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3와 사직서, 내 책상서랍 속 두 생존키트

by 업스트리머

​부제 : 죽지 않으려 약을 먹고 그만두려 글을 쓰는 아이러니,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 유튜브 팟캐스트


약국이 된 내 책상, 그리고 비밀 폴더


​오전 9시 10분, 탕비실 정수기 앞.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알약 다섯 알을 손바닥에 털어 넣는다. 종합비타민, 오메가3, 루테인, 밀크씨슬…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특유의 비릿한 향이 올라오지만, 물 한 컵과 함께 꿀꺽 삼킨다. 옆자리 신입이 걱정스레 묻는다.


"과장님, 어디 편찮으세요?"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답한다.


'아니, 아프기 싫어서 먹는 거야. 오늘 하루도 이 전쟁터에서 갈아 넣어지려면 연료가 필요하거든.'


​내 책상 서랍은 기묘한 이중생활을 한다. 왼쪽 서랍엔 살기 위한 각종 영양제가 약국 진열대처럼 빼곡하다. 반면 오른쪽 서랍 깊숙한 곳, 혹은 바탕화면 '개인폴더' 속에는 언제든 던질 준비가 된 '사직서' 파일이 숨죽여 잠들어 있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를 입에 달고 살면서, 정작 그 지긋지긋한 곳에서 하루라도 더 버티기 위해 내 간과 위장을 누구보다 끔찍이 챙기고 있다


퇴사를 꿈꾸는 자가 누구보다 건강에 집착하는 이 슬픈 모순. 나는 살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저 도망칠 힘을 비축하고 있는 걸까.




헤밍웨이의 날 참치와 나의 오메가3


​목구멍에 남은 비릿한 향기 때문일까. 문득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망망대해에서 자신의 쪽배보다 더 큰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던 늙은 어부 산티아고. 며칠 밤낮으로 팽팽한 낚싯줄을 당기느라 손에는 쥐가 나고 정신은 혼미해진다. 그때 노인은 잡은 참치를 날것 그대로 억지로 씹어 삼키며 이렇게 되뇐다.


"이걸 먹어야 해. 그래야 팔에 힘이 생기지. 지금 내 손이 오그라들면 안 돼."


​노인에게 그 역겨운 날생선은 '식사'가 아니라, 거대한 목표를 놓치지 않기 위한 '전투 식량'이었다.


순간, 손바닥 위의 알약들이 다르게 보였다. 내가 이걸 삼키는 이유도 산티아고와 다르지 않다. 단순히 회사의 소모품으로 연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 역시 내 인생의 거대한 물고기, 즉 '진짜 내 삶'을 낚아 올릴 힘을 비축하는 것이다.


​지금 내 손이 오그라들면, 낚싯줄을 놓치고 말 테니까. 이 쓴 알약은 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무기인 셈이다.




퇴사 욕구와 생존 본능의 상관관계


​궁금증이 생겼다.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이 왜 남을 사람보다 더 치열하게 건강을 챙기는 걸까?

나는 AI에게 이 아이러니한 심리를 물었다.


​"퇴사를 꿈꾸면서도 영양제에 집착하는 직장인의 심리를 분석해 줘."


​AI의 답변은 명쾌했다. 그것은 모순이 아니라, 철저한 '자산 보호' 본능이라는 것이다. 산티아고 노인에게 낚시 도구가 생명줄이었듯, 직장인에게 '몸'은 퇴사 후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자본이다. 회사가 지급한 노트북은 반납해야 하지만, 내 몸에 축적된 체력은 온전히 내 것이니까.


​더 흥미로운 건 '통제감'에 대한 해석이었다. 상사의 변덕과 회사의 시스템 속에서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유일하게 내 의지로, 내 통제하에 둘 수 있는 행위가 바로 영양제를 삼키는 것이다.


​결국 사직서를 품은 자의 영양제 섭취는 회사를 위한 충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는 부속품으로 망가지지 않고, 온전한 나로 걸어 나가겠다"는 비장한 '자기 존엄의 선언'이었던 셈이다.




가장 건강할 때, 가장 우아하게 떠나기


​그렇다면 오늘부터 내 책상 위 약통의 의미는 달라져야 한다. 이것은 야근을 버티기 위한 '연료'가 아니라, 훗날의 독립을 위해 비축하는 '전투 식량'이다.


​나는 산티아고 노인이 비린 날 생선을 억지로 씹어 삼키듯, 비장하게 오메가3를 목구멍으로 넘긴다. 이 쓴맛은 회사를 위한 게 아니다. 언젠가 내 인생의 대어를 낚아 올릴 근력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회사가 내 멘탈은 탈탈 털어가도, 내 건강이라는 자산만큼은 절대 털어가게 두지 않겠다는 소심하지만 단단한 반란인 셈이다.


진짜 복수는 무엇일까? 골병 들어서 링거를 꽂고 도망치듯 사표를 던지는 게 아니다. 내 몸과 정신이 가장 쌩쌩하고 빛나는 순간, 그 누구보다 튼튼한 두 다리로 당당하게 걸어 나가는 것이다. 그때 내미는 사직서는 패잔병의 백기가 아니라, 승리자의 화려한 '졸업장'이 될 테니까.


​오늘도 나는 약을 먹고, 남은 체력의 10%는 몰래 떼어두어 퇴근 후의 '나'를 위해 쓴다. 그렇게 차곡차곡 비축된 힘이 결국 나를, 그리고 내 책상 속 사직서를 완성할 것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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