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빨래를 해야 했는데 허리를 삐끗하는 바람에 깜박했다. 월, 화가 지나면서 빨래가 쌓이고 수건의 재고가 점점 바닥이 나면서야 ‘빨래’를 안했구나를 알았다.
그런데 계속되는 장마, 도저히 빨래를 할 수가 없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이번 주말에도 비가 온다 했었다.
어디 근처 빨래방이라도 가야하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집에서 세탁을 하고, 가서 건조기를 써야하나, 가는 중에 빨래에서 쉰내가 나 버리면 어떻하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오래 전 ‘쉰내’의 추억이 떠올랐다.
다행히 토욜일부터 날이 개어서 빨래를 했고, 잘 건조되었다.
약 20년전, 2001년일 때였다.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행사, 이벤트 기획 관련 수업을 들었었고, 그 모임에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 의 직원이 있었다. 청예단에서 인권상 관련 행사가 있는데 아이디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해서, 한 두 번의 회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갔었다.
3월무렵이었는데, 그 회의에서 당시 유행이던 ‘국토순례’를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8월까지 사무실에 두세번씩 나갔고, 행사 기획부터 진행의 과정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중간에는 내가 왜 이러고 있는건가 생각도 들었고, ‘무에서 유가 창조된다, 하면 된다’가 눈 앞에서 실현되는 것도 봤고, 또 시간이 흐르니 나름 좋은 추억이 되었다.
청소년 100여명을 대상으로 했고, 각 조 인솔자도 나처럼 얼결에 합류한 사람들이 지인등을 모아서 구성이 되었다. 거의 비슷한 또래들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모인 것도 신기했고, 당시 우리들은 꽤 순수했던 듯 하다.
당시 인솔자들은 같이 국토 순례를 했고, 난 아침에 떠난 자리를 정리하고, 점심엔 중간 지점에 가서 점심 배식을 하고, 저녁 숙소에 먼저 도착해 세팅을 하는 일 등을 했다.
국토 순례는 비가 와도 걷는다.
비를 맞으면, 정말 옷이 속옷까지 홀딱 젖는다.
학생들의 여름방학 시기는 또 장마시즌과 맞물려 있지 않은가,
인솔자였던 내 또래들은 저녁에 홀딱 젖은 옷들을 헹궈서 어디라도 걸어 두지만, 빨래줄이 여유있지도 않아, 옷들은 포개져 있기 일수고, 또 축축한 우기에 제대로 건조되지도 않았다. 아직 축축한 옷을, 아침에 일행들이 도보순례에 나서면 난 일제히 수거해(정성스럽게가 아니라 짐처럼) 마치 자루 같기도 한 큰 봉투에 쑤서 넣었다. 저녁 장소에 미리 도착하니 이 옷들을 다시 정리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축축한 날씨, 또 땀으로 범벅이 된 옷들을 다 말리지고 못한 채 입고, 이렇게 우리는 쉰내를 폴폴 거리면서 살았다. 프로그램이 다 끝난 후, 우리의 모임 이름은 자연스럽게 ‘쉰내’가 되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은 당시에 생소했지만,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삶을 저버린 한 학생의 아버지가 회사를 관두고 만든 단체였다.
당시라고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수면 위로 많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청소년 폭력은 너무도 위험 수위인 것 같다.
부디, 안전한 사회가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