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눈의 광인에게 '까라면 까'를 설명하는 법

by 업스트리머

​부제 : "이걸 왜 해요?"라는 질문에 혈압 오르는 김 팀장을 위한 『일의 격』처방전


* 유튜브 팟캐스트



맑은 눈의 공격, "근데 이걸 왜 해요?"


​오후 4시, 급하게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생겼다. 입사 6개월 차, 그 유명한 '맑은 눈의 광인' 신입 사원에게 파일을 넘겼다.


"김 사원, 이거 내일 오전 임원 회의 때 참고할 거니까 퇴근 전까지 요약 좀 해줘."


​당연히 "네,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을 기대했건만, 돌아온 건 흔들림 없는 눈빛과 순수한 질문이었다.


"팀장님, 근데 이 데이터 지난주에 취합한 거랑 내용이 겹치지 않나요? 효율이 좀 떨어지는 것 같은데... 이걸 굳이 지금 왜 다시 해야 하죠?"


​순간, 명치 끝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솟았다.


'왜냐니? 시키면 그냥 하는 거지!'라는 꼰대 자아와 '합리적으로 설명해 줘야 해'라는 이성적 자아가 머릿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나 때는 말이다. 상사가 '산으로 가라'고 하면 이유도 묻지 않고 군말 없이 등산화 끈부터 묶었다.


그런데 요즘은 업무 지시를 내리려면 '이 등산이 당신의 커리어와 회사 발전에 미칠 영향'에 대한 기획서부터 제출해야 할 판이다.


​"아, 그건 지난번과 변수 설정이 달라서..."


설명을 해주긴 하는데 속이 터진다. 내가 너를 설득하고 납득시켜 가며 일을 시켜야 하나?

업무 그 자체보다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이 더 피로하다. 나는 팀장인가, 아니면 "왜요?" 병에 걸린 아이를 달래는 유치원 교사인가.




꼰대가 되지 않으려 펼친 『일의 격』


​"토 달지 말고 그냥 해!"라고 소리칠 뻔한 입을 꾹 다물었다. 대신 치미는 화를 삭히며 가방 속 신수정 저자의 『일의 격』을 펼쳤다.


페이스북의 현인이라 불리는 그가 리더십과 성장의 본질을 꿰뚫은 책이다.

​저자는 리더의 역할이 단순히 업무를 배분하고 지시하는 게 아니라, 그 일이 왜 필요한지 맥락을 설계해 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일의 의미와 배경을 전혀 모른 채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사람은, 결국 일의 주인이 아닌 시키는 만큼만 하는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는 뼈아픈 지적.


​순간, 찾아오는 달음.

신입의 그 맑은 눈은 나를 공격하거나 무시하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시키는 일만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회사의 부속품이 되기를 거부하고, 이 과업의 진짜 목적을 납득하여 제대로 해내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까라면 까'라는 나의 낡은 사고방식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유능한 인재를 생각 없는 수동적인 기계로 전락시키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설명하기 귀찮아하는 그 '이유'가, 사실은 그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연료였음을 깨달았다.




AI가 분석한 '맑은 눈'의 정체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이들의 "왜요?"는 정말 단순한 호기심일까? 나는 AI에게 MZ세대의 질문 뒤에 숨겨진 심리를 뇌과학과 효율성 관점에서 분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AI의 답변이 다시 한 번 내 뒤통수를 쳤다.


그들의 질문은 반항이나 거부가 아니라, 철저한 '효율성 검증' 절차라는 것이다. 가성비를 숭배하는 이 세대에게, 납득되지 않는 지시는 곧 에너지 낭비다. 그들은 "이 일이 내 시간을 투입할 가치가 있는가?"를 냉정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더 뼈아픈 건 '권위의 이동'에 대한 지적이었다. 과거에는 직급이 곧 권위였지만, 지금은 '합리성'이 권위다. 아무리 팀장이라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그는 더 이상 리더가 아니라 '꽉 막힌 꼰대'로 간주된다.


하지만 반대로 납득만 시킨다면? 그들은 누구보다 빠르다. AI 툴을 동원해서라도 순식간에 결과를 만들어낸다. 결국 그들의 "왜요?"는 "납득만 시켜주시면, 제대로 보여드릴게요"라는 자신감의 다른 표현이었던 셈이다.




설명할 수 없다면, 시키지도 마라


​그렇다면 답은 명확하다. 나는 오늘부터 기꺼이 '친절한 설명충'이 되기로 했다.


신입 사원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면, 나조차 그 일의 본질을 모르고 껍데기만 붙들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지시하기 전, 딱 3초만 멈춘다.

"배경은 무엇이고, 목적은 어디에 있으며, 예상되는 결과물은 무엇인가."

리더가 이 3가지 맥락을 먼저 설계해서 던져주면, 그들의 도발적인 질문은 존경의 눈빛으로 바뀐다.


​이제 후배의 "왜요?"는 건방진 말대꾸가 아니다. "팀장님, 설마 의미 없는 삽질을 시키시는 건 아니죠?"라고 묻는 날카로운 필터링이다.


설명하는 과정은 피곤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나의 언어는 정교해지고 리더십은 단단해진다. '까라면 까'를 논리로 설득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리더가 갖춰야 할 진짜 '일의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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