 책자를 보자 내 생각도 나고 나에게 주고 싶었다면서 우편으로 보내주셨다. 그해에 나도 인도에서 유명한 실크 스카프 두 개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드렸었는데... 이 년 전 가족 합체 여행으로 파티마 성지에서 성모님을 뵈면서 그 생각이 나서 촛불을 켜면서 플로리오 씨네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했다.

매년 12월이 되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지인들에게 안부를 묻고 지난 1년간의 소식을 주고받곤 한다. 작년에는 1월이 되었는데도 플로리오 씨로부터 연락이 없어서 궁금해하던 차, 내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안토니오라고 플로리오의 지인인데 그가 컴퓨터 세팅을 새로 하다가 주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다시 연락을 주던가 아니면 멜 주소를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주었고 마침내 기다리던 연락이 플로리오로부터 도착했다. 살고 계시는 이태리 코모로 놀러 오라고...

아이들도 한국과 핀란드로 떨어져 있는 상황에 남편도 이태리 여행을 가자고 했는데 알고 보니 안토니오는 호텔을 경영한다는 사위였다. 영어가 아무래도 플로리오 씨보다 유창하니 메시지를 대신 전달한 것이었다.

십년전 사진인데 올해 또 보내셨다.ㅎ

올해도 어김없이 12월 초가 되니 제일 먼저 플로리오 씨의 이멜이 도착한다. 장문의 영어로 내 안부와 가족의 안부도 묻는다.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두 아들이 매년 사진을 주고받아서 친숙하신 지 꼭 물어보시고 축복해 주신다. 내년에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여행을 자유로이 할 수 있으려나... 버킷리스트에서 이태리 여행이 울고 있다...

내가 사는 델리는 대도시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개성이 뚜렷하고 이기적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앞으로 얼마큼 더 다양한 사람들과 사귀면서 지낼지 모르겠으나 사람과 사귀고 헤어지는 반복 그 자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 그러나 만남엔 헤어짐이 있고 헤어지면 또 만난다는 기약이 있어 아름답기도 하다.

사람의 사귐에 있어 피부색과 종교, 언어, 나이, 성별 등은 달라도 우정을 나누는 기본은 같다. 잘난 척하는 사람보다는 성실하고 참된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과 가까이하고 싶다. 나도 기왕이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찾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냥 겉돌면서 인사만 하는 사이가 아닌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멀리 떨어져 있어도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해외에 살다 보니, 각양각색의 외국인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는 것을 보고 자극받을 때가 많다. 우리 아이들이 사회 활동할 때쯤이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금의 우정을 더욱 키워가면서 지구촌을 보다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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