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꽉 막힌 지하철, 잠잠하던 입사 동기 단톡방이 갑자기 요란하게 울린다.
"나 이번에 이직해. 연봉 꽤 높여서 가기로 했어."
동기 K의 폭탄선언. 이름만 들으면 아는 업계 1위 기업이란다.
"와, 대박! 진짜 고생했어! 역시 우리 에이스!"
반사적으로 화려한 폭죽 이모티콘과 축하 멘트를 날렸지만, 검은 액정 화면에 비친 내 표정은 차갑게 식어있다. 축하 인사를 보내자마자 명치끝이 묵직하게 조여 온다. 급하게 먹은 저녁 탓일까? 아니다. 이건 명백한 '배 아픔', 아주 촌스러운 질투다.
분명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 옥상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똑같이 상사 욕을 하고 버텨왔다. 그런데 왜 쟤는 저토록 근사한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나는 여전히 비포장도로에서 제자리걸음만 하는 걸까.
동기의 화려한 '하이라이트' 뉴스에 비해, 오늘 하루 상사에게 깨지고 야근에 찌든 내 '비하인드 컷'이 너무 초라해 견딜 수가 없다. 타인의 성취가 나의 실패로 치환되는 잔인한 밤, 진심으로 박수 쳐주지 못하는 옹졸한 내 자신이 더 미워진다.
쓰린 속을 달래려 장류진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을 펼쳤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적나라한 민낯을 그린 이 책에는 대단한 성공 신화가 없다. 대신 카드사 포인트로 월급을 받거나 중고거래로 현금화해 사는 지질하지만 사랑스러운 우리네 초상만이 가득하다.
소설은 보여준다. 멀끔해 보이는 넥타이 부대원들도 각자 감내하는 구질구질한 사정과 개인적 슬픔들이 있다는 걸. 단톡방에 올라온 K의 이직 성공은 그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만 골라 편집한 화려한 '예고편'일 뿐이다.
그 이면에 숨겨진 이직 준비의 피 말리는 불안함, 연봉 협상의 치졸한 줄다리기, 그리고 그가 포기해야 했던 무언가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타인의 화려한 '하이라이트' 영상과, 온갖 NG 컷이 가득한 나의 '편집 없는 원본'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닐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그가 쟁취한 높은 연봉만큼, 그에게도 분명 감당해야 할 몫의 슬픔이 있을 테니까.
머리로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고 이해하지만, 속이 쓰린 건 여전하다. 도대체 왜일까?
AI에게 이 유치한 질투심의 정체를 물었다. 답변은 명쾌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먼 타인이 아닌, 나와 비슷한 조건의 '유사 집단'을 비교 척도로 삼기 때문이란다.
멀리 있는 빌 게이츠의 성공은 '남의 일'이지만, 옆자리 동기의 성공은 내 생존 본능을 건드리는 '나의 위기'로 인식된다. 뇌가 동기의 상승을 나의 상대적 도태로 받아들여 비상벨을 울리는 셈이다.
하지만 AI는 이 질투를 '나쁜 감정'으로만 분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질투는 내가 무엇을 결핍으로 느끼고,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욕망의 나침반'이라고 정의했다.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죽어버린 사람은 남을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결국 배가 아픈 건, 내가 못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나도 저만큼, 아니 저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이 내 안에서 요동치고 있다는 증거다. 이 쓰라림은 위염이 아니라, 아직 식지 않은 나의 '성장통'인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나는 이 쓰린 속을 위장약 대신 '연료'로 채우기로 했다. 질투가 나침반이라면, 이제 웅크리고 앉아 배를 잡고 있는 대신 그 바늘이 가리키는 곳으로 걸어가면 그만이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요란한 단톡방의 알림을 끄는 것이다. 타인의 편집된 하이라이트 영상에 내 귀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소심한 반란이다.
그리고 냉정하게 묻는다. 동기 K의 무엇이 부러운가? 높은 연봉인가, 아니면 새로운 환경인가? 그 키워드가 바로 내 다음 커리어의 구체적인 목표가 된다.
동기의 성공은 그저 그 사람 인생에 '봄'이 조금 일찍 찾아온 것뿐이다. 내 인생이 영원한 겨울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오늘, 어제의 나보다 딱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나만의 작은 승리'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남의 화려한 스코어보드를 쳐다보느라 목을 빼는 대신, 묵묵히 내 발밑의 공을 차는 것이다.
전반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의 계절은 반드시 온다. 배가 아픈 걸 보니 다행이다. 나는 아직 펄펄 끓는 현역이 맞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