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쓰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인정받고 싶은걸까?

by 업스트리머

부제 : 인정 욕구를 넘어, 나만의 글쓰기 기준을 세우다

키워드 : 1️⃣ 기준, 2️⃣ 퇴고, 3️⃣ 신뢰



발행 버튼 앞에서 멈춘 마음


글을 다 썼다. 퇴고도 몇 번 했다.

문장도 다듬었고, 제목도 고민했다.

이제 등록(발행) 버튼만 누르면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이 멈춘다.

이 글, 사람들이 좋아할까? 조회수는 나올까? 공유는 될까?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였다. 읽은 책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고, 흩어진 경험을 구조로 묶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묻게 된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인정받고 싶은 걸까?


최근 다시 읽은 박종인 기자의 『기자의 글쓰기』는 이 질문을 아주 현실적인 방식으로 건드렸다. 기교가 아니라 태도로, 감성이 아니라 기준으로.




1️⃣ 기준 : 나는 무엇을 ‘잘 쓴 글’이라 부르는가


이 책은 글쓰기의 3대 철칙을 말한다.

쉬움, 짧음, 팩트.

처음에는 기술처럼 보였다.

쉽게 써라. 짧게 써라. 팩트로 써라.


그런데 읽다 보니 질문이 바뀌었다.

나는 무엇을 기준으로 글을 평가하고 있는가?

조회수가 높은 글? 좋아요가 많이 달린 글? 자극적인 제목이 붙은 글?

아니면 읽는 사람이 한 번에 이해하고, 끝까지 읽고, 읽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는 글?


“아름답다” 대신 장면을 쓰고,

“난리 났다” 대신 상황을 쓰라는 말은

결국 독자를 존중하라는 뜻이었다.


인정을 받는 글은 순간의 반응을 끌어낸다.

하지만 잘 쓴 글은 독자의 시간을 아껴준다.

나는 그동안 내 기준이 아니라 플랫폼의 기준으로 글을 재고 있었던 건 아닐까.




2️⃣ 퇴고 : 나는 쓰고 있는가, 고치고 있는가


『기자의 글쓰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글은 상품이다.”


독자의 시간과 집중을 쓰는 제품.

그래서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기자는 하루에도 수십 번 퇴고한다.


소리 내어 읽고,

혀가 꼬이는 문장은 지우고,

‘의’와 ‘것’을 덜어내고

“너라면 읽겠냐?”고 스스로 묻는다.


나는 그동안 쓰는 데 집중했지, 고치는 데는 인색하지 않았나.

사실 인정 욕구는 빠른 발행을 원한다.

빨리 올리고, 빨리 반응을 보고 싶다.

하지만 잘 쓰고 싶다면 속도를 늦춰야 한다.


군살을 깎고, 팩트를 세우고, 리듬을 살려야 한다.

인정은 즉각적 보상을 원하지만, 성장은 반복과 수정에서 나온다.


나는 지금 글을 쓰는 사람인가, 글을 고치는 사람인가.




3️⃣ 신뢰 : 나는 어떤 글을 남기고 싶은가


책은 말한다.

정보 전달만 원하면 서론-본론-결론이면 된다.

공감을 원하면 기승전결이어야 한다.


첫 문장은 미끼다.

마지막 문장은 관문이다.

문을 닫아야 여운이 생긴다.


나는 가끔 첫 문장에만 공을 들이고 마지막을 흐리게 끝낸 적이 있다.

괜히 여운을 남긴답시고 말줄임표를 쓰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혹시라도 독자가 반박하면 어쩌지.

혹시라도 내 생각이 부족해 보이면 어쩌지.

그래서 애매하게 남겨두는 선택.


하지만 분명한 결론을 내리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내 생각에 책임지는 태도니까.


나는 어떤 글을 남기고 싶은가.

읽히는 글? 공유되는 글? 아니면 시간이 지나도 다시 찾게 되는 글?


인정은 숫자로 남지만, 좋은 글은 신뢰로 남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쓰고 있는가


다시 질문으로 돌아온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인정받고 싶은 걸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인정도 받고 싶다.

조회수가 오르면 기분이 좋다. 댓글이 달리면 힘이 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쓴다.

읽은 책을 내 언어로 소화하고 싶어서 쓴다.

흩어진 경험을 구조로 묶고 싶어서 쓴다.


그 점에서 나는 완전히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다만 가끔, 숫자에 마음이 흔들릴 뿐이다.

이제는 등록(발행) 버튼 앞에서 이 질문을 한 번 더 던져보려 한다.


“너라면 읽겠냐?”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묻지 않겠냐?”


인정을 목표로 쓰기보다 기준을 세우고 쓰는 사람.

반응을 기다리기보다 책임 있게 고치는 사람.

조금 느리더라도 그 방향으로 가보고 싶다.


아마 그때, 인정은 결과로 따라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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