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의 이직 소식에 배가 아픈 건, 위염 때문이 아니다

by 업스트리머

​부제 : 나만 정체된 것 같은 밤,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 건네는 위로

* 유튜브 팟캐스트


​축하인사를 보내고 속이 쓰린 이유


​퇴근길 꽉 막힌 지하철, 잠잠하던 입사 동기 단톡방이 갑자기 요란하게 울린다.


"나 이번에 이직해. 연봉 꽤 높여서 가기로 했어."


동기 K의 폭탄선언. 이름만 들으면 아는 업계 1위 기업이란다.


​"와, 대박! 진짜 고생했어! 역시 우리 에이스!"


​반사적으로 화려한 폭죽 이모티콘과 축하 멘트를 날렸지만, 검은 액정 화면에 비친 내 표정은 차갑게 식어있다. 축하 인사를 보내자마자 명치끝이 묵직하게 조여 온다. 급하게 먹은 저녁 탓일까? 아니다. 이건 명백한 '배 아픔', 아주 촌스러운 질투다.


​분명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 옥상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똑같이 상사 욕을 하고 버텨왔다. 그런데 왜 쟤는 저토록 근사한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나는 여전히 비포장도로에서 제자리걸음만 하는 걸까.


동기의 화려한 '하이라이트' 뉴스에 비해, 오늘 하루 상사에게 깨지고 야근에 찌든 내 '비하인드 컷'이 너무 초라해 견딜 수가 없다. 타인의 성취가 나의 실패로 치환되는 잔인한 밤, 진심으로 박수 쳐주지 못하는 옹졸한 내 자신이 더 미워진다.




​하이라이트와 원본의 함정


​쓰린 속을 달래려 장류진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을 펼쳤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적나라한 민낯을 그린 이 책에는 대단한 성공 신화가 없다. 대신 카드사 포인트로 월급을 받거나 중고거래로 현금화해 사는 지질하지만 사랑스러운 우리네 초상만이 가득하다.


​소설은 보여준다. 멀끔해 보이는 넥타이 부대원들도 각자 감내하는 구질구질한 사정과 개인적 슬픔들이 있다는 걸. 단톡방에 올라온 K의 이직 성공은 그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만 골라 편집한 화려한 '예고편'일 뿐이다.


그 이면에 숨겨진 이직 준비의 피 말리는 불안함, 연봉 협상의 치졸한 줄다리기, 그리고 그가 포기해야 했던 무언가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타인의 화려한 '하이라이트' 영상과, 온갖 NG 컷이 가득한 나의 '편집 없는 원본'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닐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그가 쟁취한 높은 연봉만큼, 그에게도 분명 감당해야 할 몫의 슬픔이 있을 테니까.




​질투는 나의 무능함이 아니라 열망의 증거다


​머리로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고 이해하지만, 속이 쓰린 건 여전하다. 도대체 왜일까?


​AI에게 이 유치한 질투심의 정체를 물었다. 답변은 명쾌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먼 타인이 아닌, 나와 비슷한 조건의 '유사 집단'을 비교 척도로 삼기 때문이란다.


멀리 있는 빌 게이츠의 성공은 '남의 일'이지만, 옆자리 동기의 성공은 내 생존 본능을 건드리는 '나의 위기'로 인식된다. 뇌가 동기의 상승을 나의 상대적 도태로 받아들여 비상벨을 울리는 셈이다.


​하지만 AI는 이 질투를 '나쁜 감정'으로만 분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질투는 내가 무엇을 결핍으로 느끼고,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욕망의 나침반'이라고 정의했다.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죽어버린 사람은 남을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결국 배가 아픈 건, 내가 못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나도 저만큼, 아니 저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이 내 안에서 요동치고 있다는 증거다. 이 쓰라림은 위염이 아니라, 아직 식지 않은 나의 '성장통'인 것이다.




남의 스코어보드는 그만, 이제 내 공을 찰 시간


​그렇다면 오늘부터 나는 이 쓰린 속을 위장약 대신 '연료'로 채우기로 했다. 질투가 나침반이라면, 이제 웅크리고 앉아 배를 잡고 있는 대신 그 바늘이 가리키는 곳으로 걸어가면 그만이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요란한 단톡방의 알림을 끄는 것이다. 타인의 편집된 하이라이트 영상에 내 귀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소심한 반란이다.


그리고 냉정하게 묻는다. 동기 K의 무엇이 부러운가? 높은 연봉인가, 아니면 새로운 환경인가? 그 키워드가 바로 내 다음 커리어의 구체적인 목표가 된다.


​동기의 성공은 그저 그 사람 인생에 '봄'이 조금 일찍 찾아온 것뿐이다. 내 인생이 영원한 겨울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오늘, 어제의 나보다 딱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나만의 작은 승리'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남의 화려한 스코어보드를 쳐다보느라 목을 빼는 대신, 묵묵히 내 발밑의 공을 차는 것이다.


​전반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의 계절은 반드시 온다. 배가 아픈 걸 보니 다행이다. 나는 아직 펄펄 끓는 현역이 맞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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