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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un 23. 2017

나의 조르바를 찾아서 <조르바의 인생수업>

나에게 <그리스인 조르바>는 숙제다. 꼭 읽어보고 싶지만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한 책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라치면 바쁘거나 더 빨리 읽어야 할 책들이 불쑥 생겨버린다. 늘 눈에 잘 띄는 곳에 놔두지만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한 책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왜 그렇게 읽어보고 싶어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딱히 명확한 답은 없다. 그냥 읽어보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 인생 최고의 책이라고 꼽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어떤 책인지가 궁금했다. 

아직 <그리스인 조르바>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의도치 않게 그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은 몇 권 읽었다. 처음엔 단지 왜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는지가 궁금했는데 <그리스인 조르바>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은 후에는 더욱 궁금해졌다. 자유영혼인 조르바에 관해, 그가 생각하는 삶과 찬란한 인생의 명언들이 읽어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직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보지 못했고 그 책을 빠르게 한번 훑어본 듯한 느낌이 드는 책을 만났다. 

장석주 시인이 읽고 쓴 <조르바의 인생수업>에서 들려주는 조르바에 관한 이야기는 분명 내가 언젠가 읽을 <그리스인 조르바>와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조르바의 인생수업>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전에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처럼 <그리스인 조르바>를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스무 번도 더 넘게 읽어 본 <그리스인 조르바>가 저자 인생의 책 중의 한 권이라고 한다. 수없이 읽어 본 그 책의 수많은 문장에 대해 작가가 사유하고, 자신의 인생을 덧붙여 들려준다. 처음엔 저자의 이야기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멋진 구절들이 눈에 더 들어왔지만 책을 읽어나갈수록 작가가 덧붙여 쓴 이야기들에 공감을 하고 더 집중하며 읽었다. <조르바의 인생수업>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요점만 뽑아놓은 요약집과 장석주 시인의 서평인 듯 에세이 같은 이야기, 마치 두 권의 책을 읽는 것 같았다.

'나는 왜 이 책을 쓰는가'라는 저자의 서문 중에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도무지 알지 못했다'라는 구절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누구나 이런 시절이 있었고 아직까지 이런 상황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산다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지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저자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깨달았다는 인생을 나도 찾을 수 있을까? 


<그리스인 조르바>의 문장들 아래에 비여있는 여백을 보니 따라 적어 보고 싶어졌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필사해 보고 싶지만 두께 때문에 포기했다면 <조르바의 인생수업>에서 뽑아놓은 문장들을 따라 적어봐도 좋다. 친절하게 페이지까지 적어놓은 문장에 곁들어진 저자의 이야기는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조르바를 통해서 저자가 느낀 인생과 자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지만 곳곳에 숨겨진 구절들은 따로 적어놓고 싶을 만큼 좋았다.

사유하고 고뇌하는 것, 그게 인간이 제 안의 야만성을 넘어서는 것이다.
고독은 혼자 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립에 처했을 때 온다. 고독은 제 영혼을 우주로 삼는 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죽는다는 사실로 인해 삶은 의미로 충만하고, 단 한 번의 삶으로 찬연하게 빛난다. 
진탕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면서도 한 줌의 흙에 대해 숙고하는 것을 잊지 마라! 이것이 살아있는 자의 숭고한 소명이다.


조르바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 뒤에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생애와 문학에 대해 만날 수 있다. 뛰어난 작가인 카잔차키스에 대한 이야기는 한 사람의 전기라기보다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아서 앞선 이야기만큼이나 재미있게 읽었다. <조르바의 인생수업>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명문을 따라서 적어보고, 조르바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저자의 에세이를 읽어보며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킨 최고의 책을 쓴 작가의 인생까지 만날 수 있었다. 

<조르바의 인생수업>을 읽고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봤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책은 <그리스인 조르바>보다 그 책을 읽은 작가가 생각하는 조르바의 삶과 자유로운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만약에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해 분석하고 판단을 내렸다면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을 것이다. 나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 그가 느낀 조르바의 자유, 삶에 대한 진지함을 나도 찾는다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내 삶에도 변화할 수 있을까. 자유가 있지만 자유에 얽매인 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그리스인 조르바>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졌다. <조르바의 인생수업>을 덮고 이제 <그리스인 조르바>를 펼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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