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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Aug 04. 2022

기어이 다시 시작과 맞닿았을까

우먼카인드 19호

#우먼카인드 #다시시작하는사람들


5월 초, 전 집 우편함에 꽂혀있던 걸 주워왔다. 꼬박꼬박 출근한 것도 기적이었던, 반 정신 나간 상태. 포장지를 뜯으니 주제가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


뭐 이렇게 주제도 딱 맞아떨어지게 보냈어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책상 멀찍이 처박아두었다. ‘다시 시작’, 어불성설이었다. 한 세상이 바스라지는 시기의 절정을 지나고 있었고, 끝이다 시작이다 따위의 의미를 사유하기엔 순간순간이 너무 고통스러워 그 단어조차도 버겁던 때였다.


시간이 돕는다는데,   맞나    의심하고  의심했던,  더럽게도 더디게 흐르는구나 싶던 시기. 지금도 종종. 어쨌든 시간은 제법 부지런히 지났다.  소리로 와하하 웃는 날이 많아졌고, 떠오르는 과거의 단상들은 대부분 ‘어떡하지’에서 ‘어쩌라고’로 수렴된다. 결국 이렇게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시기를   깨물고 버티는 일은 오로지  몫이었고, 녹록지 않았다. 그리고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부활이 부릅니다. 네버 엔딩 스토리.)



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 김신은 박중헌을 죽이고, 무로 돌아간다. 그는 이승과 저승, 빛과 어둠 사이에 갇혀 하얀 눈밭을 끝없이 걷는다. 끝과 시작 그 중간 어딘가를 나타내는 시공간. 끝과 시작이 동일어라 표현하곤 하지만, 끝과 시작은 제법 가까우나, 그 둘 사이에는 낙차와 시차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간극을 건너 내려면 그저 걷고 또 걷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그래서 결국 나는 다시 시작과 닿았을까. 그렇지 않을지언정, 분명 지근거리에는 있겠다 정도의 확신이 생긴 어느 날, 적어도 끝보다는 시작에 가까워지기 시작했음을 직감한 어느 날, 이보다 더 직설적이고 직관적일 수 없는 명료한 부제의 책을 집어 들었다. 기어이 시작과 맞닿은 이들의 재잘거림을 노래처럼 들었고, 읽는 내내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애틋하고 설렜다.


“Making space for sacred time”


“변화는 그런 것이다. 매일매일 아무 변화 없이 지내더라도, 돌아보면 어느새 달라져 있는 것. 평화는 그런 방식으로 도래한다.”


“‘재창조’의 또 다른 이름은 ‘허용’ 이에요. ‘허용’은 ‘나는 중요하다’라고 말하죠. 꿈을 꿀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일이에요. 자신을 주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일,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연민을 확장하는 일이죠. 연민의 또 다른 측면이 결국 허용이고요.”


“일상 예술가는 자신이 하는 일로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으며 그저 그 일에 몰두할 뿐이다. 지키지 못할 시간표로 일과를 정하는 대신 리듬을 찾는다. 일상 예술가는 행위를 넘어선다.”


“두고 봐, 나는 혼잣말을 한다. 두고 보자고.”


#K가사랑한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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