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020

208. 쉰내

by 자작공작

지난 일요일, 빨래를 해야 했는데 허리를 삐끗하는 바람에 깜박했다. 월, 화가 지나면서 빨래가 쌓이고 수건의 재고가 점점 바닥이 나면서야 ‘빨래’를 안했구나를 알았다.


그런데 계속되는 장마, 도저히 빨래를 할 수가 없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이번 주말에도 비가 온다 했었다.


어디 근처 빨래방이라도 가야하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집에서 세탁을 하고, 가서 건조기를 써야하나, 가는 중에 빨래에서 쉰내가 나 버리면 어떻하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오래 전 ‘쉰내’의 추억이 떠올랐다.


다행히 토욜일부터 날이 개어서 빨래를 했고, 잘 건조되었다.


약 20년전, 2001년일 때였다.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행사, 이벤트 기획 관련 수업을 들었었고, 그 모임에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 의 직원이 있었다. 청예단에서 인권상 관련 행사가 있는데 아이디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해서, 한 두 번의 회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갔었다.

3월무렵이었는데, 그 회의에서 당시 유행이던 ‘국토순례’를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8월까지 사무실에 두세번씩 나갔고, 행사 기획부터 진행의 과정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중간에는 내가 왜 이러고 있는건가 생각도 들었고, ‘무에서 유가 창조된다, 하면 된다’가 눈 앞에서 실현되는 것도 봤고, 또 시간이 흐르니 나름 좋은 추억이 되었다.


청소년 100여명을 대상으로 했고, 각 조 인솔자도 나처럼 얼결에 합류한 사람들이 지인등을 모아서 구성이 되었다. 거의 비슷한 또래들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모인 것도 신기했고, 당시 우리들은 꽤 순수했던 듯 하다.


당시 인솔자들은 같이 국토 순례를 했고, 난 아침에 떠난 자리를 정리하고, 점심엔 중간 지점에 가서 점심 배식을 하고, 저녁 숙소에 먼저 도착해 세팅을 하는 일 등을 했다.


국토 순례는 비가 와도 걷는다.

비를 맞으면, 정말 옷이 속옷까지 홀딱 젖는다.


학생들의 여름방학 시기는 또 장마시즌과 맞물려 있지 않은가,


인솔자였던 내 또래들은 저녁에 홀딱 젖은 옷들을 헹궈서 어디라도 걸어 두지만, 빨래줄이 여유있지도 않아, 옷들은 포개져 있기 일수고, 또 축축한 우기에 제대로 건조되지도 않았다. 아직 축축한 옷을, 아침에 일행들이 도보순례에 나서면 난 일제히 수거해(정성스럽게가 아니라 짐처럼) 마치 자루 같기도 한 큰 봉투에 쑤서 넣었다. 저녁 장소에 미리 도착하니 이 옷들을 다시 정리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축축한 날씨, 또 땀으로 범벅이 된 옷들을 다 말리지고 못한 채 입고, 이렇게 우리는 쉰내를 폴폴 거리면서 살았다. 프로그램이 다 끝난 후, 우리의 모임 이름은 자연스럽게 ‘쉰내’가 되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은 당시에 생소했지만,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삶을 저버린 한 학생의 아버지가 회사를 관두고 만든 단체였다.

당시라고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수면 위로 많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청소년 폭력은 너무도 위험 수위인 것 같다.


부디, 안전한 사회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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