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함이 상상력을 그려내다

[리뷰] 에릭요한슨 사진전 <BEYOND IMAGINATION>

by 케이
전시명 : 에릭 요한슨 : BEYOND IMAGINATION
관람일시 : 2023년 1월 28일(토)
장소 : 경북대학교 미술관
사진작가 : 에릭 요한슨

최근 들어 눈에 자주 띄던 길거리 현수막에서 '에릭 요한슨'이라는 작가의 전시가 있음을 보았다.

오랜만에 관심 가는 전시이기도 하고, 언뜻 찾아본 작품 몇 개가 내 취향인 것 같아 혼자 전시관을 방문했다.


에릭 요한슨은 스웨덴 출신 초현실주의 작가이다. 현실인 듯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작품을 제작하며, 실제 사진을 여러 장 촬영한 뒤 포토샵으로 후보정을 통해 상상력을 작품에 담아내는 작가이다.

전시를 안 본 지 꽤 오래되었는데... 후보정 분야의 유명작가의 수준이 이렇게나 높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내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면서 전시를 봤다. 기억에 남는 작품의 감상평을 적어보려 한다.



그나마 제일 유명한 작품인 것 같다. 유일하게 이 작품만 본 적이 있다.

IDEAS COME AT NIGHT, 2021

아이디어나 잡생각을 머리에 가득 품은 채 잠든 내 모습 같다. 마치 전구가 누르는 압박이 느껴질 정도로 잘 표현한 것 같다. 마치 생각에 눌린 듯한. 그런데 응? 생각은 많은데 불 켜진 전구는 한 개다. 생각은 많으나 다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잡생각을 버리고 편안한 숙면에 취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작품:)

당연한 일상도 비주얼적인 그림으로 표현하니 느낌이 확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듯이.



Leap of Faith, 2018

개인적으로 수많은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원래 몇 안 되는 그냥 지나칠 뻔 한 작품이었지만, 작품에 작은 문구가 쓰여진 게 보여 가까이서 보니 'Fly at own risk'라고 쓰여있었다.

저 문구를 보기 전에는 그냥 풍선 타고 날고 싶은 아저씨 그림이구나. 라고만 생각했는데... 작품 속 디테일을 보고 생각이 달라진 경험이 처음이라 더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위험을 무릅쓰고 비행하다' 즉, 책임은 너에게 있다. 이런 말로 해석됐다.

#직장인 차림의 중년 남성 #위험 문구 #몽환적인 지평선을 종합해 보면 '마음속 품어둔 꿈을 향해 새로운 도전을 하는 중년'정도로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늙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잊고 잃고 사는 게 아닐까.

나이가 들어도 작품의 제목처럼 '믿음의 도약'을 할 수 있는 마인드와 태도를 가지며 살고 싶다.

그림이든 영화든 작품 속에서 창작자의 디테일을 찾는 건 재미있다. 작가 또한 디테일한 요소를 첨가하는 데 재미를 느끼겠지? 결국 작은 것들이 모여 전체적인 작품에 사실감이 살아난다.



FALLING ASLEEP, 2018

이 작품은 역동적이다. 자다가 집이 뒤집어진 건지, 꿈속을 날아다니는 중인건지 모르겠지만 더 놀라운 것은 작품 속에 쓰인 모든 것들은 하나하나 촬영해서 연출해 낸 것이라는 점이다. 모델은 수중촬영으로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해 낼 수 있었고, 나머지 소품들도 직접 연출해 낸 것이라는 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취한 것 같은 모델이 인상적이고, 늘 깊게 언제 어디서나 잘 자는 내 모습 같아서 더 재미있는 작품이다.

편집이 엄청난 능력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흰 A4용지 위에 이벤트를 스케치하고 기획하고 그려내는 내 직업에도 정말 필요한 능력이다.



LAND FALL, 2014

WATERFALL이 아닌 LANDFALL이다. 마치 폭포처럼 흐르는 대지. 네이밍과 표현력이 정말 키치하다.

마치 양념에 절여진 듯한 뿌리 뽑힌 나무의 표현력을 보아하니, 실제인지 포토샵 보정인지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 작품은 특히나 제작 과정이 비하인드 씬 영상으로 기록되어 있어 더 흥미로웠는데, 끈적한 액체에 나무 모형을 담그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내가 어떤 걸 표현하고 싶을 때, 어떤 방법을 쓸까? 어떻게 표현할까? 에 대한 고민에 상당 시간을 필요로 할 것 같다.


인상 깊은 작품이 많아, 추리고 추렸는데도 다소 내용이 많아졌다.

EXPECTATIONS, 2018

내 뒤에 서있는 수많은 나. 인간은 수많은 생각과 수많은 자아와 수많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마치 그걸 작품에 표현한 것 같았다. 나를 감시하는 건 나고, 나를 만족시켜야 하는 것도 나고? 어떻게 보면, 늘 인생의 기준을 '나'로 잡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어차피 누가 알겠어?"라는 생각이 들 때, "내가 알잖아"라는 대답이 절로 나올 것 같다. 그렇다. 세상 아무도 몰라도 나는 아니까, 나를 속일 순 없다.

너무 주저리주저리 했는데 결론적으로 이 작품이 주는 임팩트가 강렬했다는 거!

가까이서 보니 여러 명의 '나'의 표정이 제각기 달랐다. 에릭 요한슨의 디테일.



그는 '집요했다'

전시를 다 본 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집요하다...'였다. 집요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떠올린 것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고집스럽고 끈질기다'(執拗)는 의미였다. 작품을 처음 구상할 때부터 완성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긴 여정이었을지 상상도 안 간다. 벽 한구석에 그가 작업했던 포토샵 레이어(히스토리) 작업과정을 전시해 놨는데, 땅부터 천장까지 시선을 올려도 모자랄 정도로 그 과정이 길었다.

난 기획자이자 디자이너로서 작품보단 이런 비하인드 씬에 더 눈길이 갔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단하고, 고민스럽고, 힘들고, 또 설렜을지 알기에 더 감동적이었다.

그의 천재적인 상상력을 작품으로 구현해 내는 건 결국 그의 집요함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상상하고, 메모하고, 스케치하고, 연구하고, 편집하고... 그에게 창의력은 어쩌면 집요함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그의 인상적인 답변이 돋보였던 Q&A를 적어보고 싶다.

Q.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서 꿈을 키우는 꿈나무들에게 작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다면요?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창의적으로 태어났지만 성장하면서 그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저는 누구든지 예술을 창조할 수 있도록 응원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변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