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는 말의 진짜 의미

그건 끝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마지막 외침이었다.

by 케지


죽을 생각만 가득할 때는,

아주 사소한 일조차 모두 죽을 이유가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다.
그건 끝을 향한 절규가 아니라,

살고 싶다는 마지막 내면의 외침이었다는 것을.


“제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

그 말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죽고 싶다는 말은, 사실 “살려주세요”라는

간절한 외침인데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른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모른다.


죽고 싶다는 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그 용기로 살아라”,

“사는 게 편해서 그런 생각을 하지”,
“나약한 인간”, “감수성 풍부한 척”,

“감성팔이”라는 비난뿐이다.


슬픔을 꺼냈을 뿐인데, 나약하다는 낙인을 찍는다.
그래서 더 이상 가까운 사람에겐 말할 수 없게 된다.


오히려 얼굴도 모르는 사람,
내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사람들에게
뜻밖의 위로를 받게 된다.


왜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할까.

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받고,
왜 이해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그들에게 기대려 하는 걸까.

정작 나 자신조차 나를 지켜주지 않고,

나를 아끼지 않으면서 말이다.


타인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그보다 먼저, 스스로를 돌보고 지켜야 한다.

지금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삶을 처음부터 돌아보면,
꽤 오래전부터 ‘살고 싶지 않다’,
‘삶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왔다.

모든 것이 죽을 이유였고,

모든 것이 굳이 살지 않아도 될 이유였다.
사소한 일들도 단지 ‘이유’였을 뿐이다.

사실은 너무 지쳐 있었던 것이다.

삶을 진지하게 살아내려 애쓰다 지쳐버린 나를,
나는 끝까지 돌보지 않았다.


방법이 없었다고 믿었다.
어디에도 답이 없고, 누구도

나를 구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방법을 찾았다.

그건 거창한 변화도, 특별한 누군가도 아니었다.


그저 나를 인정해주는 일,
있는 그대로의 내 마음에 귀 기울여주는 일이었다.

슬픔도, 무너짐도, 나약함도 모두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오래 걸렸다.


나는 이제 안다.
삶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돌보는 것이라는 걸.
그 시작은 언제나 나 자신에게서부터라는 걸.

그래서 이 방법을 당신에게도 전하고 싶다.


혹시 지금,
어디선가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당신이 있다면
“살고 싶다는 마지막 외침”을
누구보다 먼저 당신 자신이 들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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