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개박수 2시간, 내 영혼의 초과근무 수당은 누가 주나

by 업스트리머

부제 : '자율 참석'이라 쓰고 '강제 동원'이라 읽는 회식,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 유튜브 팟캐스트


​자율이라 쓰고 강제라 읽는 그곳, 광대들의 밤


​오후 5시, 단체 메신저 창이 울린다.


"오늘 저녁 가볍게 삼겹살 어때? 자율이니까 부담 갖지 말고."


​팀장님의 '자율'이란 단어는 '오지 않으면 너의 인사 고과도 자율에 맡기겠다'는 은밀한 협박처럼 들린다. 결국 나는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고깃집 구석자리에 앉아 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 연기 속에서 팀장님의 '라떼는 말이야'가 시작된다. 이미 입사 때부터 3번은 족히 들은 무용담이다.


​하지만 내 몸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한다.


"와, 부장님 진짜 대단하십니다! 그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물개박수와 함께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린다. 입가는 웃고 있는데, 내 눈동자는 텅 비어 있다. 잠시 피신한 화장실 거울 속, 기괴한 미소를 짓고 있는 광대 하나가 서 있다. 안면 근육에 경련이 일 것 같다.


업무는 6시에 끝났는데, 내 감정 노동은 지금부터 피크타임이다. 2시간째 이어지는 이 지독한 메소드 연기. 웃음은 서비스고 박수는 노동인데, 왜 이 영혼의 초과근무 수당은 월급 명세서에 찍히지 않는 걸까?


술기운 때문이 아니라, 억지웃음 때문에 속이 울렁거린다.



소설 『인간 실격』 속 가면과 물개박수


이 메스꺼운 감정을 달래려 오래전 읽었던 소설 한 권을 떠올려 본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다.


주인공 요조는 타인이 너무나 두렵지만, 동시에 그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수도 없어 '익살'이라는 가면을 쓴 채 평생을 연기한다.


그는 필사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며 타인을 웃긴다. 하지만 그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타인의 눈치를 보며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 선택한 처절한 방어기제다.


"저는 익살이라는 가느다란 끈 하나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라는 요조의 서글픈 고백은 지금 이 고깃집 테이블 위에 놓인 우리들의 모습과 소름 끼치게 겹친다.


팀장님의 권위에 눌려, 혹은 비주류로 밀려나기 싫어 치는 나의 물개박수 역시 요조의 익살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우리는 조직과 연결되기 위해 자신의 진짜 얼굴을 구겨 넣고 자발적인 광대가 되기를 자처한다. 회식 자리의 자욱한 삼겹살 연기는 사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진짜 표정을 가려주는 유일한 무대 장치일 뿐이다.


나 역시 요조처럼, 직장생활에서 실격당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필사적으로 박수를 치며 그 가느다란 연결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회식은 상사의 권 의식, 그리고 지독한 숙취


궁금해졌다. 왜 리더는 이토록 박수에 집착하고, 우리는 왜 이 연극에 이토록 지쳐야만 하는가.


AI에게 이 비극적인 무대의 배후를 물었다. AI의 분석은 차가우면서도 명확했다.


우선 상사의 입장에선 당신의 박수가 본인의 권위가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일종의 '정서적 진통제'라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 리더십에 불안을 느끼는 상사일수록, 사적인 술자리에서만큼은 '왕'의 대접을 받으며 그 결핍을 채우려 든다.


​진짜 문제는 우리의 뇌다. 억지로 웃는 '표면 행위'는 실제 업무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겉과 속이 다른 인지부조화를 처리하기 위해 뇌가 과부하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회식 후 술보다 지독한 숙취가 남는 건 간이 아니라 영혼이 지쳐버린 탓이다.


다만 AI는 한 가지 위로를 덧붙였다. 요조의 익살이나 우리의 물개박수는 결코 비겁함이 아니다. 거대한 조직의 파도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며 유연하게 헤엄치는 고도의 '사회적 지능'이자, 영리한 생존 기술이라는 점이다.




영혼은 집에 두고 몸만 간다


이제부터 나는 회식 자리를 '업무의 연장'이 아닌 '고도의 메소드 연기 훈련장'으로 정의하기로 했다.


나는 더 이상 무기력하게 끌려온 피해자가 아니다. '회식을 즐기는 직장인'이라는 배역을 맡아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영리한 주연 배우다.


​고깃집 문을 여는 순간, 내 영혼은 문밖에 잠시 로그아웃해 둔다. 안으로 입장하는 건 AI가 분석해 준 최적의 '리액션 봇'이다. 상사의 무용담은 대본이고, 나의 물개박수는 충실한 지문일 뿐이다.


이 열연의 대가는 월급이 아니라 내일의 안녕을 위한 '정치적 보험료'다. "이 정도 박수 쳐줬으니, 당분간 내 개인 정비 시간은 건드리지 않겠지?"라고 마음속으로 쿨하게 거래를 제안하는 셈이다.


​다만, 배우에겐 반드시 '커튼콜'이 필요하다. "딱 9시까지만 완벽하게 연기한다"는 종료 시간을 스스로 정해두자. 9시 정각, 무대 조명이 꺼지면 나는 가차 없이 퇴장한다.


택시 안에서 가짜 미소를 지우고 무표정한 나로 돌아오는 그 순간, 비로소 진짜 퇴근이 시작된다. 요조처럼 인간 실격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저 내 영혼의 초과근무를 아주 영리하게 끝냈을 뿐이니까.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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