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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un 17. 2017

손끝으로 느끼는 감동 <법정 "행복은 간장밥">

좋은 글을 읽으면 잠시 읽기를 멈추고 그 문장을 한참 바라본다. 소리 내어 읽어본다.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를 정성스레 따라 적어본다. 좋은 글에는 향기가 있다. 그 향기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 입으로, 손으로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필사의 경우는 읽고 쓰기를 반복하면서 천천히 다시 읽게 되어, 눈으로만 읽었을 때와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될 때가 많다. 그게 바로 필사의 매력일 것이다. 조금은 느리지만, 저자가 들려주고 싶은 말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그 글이 완전하게 내 것이 되는 최고의 방법이 필사라고 생각한다. 

책 한 권을 필사하기 보다 마음에 드는 짧은 이야기나 문장 위주로 쓰는 경우가 많아서 특별히 따로 필사 책을 사보지는 않았다. 왠지 딱 '필사'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책의 경우는 따라 적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에 앞서 꼭 써야 한 한다는 의무감이 들어 찾아보지는 않는데, 이런 내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적어보고 싶은 필사 책이 생겼다. 


법정 스님의 <행복은 간장밥>은 샘터에서 법정 스님의 글을 엮어서 만든 필사 책이다. 법정 스님이야 두말할 필요 없는 분이고, 예전에도 스님의 책을 보며 가끔 필사한 적이 있어서 <행복은 간장밥>은 기대되는 책이었다. 이 책은 법정 스님이 강연하신 내용과 대담, 작은 말씀의 흔적을 모아 선별해서 만든 것으로 시구 같은 짧은 글부터 에세이 같은 단편들, 그리고 법정 스님이 아껴 읽으신 경전과 불교의 명언까지 <행복은 간장밥>은 읽기에도 부담 없을뿐더러 필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필사를 해보고 싶지만 어떤 책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필사 입문자부터, 몇 번 필사에 도전했지만 늘 실패하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책이다. 물론 법정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글을 손끝으로 느끼고 싶은 누구에게나 좋은 책이다. <행복의 간장밥> 제일 뒷부분에는 이 책을 어떻게 써야 할지 조언해 주는 글이 있다. 처음에는 가볍게 책을 읽고 두 번째 읽으면서 적어보는 게 좋지만 처음부터 쓰면서 읽고 싶다면 샘터에서 알려주는 필사 팁을 먼저 읽고 써봐도 좋은 것이다. 필사 방법 역시 어떤 노트에 어떻게 적으라는 식의 조언이 아니라 또 다른 좋은 문장이라 이게 무슨 방법을 알려주는 것일까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그 글을 읽고 법정 스님의 말씀을 따라 적어본다면 그 말뜻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다를 찾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면 누구나 안정과 편안함을 얻지요. 그것은 다름 아닌, 빈 공간이 주는 안정과 편안함입니다. 여백은 그저 비어 있는 자리가 아니라 바라보는 이의 상상력으로 채워지는 곳입니다. 한국화에서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빈 공간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한 줄기 청량한 바닷바람을 불어넣어 주세요.


책상에 바르게 앉아 정자세로 필사해야만 할 것 같은 책도 있지만 <행복은 간장밥>은 책을 읽다가 문득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오면 노트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 없이 바로 빈 공간에 따라 적으며,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다. 비록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급하게 적어서 글씨는 삐뚤고 줄고 열도 맞지 않지만, 간단히 때우는 간장밥이 참 맛있다고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간단하고 빠르게 적었지만 참 좋은 글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적어볼 수 있어서 <행복은 간장밥> 덕분에 기분 좋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따로 필사 노트를 준비해서 깨끗하게 적어보는 것도 좋고 책의 빈 여백에 따라 적어보는 것도 좋다. 정해진 방법은 없다. 바로 적어보고 싶은 글은 책에 적어보고, 카톡 등의 프로필에 남겨두고 싶은 글이 있다면 휴대폰에 바로 옮겨보는 것도 필사의 한 방법일 것이다. 


작은 툇마루에 앉아 법정 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육신의 나이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벌써 늙은 거라고, 내가 이 나이에 뭘 하겠느냐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성장을 포기하는 일이라는 말씀은 점점 의욕이 없어지고 나이 탓이라고 핑계를 대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 딱 필요한 것이었다. 

<행복은 간장밥>은 필사 책이지만 길지 않고 이해하기 쉬운 좋은 글이 많아 소리 내어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엄마가 법정 스님의 책을 좋아하셔서 그분의 책이 나올 때마다 구입해 엄마에게 읽어 드렸는데 이번 책인 <행복은 간장밥> 역시 필사하는 중간중간에 엄마께 읽어 드렸다. 법정 스님의 이야기도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스님이 아낀 말과 침묵에 나오는 법구경과 숫타니파타 등의 구절이 좋다고 하셨다. 

책의 여백만큼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모든 이웃들이 다 행복하라, 태평하라, 안락하라!는 말씀처럼 <행복은 간장밥>을 읽고 쓰면서 잠시 일상의 스트레스를 잊고 나는 고요했다. 작은 암자에 앉아 바람에 실려오는 나무와 흙의 냄새, 암자를 가득 채운 향내를 맡은 것 같았다. 내일은 또다시 일상이지만 <행복은 간장밥>을 읽고 쓰는 동안에는 이곳이 바로 나만의 안식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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