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가을 일본 HR 컨퍼런스 참가 후기
일본 최대의 HR 네트워크인 '일본의 인사부(日本の人事部)'에서는 1년에 두 번, 봄, 가을에 일본 최대의 HR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도쿄의 대형 컨퍼런스 장을 빌려 (당연히) 오프라인으로 열리던 컨퍼런스가, 2020년 봄 코로나를 앞두고 급하게 온라인 방식으로 바뀌었고, 나 역시 그 덕분에 한국에서 일본 HR 컨퍼런스에 참가할 수 있었다. 5월에 처음으로 일본 HR 컨퍼런스에 참가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일본 기업의 사례와 다양한 관련 이론을 통해 배운 것도 많고, 실제로 활용할 수 있을 만한 포인트들도 많았다.
상반기 일본 HR 컨퍼런스 참가 후에 한 차례 소규모로 디브리핑 자리를 가지기도 하고, 블로그에서 관련 내용을 포스팅 해보기도 했으나 아무래도 단발성의 글로는 전파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과 이 내용을 나눌 수 있을지 고민을 하던 중 마침 브런치에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매거진 기능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마침 이번주가 일본 HR 컨퍼런스가 열리는 주간이었어서 내가 참가했던 세션들, 그리고 일본 HR 컨퍼런스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글로 남겨 보려 한다.
이번 글에서 소개하려고 하는 내용은 바로 '경계를 초월하는 학습'에 대한 것이다. 이번 가을 컨퍼런스에서 총 7개 세션을 신청해서 들을 수 있었는데, 7개 세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세션이 아닐까 싶다. 세션의 정식 제목은 "리더 육성의 필수 과목은 '경계를 초월하는 학습'-기업이 도입할 수 있는 포인트와 최신 기업 사례"였다. 제목만 보았을 때도 흥미가 느껴졌는데, 특히 어떤 경계를 어떻게 초월해서 학습을 한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이 신선해서 놀라웠다.
발표자는 Consulting Associates(CA)라는 곳의 컨설턴트였는데, 경계를 초월하는 학습이 제 4의 배움이며, VUCA 시대 리더에게 필수 과목이라고 하며 발표를 시작하였다. 경계를 초월한다는 것은 내 업무, 내가 속한 부서 혹은 회사, 내가 속한 지역 등의 경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을 말한다. 내가 속해있는 세계 속에만 있다가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면 새로운 세계가 생겨난다는 것이 경계를 초월하는 학습(이하 초월학습)의 전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시행착오와 다양한 경험이 학습으로 이어지는 것이 초월학습이다.
기존의 기업교육에 크게 OJT, Off-JT, SD(자기계발)이 있었다고 한다면 초월학습은 새로운 차원에서 이 세 가지 학습 방식을 제안한다. 초월학습 OJT의 가장 대표적인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1년 간 옮겨서 일을 하는 ‘렌탈 이적’ 방식이었다. 대기업 직원은 대기업이라는 간판 없이, 새로운 문화를 가진 조직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규모는 작을지라도 직접 신규사업을 기획하고 런칭하고, 실행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교육 효과를 가진다. 대기업에서는 주어진 시스템 안에서만 업무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해도 정체된 문화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스타트 업에서는 훨씬 도전적인 과제가 주어지고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시스템이 아닌 내 힘으로 직접 사업을 운영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스타트 업 입장에서도 이점이 많았다. 스타트 업의 경우 새로운 아이디어와 유연한 조직문화는 가지고 있지만, 대기업만이 가지고 있는 업무 노하우를 배워올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대기업에서 온 직원을 통해 다양한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아이디어를 내고 새로운 발상을 했지만 사업으로 옮기거나, 업무를 마무리 짓는 것을 어려워하는 직원들에게 대기업에서 온 직원들과의 교류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교육 효과를 가진다. 업체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실제로 도요타, 스미토모상사 등 유명한 대기업 직원들도 스타트 업에 가서 1년 씩 업무를 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500 건 이상의 렌탈 이적 사례가 소개되어 있었다. 이런 렌탈이적 업무만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도 소개되었는데, 새로운 사업 아이템인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초월학습 Off-JT의 경우에는 ‘이종 업계 교류’를 중심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방송국과 일반 제조 기업, 혹은 서로 다른 업계의 회사들이 모여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서로 다른 회사들이 모여 미래에는 어떤 업계 풍토를 만들어 나가고 싶은지 미래 디자인 워크숍을 열어 다양한 업계, 경영의 생태계를 직접 경험하고 설계할 수 있도록 한다. 지자체의 과제를 받아 여러 회사가 모여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는데, 단기적인 교류를 넘어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함으로써 경험의 깊이를 더하게 한다.
어린이 광고팀을 만들어 어린이의 시각으로 자신의 회사를 홍보하게 하는 프로젝트도 있었는데, 이는 세대를 초월한 학습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어린이들이 회사 광고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어린이들에게 회사에 대해 설명했던 과정 자체가 효과적인 교육이었다고 평가되고 있었다. 자신의 회사나 업무에 대해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업무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고, 어린이의 관점에서 던지는 신선한 질문들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 역시 너무 좋은 사업인 것 같았다.
개인차원의 초월학습 SD(자기계발)는 부업 장려로 연결되었다. 상반기 일본 HR 컨퍼런스를 들으면서 부업을 허용하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에 놀랐었는데, 이제는 정말로 부업을 하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본업 외의 부업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자체를 육성 과정이라고 여기고 있었으며, 부업에서 얻은 경험이 본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개입하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해서 놀라웠다. 세금 관련 문제를 컨설턴트 혹은 강의를 통해 해결해 주거나, 부업을 하는 직원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들어 주거나, 아예 부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한 휴가나 휴직 제도를 마련하기도 한다고 한다. 또 부업으로 인해 과로하지 않도록 주말 부업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을 권하는데, 이를 위해 업무 효율화를 통해 노동 시간을 줄이거나 주3회 출근을 실시하는 회사도 있다고 한다. 정말 엄청난 변화인 것 같다.
리더를 육성하는 데 있어서 초월학습이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주체성'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 매일 정해진 같은 업무를 반복하는 환경에서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대응해 나갈 역량을 개발하기가 쉽지 않다. 의도적으로라도 이러한 초월학습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내던져지고, 그동안의 방패막이가 없는 상황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업무를 수행해 나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도 아주 훌륭한 리더십 교육이다. 스스로 과제를 설정하고, 사람 및 사업에 관한 위기 상황을 극복해 보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면 그 직원은 조직에서 꼭 필요한 리더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 차원에서 초월학습을 시행할 때 단순히 제도로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넘나드는 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변화하려는 의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의지에서부터 초월학습은 제대로 시작될 수 있다. 또한 직원을 새로운 환경에 보내놓고, 혼자 난관을 극복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회사 차원에서는 그 직원이 어떤 경험을 하고 있고, 그 경험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지속적으로 코칭하고 지원해야 한다.
교류 혹은 파견할 회사를 찾는 팁도 소개되었는데 우선, 같은 지역 안에서 교류할 회사를 찾기보다는 연관성이 있지만 전혀 다른 업무를 하는 회사를 찾아 교류를 시도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대리점 영업이 중요한 회사의 경우 업종은 다르더라도 대리점을 운영하는 회사를 찾아 교류하는 것이다. 또한 회사를 선정할 때 그 회사의 문화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일처리 과정이 느리고 복잡한 회사라면 업무 처리 속도가 빠르고, 단순한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는 회사를 선정해서 교류하는 것이 좋다. 어떤 회사를 매칭하느냐에 따라 초월학습의 효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적절한 회사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초월학습은 업계(혹은 사회) 차원에서는 서로의 이해를 통해 새로운 풍토를 만든다는 의미가 있었고, 조직(회사) 입장에서는 조직을 객관화 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개인에게는 자기인식과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효과라고 한다. 한 예로, 회사를 그만두려고 하던 직원이 초월학습의 대상자로 선정되어 타 회사를 경험하고 왔는데 그 이후 자신의 방향성을 찾고 다른 회사에 대한 정보도 얻어서 회사를 그만두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 결심을 했던 직원에게는 정말 큰 변화가 일어났을 거라 생각한다.
어떤 형태의 초월학습에서든 '성찰'이 가장 중요하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자체보다 그 경험을 통해 개인이 느낀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행동과 의식을 변화시켜 나갈 것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듣게 하고, 공대 출신 직원들에게 경영학 과목을 교육하는 것이 주로 내가 경험해 온 경계를 넘는 학습이었는데 이번 세션을 듣고 나서 꽤 충격이 컸다. 회사 내 다른 부서와도 이해가 부족하여 갈등이 빈번한데, 하물며 다른 회사, 다른 업종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라니. 조만간 한국에서도 경계를 뛰어 넘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