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무언가를 결정할 때마다 먼저 계산한다.
이게 이득일까.
괜히 시간만 버리는 건 아닐까.
내가 더 손해 보는 건 아닐까.
손해 보지 않는 삶.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기술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읽고 있던 『체홉 명작 단편선』 속 〈내기〉의 젊은 변호사가 확연히 들어온다.
돈을 얻기 위해 15년을 고립 속에서 보낸 인물.
그는 결국 돈을 포기한다.
잃지 않으려 시작한 선택이 결국 삶을 잃는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걸 그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나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묻는다.
“이게 나한테 뭐가 남지?”
관계도, 시간도, 도움도 손익표 위에 올려본다.
괜히 먼저 연락했다가 손해 보는 기분,
괜히 시간 썼다가 아까울까 봐 망설이는 마음.
그런데 계산이 늘어날수록 마음은 점점 움츠러든다.
〈내기〉 속 변호사는 돈을 얻을 기회를 스스로 버린다.
그가 포기한 건 상금이 아니라 계산에 갇혀버린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천 하나."
하루 한 번, “이게 이득일까?” 대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걸까?”를 먼저 묻기.
손해가 두려운 건 돈 때문만은 아니다.
괜히 먼저 사과하면 지는 것 같고,
괜히 먼저 다가가면 내가 더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래서 안전한 거리에서 머문다.
적당히 예의 바르게, 적당히 무난하게.
하지만 그 선택은 나를 지켜주는 걸까,
아니면 나를 고립시키는 걸까.
"실천 둘."
이번 주 한 번은 먼저 연락해 보기.
먼저 고맙다고 말해 보기.
잃는 건 체면일 수 있지만 얻는 건 관계일 수 있다.
〈내기〉의 변호사가 진짜로 잃은 건 돈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우리는 15년을 미루지는 않지만, 작은 방식으로 시간을 미룬다.
운동은 다음 달로, 여행은 나중으로, 휴식은 “좀만 더 벌고” 나서.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은 지금을 보류하는 선택으로 이어진다.
"실천 셋."
이번 주 안에 “언젠가” 하려던 일 하나를 선택해 날짜 정해 실행하기.
시간은 남겨두는 게 아니라 써야 살아난다.
안톤 체홉은 인물들을 통해 조용히 묻는다.
“그렇게 계산하며 사는 게 정말 현명한가?”
나는 여전히 계산한다.
완전히 내려놓을 자신도 없다.
하지만 이제는 이득보다 방향을 묻고 싶다.
이 선택이 나를 조금 더 살아 있게 만드는가.
어쩌면 삶은 이익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체온을 지키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얼마를 남겼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살았는가를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