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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un 27. 2017

현실과 현실 사이 그 어디쯤 <무한의 책>

보통은 책을 읽은 후 며칠이 지난 후에 리뷰를 쓴다. 출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일하는 중간중간에  읽었던 책의 한 부분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기억에 남는 구절을 되새겨본다. 며칠 동안 어떻게, 무엇을 써야 할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편인데 <무한의 책>은 책을 덮은 후에 당장 써야 할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책을 읽었을 때의 그 짜릿한 느낌과 곳곳에서 '대박~'이라고 나지막이 외쳤던 감정들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 후 30분을 산책 대신 <무한의 책>의 마지막 장을 읽었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과 읽는 도중의 느낌,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느낀 감정들이 모두 판이하게 달랐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모니터와 책을 번갈아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지금도 무척 혼란스럽다. 이토록 엄청난 스토리를 가진 책을 몇 줄의 줄거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 

타임워프가 등장하니 SF 과학 소설이라고 할까, 너무나도 생소한 신이 등장하니까 판타지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멸망 위기의 지구를 구하는 내용이니 어드벤처 소설이라고 불러야 할까. <무한의 책>은 '무한'이라는 제목처럼 어느 하나에 특정할 수 없는 소설이었다. 이 책에 담긴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을 이제부터 어떻게 적어야 할까. 


<무한의 책>에는 수많은 현실과 공상의 세계가 등장한다. 책을 읽을수록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지 알 수 없는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느 한 지점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수백 가지의 이야기로 퍼져만 가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나오고, 그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처럼 끝없이 포개지기만 하는 수십 개의 이야기들이 가득한 <무한의 책>은 일단 파악하려 하지 말고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 읽어야 한다.

한국계 미국인인 스티브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로버트 와인버그 로부터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는다. T 신부에게서 듣게 된 인류 멸망과 신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멸망을 막을 구원자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엔 믿기 힘든 황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신이 지구에 강림하고 스티브는 신으로부터 자신이 지구를 멸망에서 구할 구원자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갑자기 지구에 내려온 신은 수많은 회화에 등장하는 금발머리의 아름다운 신이 아니라 새인 것 같기도 하고, 티라노사우루스처럼 보이기도 하는 공룡의 후예였다. 신 또는 신들은 스티브에게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고 스티브는 오랜 고민 끝에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기로 결심한 후 1958년의 용인이라는 시공간으로 들어간다.  


<무한의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상상력에 놀란 적이 많았는데 첫 번째는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표현이었다. T 신부의 미발표 원고에 등장하는 신의 형상은 우리에게 익숙한 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절대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는 날 수 없다. 날기 위해서는 새처럼 비정상적으로 가슴근육이 발달해야 하고 다른 부분은 줄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마치 새와 같았고 <무한의 책>에 등장하는 신 역시 새 또는 공룡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설명은 무천 신선했고 특히 지구에 멸망이 닥친다는 날짜를 설명하는 부분 역시 독창적이었다. 마야인들이 새긴 달력의 마지막은 2012년 12월 21일에 끝난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이 지구 멸망의 날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 달력이 잘못되었다면? 달력 석판을 새기던 마야인이 갑자기 죽어버리고 미완성으로 남겨진 달력을 침략자인 스페인 사람들이 가져갔고 그것이 진짜 달력이라고 믿은 것이다. 왜 사람들은 그 달력이 만들다 만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았을까라는 구절은 허탈하면서도 무척 재미있었다. 

책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무척 복잡하게 들어왔다가 나간다.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하고 중심되는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무한의 책>은 사람들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꽤 멋진 과학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뜬끔없는 망상에 불과한 이야기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어떤 결말에 도달하든 우리는 촘촘하게 짜여진 <무한의 책>이라는 상자 안에 갇혀 저자가 흔드는 대로 흔들릴 뿐이다.


요즘 타임워프에 관한 책이나 드라마, 영화가 많이 나온다. 비슷한 듯 다른, 시간이동 이야기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다른 세계의 오랜 시간이 이쪽에서는 단 몇 초일뿐이라는 것과 사람들의 선택에 따라 또 다른 현실세계가 존재하며 그 속에서는 그쪽의 시간이 흘러간다는 개념을 좋아하는데 <무한의 책>에 등장하는 시간의 개념이 바로 내가 좋아하고 믿는, 그것이었다. 

신들은 이야기한다. 네가 시간이동에 성공해 지구 멸망을 막는다면 멸망 직전의 세계가 아니라 그 세계와 99.999퍼센트 똑같은, 재생된 또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 일부 예민한 사람들만이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 뿐이지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지구가 멸망 직전에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 역시 또 다른 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앞선 '신'에 대한 이야기, T 신부를 통해 들려주는 수많은 공상들 그리고 스티브와 주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등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솜씨에 감탄했다. 그중에서도 시간과 공간, 현실과 현실 사이의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개념이 인상깊었다. 

<무한의 책>과 같은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끝없이 얽히고 설키는 이야기에 뜬금없이 툭 튀어나오는 또 다른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무한의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반짝 눈에 띄는 길이 보일 것이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의 마지막 장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을 덮으며 다시 처음부터 꼼꼼하게 읽고 싶을 만큼 책의 재미를 뒤늦게 발견할 수도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람들마다 보이는 길은 다르다. 누군가가 이야기한 결말과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무한의 책>은 그런 책이다. 내가 믿는 그것이 정답인 세계. 그것을 믿고 이야기를 즐기면 된다. 

평범하지 않은 <무한의 책>을 읽는다면 우선 명심하길 바란다. <무한의 책>이라는 제목에 현혹되지 마시라. 그래도 혹시 제목에 책에 대한 힌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책'보다는 '무한'에 집중하시길. <무한의 책>은 현실과 현실 사이의 그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당신의 존재가 문득 궁금해지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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