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금방 끝난다.
할 일은 늘 많고, 일정은 빼곡하다.
운동도 하고, 자기계발도 하고, 약속도 챙긴다.
남들이 보면 꽤 성실한 하루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허전하다.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
최근 다시 펼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다가 이 질문이 더 또렷해졌다.
죽음을 앞둔 한 사람의 이야기인데,
묘하게 오늘의 내 일상과 닮아 있었다.
이반 일리치는 게으르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야 묻는다.
“나는 제대로 살았는가?”
그 질문이 남았다.
나는 지금, 중요한 걸 챙기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열심히만 살고 있는 걸까.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멈추면 뒤처질 것 같아서.
가만히 있으면 불안이 올라올 것 같아서.
그래서 더 채운다.
일정으로, 약속으로, 콘텐츠로.
하지만 멈추지 않으면 점검할 수가 없다.
요즘 나는 하루 10분을 비워보려고 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오늘 내가 한 선택 중 진짜 내 기준은 무엇이었지?”
적어본다. 거창한 성찰이 아니다.
그저 방향 점검.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방향이 틀어져 있다면 속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조금씩 인정하게 된다.
할 일은 끝이 없다.
메일 답장, 약속, 운동, 공부, 인간관계 관리.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해야 하는 일’만 처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정작 ‘중요한 일’은 미루고 있지 않은가?
이반 일리치는 사회적으로 옳은 선택을 하며 살았다.
남들이 보기에 합리적인 길, 안정적인 길.
그런데 그 길이 자기 마음과 맞닿아 있었는지는 마지막에야 의심하게 된다.
요즘 나는 하루 일정표를 보며 작게 표시를 해본다
✔ 해야 하는 일
✔ 정말 중요한 일
두 항목이 다를 때가 꽤 많다.
열심히 사는 건 어렵지 않다.
어렵고 불편한 건 중요한 일을 먼저 선택하는 태도다.
하루를 돌아보면 성과는 남는다.
처리한 일, 달성한 목표, 채운 거리.
그런데 사람은 어땠을까.
가족과 눈을 맞추고 대화한 시간은?
동료의 표정을 제대로 읽은 순간은?
내 감정을 솔직히 인정한 장면은?
레프 톨스토이가 그린 이야기는 결국 이것을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남는 건 지위가 아니라 관계라고.
나는 종종 성과로 안심하고, 관계는 “나중에”로 미뤄둔다.
하지만 중요한 건 늘 지금이다.
성과는 채워도 불안이 남지만, 사람을 챙긴 날은 이상하게 마음이 조용하다.
나는 앞으로도 열심히 살 것이다.
게으르게 살 자신은 없다.
다만 하나는 바꾸고 싶다.
열심히 사는 걸로 불안을 덮지 않기.
바쁨으로 중요한 질문을 미루지 않기.
그래서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그냥 열심히만 살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아직 괜찮은 방향일지도 모른다.
이 질문이 자꾸 불편하다면 어쩌면 조금은 멈춰야 할 신호일지도 모른다.
책은 덮었지만, 질문은 남았다.
그리고 그 질문 덕분에 오늘 하루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