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부장의 고함은 '호통'이 아니라 '비명'이었다

by 업스트리머

​부제 : 깨지지 못한 알 껍질 속의 투쟁, 헤르만 헤세 『데미안』

* 유튜브 팟캐스트



회의실의 사자? 겁먹은 아이!


​월요일 오전 9시, 회의실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는다.


"야, 김 대리! 이걸 기획안이라고 가져온 거야?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패기가 없어!"


​박 부장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핏대를 세우며 책상을 내려치는 모습은 흡사 정글의 포식자 같다. 신입 사원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하지만 소리 지르는 그 순간, 테이블 아래서 미세하게 그의 손끝이 떨렸다.

그리고 주말 내내 단톡방에 "우리 팀 이번 분기 실적 어쩌냐"며 전전긍긍하던 그의 불안한 메시지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고함은 우리를 향한 공격이 아니라, "나 좀 살려줘, 나 아직 안 죽었어! 나 무시하지 마!"라고 외치는 절박한 '비명'이 아닐까?


그는 사자인 척하는 겁쟁이였다.




알을 깨지 못한 새의 몸부림


겁쟁이 사자의 포효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마음속 서재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학창 시절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그 유명한 문장이 박 부장의 정수리 위로 겹쳐 보였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지금 박 부장은 갇혀 있다. '과거의 성공 방식'과 '상명하복'이라는, 이제는 화석이 되어버린 단단한 알 껍질 속에 말이다.


세상은 변했다.

AI가 기획안을 쓰고, 90년대생들이 리더의 논리를 따져 묻는 시대다.

알 껍질은 점점 좁아져 숨이 막혀오는데, 그는 아직 스스로 껍질을 깰 힘이 없다.


​결국 그가 내지르는 고함은 강자의 호령이 아니었다. 알을 깨지 못한 새가 좁은 공간에서 버둥거리는 처절한 몸부림이자, 질식 전의 발악이었다.


그가 부숴야 할 건 자신의 낡은 세계인데, 애먼 부하 직원들의 멘탈만 부수고 있다는 사실이 이 비극의 핵심일 뿐이다.




꼰대의 심리학, '통제광'의 정체


​궁금해졌다. 도대체 40대 중반의 가장이 회사에서 저토록 핏대를 세우며 화를 내는 진짜 심리는 뭘까?

나는 조용히 AI에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박 부장의 정신 분석을 의뢰했다.


​"부하 직원에게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상사의 심리를 분석해 줘. 이게 리더십이야, 아니면 공포야?"


​AI의 답변은 소름 돋게 냉정하고 명쾌했다.


"그것은 전형적인 '투사'입니다. 자신의 내면이 불안할수록 외부(타인)를 강하게 통제하려 듭니다. 그의 분노는 '네가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도태될까 봐' 두려워서 나오는 방어 기제입니다."


​그렇다. 그는 호랑이인 척하는 겁쟁이였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세상(AI, 변화)에 대한 공포를, 만만한 김 대리를 통제함으로써 해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권위라는 껍질을 세계의 전부로 착각하고 있기에, 껍질에 금이 가는 것(부하의 반론)을 죽기보다 두려워하는 '늙은 싱클레어'일 뿐이었다.




연민이라는 이름의 방패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의 소소한 반란은 시작되었다. 나는 오늘부터 박 부장의 고함에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를 '알을 깨느라 고생 중인 늦깎이 사춘기 소년'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이제 그가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지르면 나는 속으로 조용히 주문을 외운다.


"아, 부장님. 오늘따라 껍질이 너무 단단해서 힘드신가 보네요. 참 짠합니다."


​그의 화를 내 부족함 탓으로 돌리지 않고, 그저 그가 겪는 '성장통'으로 바라보는 것. 이것이 나의 우아한 거리두기이자 가장 강력한 방패다.


그는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살려달라고 처절한 구조 신호를 보내는 중이니까.


​나는 결심했다.

그 껍질 속에서 썩지 않고, 기어이 태어날 것이다. 비명 대신 노래를 부르며, 아주 우아하게 알을 깨고 나올 것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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