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휴직이 내게 준 선물
코로나 19의 여파로 업무도 없어지고 일을 쉬고 있는 상태이지만, 사실 우리 회사는 코로나의 영향 이전에도 경영 상황 악화로 인해 점점 교육이 축소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그룹 지주사의 힘으로 어떻게든 교육을 끌고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주로 맡았던 교육들은 신입사원 교육, 2년차 사원 Follow up 과정, 신규임원과정, 승격자 과정, 승격 후보자 과정 등 인사제도에서 꼭 필요한 통과의례 같은 과정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이라면 이정도는 알아야지’, ‘의례적인 교육이라도 한 것과 안 한 것은 달라’ 이렇게 혼자 나름대로 이유를 붙여 가며 교육 업무를 해왔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교육부터 줄이고 없앤다고 하는 이야기를 교육학과 다닐 때도, 회사에 입사해서도 자주 들었지만 사실 우리 회사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교육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했었다. 새로운 교육을 개발하거나, 교육 콘텐츠를 보강하는 일에서는 조금 부족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기존의 교육을 최대한 유지하는 선에서 담당자들이 얼마든지 역량 발휘도 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회사가 어려워지면 교육을 줄인다는 건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생각했다. 계속되는 워크아웃과 몇 번의 계열사 매각 과정에서도 해오던 교육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작년 하반기 부터인가, 어떤 교육을 어떻게 준비해서 진행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야기 할 틈이 없었고, ‘이번 교육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였다. 이제는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아슬아슬한 시점까지 계열사의 교육비 부담, 직원들의 여론을 살피며 교육 진행여부를 결정했고 일단 결정이 나면 속전속결로 교육 준비를 했다. 조금 더 좋은 강사와 커리큘럼으로 교육을 준비하고 싶었지만, 일단 시간이 맞는 강사를 구하는 것만 해도 벅찬 나날이 계속되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회사 직원들에게 “그래도 이 교육은 꼭 필요합니다” 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교육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법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교육을 와 있는 4박 5일의 시간 동안 업무 공백이 생기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 애초에 내가 하고 있던 교육은 회사에서 정해놓은 규정이라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평소에도 마음 한구석에 있지만 애써 마주하지 않으려 했던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강제로 온 교육이라 할지라도 뭐라도 하나 얻어갈 수 있게 하자’라는 생각으로 직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조차 부질없는 것 같았다.
처음엔 자조섞인 의문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정곡이 찔리는 느낌에 한동안 괴로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선택과목 혹은 교양과목이었지 필수과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격증 있는 전문직이 되었어야 하는지, 고시공부를 했어야 하는지, 왜 그때 조금 더 편한 길을 선택했는지, 어디서부터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나 스스로를 계속 추궁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나에게 지나가다 물었다. “넌 왜 그렇게 교육 일이 좋은 건데?”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난 왜 하필 교육 일에 목숨을 매는 걸까? “사람들이 학습하고 성장하는 걸 돕고 싶어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자신 없이 얘기했다. 남편은 그런 일이 왜 좋은 거냐며,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나 역시 방금까지 같은 생각을 했으면서도 괜히 분하고 억울한 느낌이 든다. 나도 내 일에 대해서 의문이 드는데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교육학과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그때는 왠지 모르지만 교육으로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뜨거운 열망이 있었다. 몇 년 씩 지역아동센터에 자원교사로 아이들을 만나러 가면서, 학교에서도 소외받고 사교육도 받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함께 성장했던 시기가 있었다. 한 명의 아이라도 나로 인해 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실제로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준 아이들이 있었다.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들을 위한 캠프를 진행하면서는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어 가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올랐던 때가 있었다. 아, 그래서 내가 교육을 공부하고, 교육하는 일을 선택했었지.
회사에서 교육을 할때도, 교육을 들으러 온 직원들을 만날 때도 나는 그런 마음을 가졌던가? 교육 일이 직업이 되고 나니 처음에는 실수할까봐, 일이 잘못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에 그런 열정을 느낄 새도 없었고, 일이 익숙해지고 나서는 나도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지 자꾸 잊어버렸다. 초심을 떠올려 보려고 해도 그럴 만한 초심도 없었던 나를 발견했다. 업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교육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던 때의 열정을 떠올리며 다시 일을 해보고 싶다. 내가 하던 일은 꼭 필요한 일이었는지,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었는지, 하마터면 놓치고 지나갈 뻔한 질문을 코로나 덕분에 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이 이번 휴직의 가장 큰 선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