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그리고 여전히 시작
언젠가부터 드라마작가의 꿈을 꿨다.
그런데, 그 이유는 도통 모르겠다.
오래된 친구도 늘 내가 '글을 쓰고 싶어' 했다고 증언을 해 주었다.
양재시민의 숲 근처 사무실을 다닐 적, 내 책상에는 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발행된 작법책이 있었고, 난 방송작가협회의 교육프로그램을 알아보곤 했었다. 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은 수업이 6시 30분에 시작하는데, 사무실이 양재도 아닌 양재시민의 숲 근처라 양재까지 가면 이미 6시 30분이다. 또 출장도 많았던지라 교육원에서 수업들을 기회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하던 곳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었고, 난 공부를 하겠다며 학교에 진학을 했었다.
그러나 공부가 내게 맞지 않았고, 학교를 관뒀다.
다시 취업을 준비하면서 내 머리를 스쳐지나간 생각은 바로 방송작가협회 작가 교육원이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간 순간, 봄학기 교육 신청이 바로 전날까지였다.
맙소사..
난 계속 취업준비에 매진했고 몇 번 면접은 봤으나 취직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교육원의 가을학기 등록시점이 왔다.
면접비를 내고 등록을 했다. 교육원이 등록만 한다고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당시, 난 뒤로 넘어져도 코까 깨질 정도로 일이 안 풀리던 때였다.
교육원 조차 떨어지면 정말 나락으로 떨어진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아주 다행히 교육원 면접을 통과하였고 난 기초반에 무사히 탑승하게 되었다.
이렇게, 난 작가로 가는 길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작을 했으니 작가가 될 줄로만 알았다.
너무도 당연히.
작가의 꿈을 꾸는 이들을 ‘망생이’라 한다.
교육원에 와서야 난 ‘망생이’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
데뷔를 할 수 있는 길이 ‘공모전 당선’이고, 이 당선은 거의 로또 1등 수준의 확률이다. 그리고 공모전에 당선되고도 데뷔못한 망생이가 엄청 많다.
그럼에도 난 수업을 듣고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다.
교육원은 기초반, 연수반, 전문반, 창작반의 4개과정이며, 이 과정을 모두 수료하는데는 2년이 걸린다.
기초반에서 연수반으로 자동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적등을 종합해서 결정이 된다. 수강생 일부는 통과하지 못해 본인의 선택에 따라 재수강을 하곤 한다.
난 위태위태했지만, 무사히 연수반, 전문반까지 바로 연결되어 들을 수 있었다.
이 시간 동안, 난 일을 완전히 쉬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교육원 수업을 최우선으로 두었다.
창작반은 장학생반으로 정말 소수만이 진급을 한다. 비록 창작반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문반까지 수업을 듣는다면 대작가는 아니더라도 글을 쓰는 것으로 뭐라도 할 줄 알았다. 이것이 완전한 착각이라는 것을 자각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드라마는 보는 거와는 달리, 쓰기 위해서는 정말 치밀하게 많은 계산이 들어가야 한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는게 더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글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어 전문반을 수료한 후 보조작가를 하기로 결심을 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 보조작가가 필수는 아니어서 많이 고민을 했던 지점이었다.
보조작가 기회를 잡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몇 번의 면접 후 일일드라마의 보조작가를 하게 되었다. 그 때 작가님께 '작가님, 저는 교육원 다니면 뭐라도 할 줄 알았어요. 정말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시작을 하지 않았을텐데요' 라고 했더니, 작가님은 웃으시며 '언제라도 했을껄, 관심이 있었으니까.. 이게 팔자에 있는 것 같아..’. 참 맞는 말씀이다.
한창 글쓰는데 몰입할 때는 내 글이 덜 객관적으로 보였고, 내가 쓰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만 했다. 드라마를 보는데도 자꾸 사소한 것에 집착을 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넓은 시야로 내 글이 보이고 드라마가 보인다.
기-승-전-결이 아니라 기기-승승승승-(스치듯)전-(갑자기)결인 글들을 쓰고 공모전에 내곤 했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글을 전개했을 뿐이다. 지금에 와서야 그런 글들을 낸 것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물론 그때는 큰 착각에 빠져 꽤 쓴다고 생각했다.
꼭,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내 글을 쓰겠지.
나는 무엇이든 배우면 곧잘 하는 편이었다.
운동, 그림은 빼고..
그러나 교육원 수업을 들으면서 내 글쓰기가 참 형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는 길이고, 열심히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교육원을 한창 다닐 적에는 내 자신의 수준이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좀 거리감을 두고 시간을 가지니 나름 객관성이 보인다. 이제 좀 눈을 뜬 것 같다.
이제가 비로소 내가 시작할 때 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